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대단한 것도 아닌데 완결이라고 쓰는게 좀 우습네요.
어제 잠든 남편의 손을 가만히 잡아 보았습니다.
나의 손이 느껴지면 금새 깨는 사람인데 오늘은
무척 피곤했나봅니다.
이런 남편을 두고 왜 나는 옛추억에 젖어드는가 생각해보았습니다.
그건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생활에 쫓겨 내가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살고 있다가 가슴저리게 아팠지만 그느낌...아파도 살아있다는 느낌...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던 과거의 나를 다시 찾아보고 싶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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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나에게 많은 얘기를 해주었다. 난 사실 문학에는 문외한이였는데 그는 영문학도였고 그래서 내가 알지못하는 많은 것을
이야기 해주었다.
속삭이듯 들려주던 실락원이야기는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의 느낌을 전해준다. 대학때 이념서적밖에 읽지 않았던 나는
파우스트도 그 때문에 읽게 되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찬바람도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고 어떤 음식을 먹어도 맛있게 느껴졌다. 그렇게 꿈같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어느날이었다. 급히 만나서 의논할게 있다고 했다.
이번에도 황당하게 그가 결혼을 하자고 했다.(그러고 보니 나에게 결혼하자고 말한 사람은 이 두사람이다. 남편은 그냥 같이
살까? 하고 지나가는 말로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이유는 내가 좋아서가 아니었다. 뉴질랜드로 이민가야 하는데 법이 바뀌는 사정이 생겨 내가 먼저 뉴질랜드에 가고 혼인신고를 하자는 것이었다.그는 졸업이 안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가 날 진정으로 사랑했다고 생각한 난 너무 어이가 없어서
화를 냈다.그도 나중에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 이후로 뭔가 우리에게 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2월 14일이었다. 발렌타인데이는 애들이나 챙기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난 그에게 선물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니트를 하나 샀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냉담했다. 자기는 태어나서 이런 선물은 받아본 적이없다고......너무 부담스럽다고 거절했다.
그말은 곧 나의 맘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결별을 선언했다. 이유는 서로 살아온
환경과 문화적 차이가 크다는 것이다.
그게 꼭 3주가 되는 날이었다. 난 모든게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먼저 다가와서 정신없이 가버리는 그가 도무지 이해가
안되었다. 또한 21일만에 정신없이 빠져든 나자신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날 이용하려 한 것이었을까? 아무것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날 떠나는 남자들은 왜이리도 차가운지....
그는 자기가 한말은 다 거짓말이라고 했다. 내가 첨 사귄여자라는 것도...
직장을 그만두려했지만 직장사정상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나도 실상 그를 보기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그만두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힘겹게 그를 보면서 몇 달이 흘렀다.
난 그를 잊기위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그때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첨부터 남편과 사귄 것은 아니었다. 그때도 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한 상태였고 남편을 첨만났을땐 서로에게 그리 관심이 없었다. 미련은 버리지 못했어도 이제 그에 대해서 덤덤해 질 수는 있다고 생각하던 때........그는 나에게 부탁을 했다. 자신의 리포트를 도와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곤 다시 그가 다가왔다. 하지만....그는 사랑하는 관계로 다시 만날 수는 없다고 했다. 우린 만나서 비디오방을 갔다.
하지만 예전과 같을 순 없었다.
그의 사고체계는 보통 평범한 사람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사랑한다고 같이 살 필요는 없는 것이고 또한 같은 민족이라고 꼭 통일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나와는 정반대의 생각을 가진 그와 난 더 이상 함께 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왠지 그의 눈을 보면 그가 하자는 데로 이끌릴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나에게 동업관계를 요구했다.
첨에 난 받아들였지만 결국 같이 할 수 없는 사정이 생기게 되었다.
서서히 난 더 이상 그를 만나선 안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남편을 만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난 연락을 하지 않았고 그도 더 이상 나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해가 지나고 그는 졸업후 뉴질랜드로 떠났다. 혼자서..
그는 혼자 살 거라고 했다. 정말 그가 아직도 뉴질랜드에서
혼자 살고 있을까 가끔 궁금하기도 하다.
혹 우리나라에 와서 날 찾진 않을까 공상을 해보기도 한다.
너무 허무하게 끝난 사랑이지만 21일간의 느낌이 너무 강렬
했기에 자꾸 돌이켜보게 된다.
정말로 이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한적이 없다. 그리고 직장동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가끔 그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하면 혼자 얼굴이 빨개진다.
난 아직도 그의 마지막 말을 믿는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내가 첨 사귄여자였다고.....
거짓말이라고 한건 헤어지기 위해서였다고...
그렇게 순진하지만은 않은 내가 그앞에서는 바보가 되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