어릴때 아주 어릴때는 아니고 초등학교 3학년쯤 되었나
그 시절에는 목욕탕에도 자주 가는게 아니어서
어쩌다 목욕탕엘 가면 아주 오래 들어 앉아서
본전을 빼고 올때의 이야깁니다.
언니와 나이가 좀 더 많은 사촌언니와 목욕탕엘 갔었지요.
해질 무렵에 들어 가서 깜깜한 밤에 나오게 되었답니다.
목욕탕에 한참 들앉았다 나와서 인지 우리들은
단체로 어떤 몽롱함에 빠져서
집으로 돌아 가는 길을 잃고 헤매었답니다.
길들이 아주 낯설어 보이고 방향감각을 잃게 되었지요.
결국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남강다리에(경남 진주에 있는) 까지
갈수 있었고 거기서 방향을 잡아 집으로 돌아 올수 있었답니다.
그런데 지금도 그런 몽롱한 상태에서 현실감각으로 돌아 올때의
그 분기점이랄까 그런 자각상태를 내가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장독대에 앉아 동화책을 읽고 있으면 가끔 몽롱한 상태에
있다가 누가 부르는 소리에 화들짝 현실로 돌아 온적도 있습니다.
그 이후로 이런 몽롱한 상태는 자주 발생하진 않았는데
고등학교때 서울 유학가는 언니를 기차역에서 바래다 주고
돌아 와야 하는데 그때가 새벽이었습니다.
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었고 또다시 몽롱한 상태에 빠졌든것 같습니다.
한참을 헤매이다 문득 정신이 들어 집으로 돌아 왔던 적이 있습니다.
때로 달빛이나 안개 같은 것들이 사람을 아주 이상하게 만들어서
현실감이 없는 상태로 만들기도 하나 봅니다.
미쓰때 어떤 남자와 달빛이 고교할때 한적한 오솔길을
걸었던 적이 있는데
현실 세계가 없어지고 어떤 몽롱한 상태에서 끝없이
그 길을 걷고 싶었던적이 있었지요.(분명 사랑따위의 감정하곤 다른)
봄날 얕으막한 동산 같은데서 잔디밭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알지못할 아련함에 빠져들때도 있었지요.
언덕 같은 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바다를 보면서 아련함을
느끼기도 했구요.
마법같기도하고 환상같기도한 이런 아련함은 때때로 풍경의 조화나
실내장식이 분위기있는 곳에서 술을 마실때
언뜻언뜻 작용을 하는 것 같았답니다.
문제는 젊었을때는 때로 이런 몽롱함이나 아련함이 찾아와서
곤란한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사는 것이 삭막하지 않게 느끼게 해주는
역할을 한것 같은데
나이를 많이 먹고난 후에는 이런일이 한번도 발생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다만 뒤돌아 보면 지나온길이 아득하게만 느껴집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이렇게 똘망똘망한 정신 상태를 유지해서
현명하게 되어 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정신의 이완 같은 것은 파고들
여력이 없어지는 걸까요.
나는 로맨틱한 사람이고 싶었는데 지금 나는
버석버석한 사막 같은 사람이 된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