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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어릴적에(5)-운동회


BY 허브 2000-12-21

나 어릴적에(5)-운동회

요즘 내 아이들도 운동회를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 하던 운동회와는
좀 다른것 같다.
그 땐 [운동회]하면 무척 큰 마을잔치
같은것이었다.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 협동해서
음식을 잔뜩 만들어가지고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줄을 이어
광주리,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학교로 오셨다.
동네별로 여기저기 멍석을 깔고,
천막을 치고 나이 드신 어르신들도 모시고
음식을 나누며
하루 종일 애어른 할것 없이
웃고 손뼉을 치고 하면서
신나는 하루를 즐겼던것 같다.

그런데 요즘은 그나마도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서 정신없이 치뤄버리니
예전같은 낭만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예전엔 학년별 동네별로 다양하게
경기가 치뤄졌던것 같다.
한 경기가 끝나면 잠깐이라도 여유가
있었던것 같은데,
요즘 우리 아이들 운동회 하는것을 보면
한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다음 경기준비가 한쪽에서 이뤄지고
응원은 응원대로 따로 따로고
정말로 너무 정신없이 하루가 가고만다.
겨우 내 아이가 치르는 경기시간만 진행표를
봤다가 관심있게 지켜 볼 정도이다.
그나마 전체적으로 관심을 집중시키는 경기는
이어달리기인것 같다.
이어달리기 할때만큼은 청백으로 갈리어
열심히 응원을 하며,
넘어지면 함께 안타까워 하기도 해서
예전의 추억속으로 다소나마 가깝게 다가가는
느낌을 받았다.

차이는 있겠지만 아이들도 나름대로
연습을 해서 무용을 하면서도 엄마의 눈을 찾고,
눈을 마주치면 부끄러워 하면서도 신이나서
더욱 더 예쁘게 율동을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많은 애들 중에 유독 내 아이가 눈에
쏘옥 들어오고,
그 많은 엄마들중에 자기 엄마가 눈에 쏘옥
들어와서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을 때의
그 행복감이란...

내가 6학년때의 운동회 생각이 난다.
한복을 입고 고전무용을 했던것 같다.
그런데 무용하기전에 손님찾기란 달리기가 있었다.
출발을 해서 조금 더 달려가다가 쪽지에 쓰인
사람을 찾아서 함께 달리는 경기이다.
난 그 때 경찰관이 걸렸었다.
그런데 그 날 경찰 아저씨는 보이지 않고,
쪽지를 보이니까 마침 군인 아저씨가 달려 들어와
내 손을 잡고 달리는 것이다.
그 군인 아저씨는
"내가 너 일등하게 해줄께..."
하면서 마구 달리는 것이다.
난 다리만 길었지 달리기는 젬병인데
그 아저씨는 내가 키도 크고 달리기도 잘 할 줄
알았는지 내 한계는 생각지도 않고
자기 수준대로 마구마구 달리는 것이다.
난 결국 질질 끌려가며 무릎을 다치고 말았다.
내 귀에도 사람들이
"저런 저런 쯧쯧..."하며 혀를 차는 소리가 다
들렸다.
얼마나 챙피하던지...
1등은 커녕 챙피만 당하고,
무릎이랑 팔꿈치는 다 깨져서 약을 발라야했다.
그런데 그 순간에 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우습게도 다음 순서를 걱정했다.
약을 발라주시며 선생님은 무용은 쉬시라고 하셨다.
난 고집을 부리며 괜찮다고 하고
약만 바르고는 부지런히 한복을 갈아입고 무용을 했다.
그 시절 난 한복을 입어보질 못해서 그런지
그 하늘하늘한 한복이 무척 입고 싶었다.
비록 단체로 맞춘 한복이었지만,
명절때도 입어보지 못했던 한복이었고,
내 스스로도 한복을 입고 꽃을 달고
춤을 추는 내가 무척 이쁘게 보였었다.
그래서 상처가 쓰리고 아팠어도 꾸욱 참고
다음 순서인 무용을 끝까지 잘 했던 기억이 있다.

내 아이들이 달리기를 하면
거의 꼴찌를 한다.
그래도 난 아이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인다.
그것을 보고 내 아이의 친구는
제 엄마에게 한마디 했다고 한다.
"엄마! 가을엄마는 가을이가 꼴등을 해도
잘했다고 엄지손가락을 쳐들어 주는데
엄만 일등 못했다고 나무라기만 하고,
아무래도 울 엄만 팥쥐엄마인가봐..."

난 내가 달리기를 못하니
내 아이에게 달리기 잘하기를 바라진 않는다.
누굴 닮았겠는가?
"그래도 끝까지 최선을 다 한 너의 모습에
엄만 기꺼이 엄지손가락을 들어주마"하니
우리 딸 행복해 하며 날 꼬옥 껴안는다.

"꼴찌에게도 나름대로의 최선이 있는법이란다.
꼴찌를 했어도 네가 최선을 다했으면
그게 너의 최선인거야. 포기하지 말고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아름다운거야..."
하는 말로 난 내 딸들을 격려한다.

아이들이 운동회를 하면
난 내 추억을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좀 더 추억거리라도 만들어 주고파서
열심히 간식준비도 하고,
내가 더 신이나서
번거로운줄도 모르고 준비를 하곤 한다.
그런데 요즘은 운동회날 학교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점점 줄고 있다.
학교와 집이 가까우니 점심 때 집에 와서
햄버거 하나로 때우던가,
짜장면 같은것을 시켜주던가 하는 추세다.
내년에도 그런 썰렁함 속에서 난
어떻게 운동회 준비를 할지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