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란 무엇으로 사는 것일까.
생각해 보아도 딱히 떠오르지 않으나 실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어린 시절 나를 지켜줄 아버지가 필요했듯이,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있으나 실상은 아버지의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하다면 나 역시도 아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할 때는 서로가 상대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되어 주리라고는 생각지 않을 것인데, 이제 수년에 걸친 결혼 생활로, 연인의 인연으로 만났던 애정의 유효기간이 다 한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서로의 역할만이 덩그마니 남은 듯 하여 삶이 삭막하기 짝이 없다.
늘 맞이하는 휴일이긴 하나 그 때 마다 느끼는 것은
한 주간의 나만의 조용한 평화가 깨지며 내가 마땅히 돌봐야 할 가족들의 뒤치다꺼리로 휴일 전체를 소란과 피곤의 뒤엉킴 속에서 보내려하니 나도 모르게 지침을 느낀다.
저녁 밥상은 보 잘 것 없이 초라하였으나, 개수대의 그릇들은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사실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을 수 있으나 순간 내 느낌으론 수북히 쌓인 그릇들이 태산처럼 보이는 일거리를 앞에 두고 있는 심정이었다.
그것이, 반복되는 일상 때문인지, 낮부터 읽던 책을 마저 읽고 싶은 작은 소망 때문인지, 휴일 온 종일 종종걸음 친 피곤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저녁 설거지를 하는 두 손이 거칠게 움직이며 그릇 부딪치는 소리로, 다른 때 보다 요란한 설거지가 되고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 밑바닥에선 참을 수 없는 울화가 치밀어 오르며 무언가 뜨거운 것이 스믈스믈 올라와 얼굴이 화끈거리고, 그릇들은 건성으로 대강대강 비눗물도 다 지워지지 않은 채 건조대로 올라가고 있었다.
다 마친 설거지통 앞에서 알 수 없는 깊은 한 숨이 쏟아져 나왔다.
무심코 칫솔에 치약을 묻혀 입 속에 넣지도 않은 채 발걸음을 바쁜 듯 어느새 안방으로 옮기고 있었다.
식사 후, 나른함에 젖어 좁은 방을 가로질러 비스듬히 누워 있는 남편 향해, 양치하기 전에 이 말은 꼭 해야겠다는 비장한 각오 마저 숨겨 있는 듯 나는
"당신.., 요 근래 몇 년 사이에 설거지 해 본 적 있어? 몇 달이 아니고? 몇 년 말이야....” 다분히 저돌적이고, 그 순간, 남편의 입에서 말 한마디라도 잘 못 나오면 그대로 폭발 해 버릴 것 같은 화를 잔뜩 삼킨 질문하였다.
무슨 뜻으로 그런 지를 전혀 알 수 없다는 듯이 남편은 “아니! 왜?” ‘뭔 일 있어?’하는 뜻이 가득 담긴 대답을 하였다.
순간 나는“아니..., 몇 달 말고.... 몇 년 말이야! 몇 년....!” 하는데 도저히 참아 볼 수도 없는 눈물이 마구 솟구쳐 어느새 뚝뚝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해도, 그것이 몇 년만이든
내 몸이 몹시 아파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때가 아니면 남편은 부엌엘 들어오는 사람이 아니었다.
언제인가 남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부엌일이 너무 힘들어서 일류 주방장은 힘이 센 남자들이 많은가봐.” 하는 내 말에 “당신도 다른 집 여자들처럼 바깥일 하면 나도 어쩔 수 없이 도와 줘야겠지. 당신은 그렇지 않으니 힘들어도 당연히 다 해야 하는 거 아니냐?” 했던 인정머리 없는 말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허나 남편을 잘 아는 나로선 그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있다.
그는 정작 마누라가 직업을 같게 되더라도 제 한 몸밖에 몰라, 집안 일을 거들어 줄 사람이 아니다. 경상도 토박이로 자기의 어머니가 오로지 희생으로만 살아오신 분이므로, 여자는 모두 자신의 어머니처럼 희생을 해야만 미덕인 줄 아는, 요즘 시대와는 동떨어진 상식을 가진 사람이다.
본인은 아닌 줄 알고 있고, 또 아니라고 굳게 믿고 있겠지만, 그것은 이미 그 사람 골수에 깊이 박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또 하나의 그 사람의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 챈 남편은 냉큼 몸을 일으키며 “알았어...! 다음부터 도와줄게..! 그래 ...그래 알았어....!” 어떻게든 무마하려 나의 팔을 잡아당기며 다정한 표정을 지어 보이지만 분하고 서러운 내 마음은, 슬픔의 구렁텅이로 한없이 빠져들어, 한 손으로 양치를 하면서 다른 한 손으론 연방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방안엔 쥐 죽은 듯 조용한 적막이 흐르고, TV에선 지금은 내용조차 기억나지 않는 주말 연속극이 바삐 돌아가고, 나는 빈 눈을 화면에 고정한 채 그칠 줄 모르는 양치만 하고 있었다.
분명 남녀가 연정을 품고, 부부로 만나 친구처럼 인생을 함께 살아가기로 한 것이 틀림없을 텐데,
수년을 함께 살다 보니 어느새 나는, 남편을 어머니와 같이 돌보고 있는 것에 힘겨움을 느끼며 앞으로, 긴 날을 그런 채로 살아 갈 것에 대한 막연한 피곤이 일어 마음이 무겁다.
고달픈 삶을 살아왔던 어른들이 들으면 응석에 겨운 소리로 들릴지 모를 일이나, 남편에게 있어 나는 어머니가 아닌 ,함께 협력하며, 힘들어할 땐 서로 조금씩 도와주는 친구 같은 부부이고 싶은데, 잘 안되고 있는 것에 어쩌면 이루어지지 않을 소망을 가져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꿈꾸고 있는 남편은 평생 되지 못 할 것이라는 심증이 있어 더욱 답답한 지도 모른다.
피곤한 휴일의 북받치는 감정으로, 밤늦도록 일었다 꺼지는 상념과 마음의 갈등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여 개운치 않은 아침을 맞았다.
간밤에 천둥치는 상념은 간데 없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또 다시 반복되는 일상이 찾아왔다.
서둘러 아이들과 남편을 보내고, 멀찍이 신록이 힘차게 솟는 앞산을 무심히 바라다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