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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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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와 어머니


BY 인하우스 2003-04-20

비소리를 들으니 참 좋다.
봄비가 오면 물을 이용해서 할일이 많았다. 내가 어릴적에는 상수도를 쓸수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은 마음이 많았다.
주인집에서 호수를 연결해서 장독마다 물을 받아서 썼는데 그도 아침부터 물이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저녁 어스름이 깔리고 해서 주인집에서 물 받아라 ~ 해야 물을 받을 수 있었는데 어떤날은 한통받기가 귀했다. 특히 김장철이 되어서 아랫동네에서 물을 잠그지 않으면 우린 밤늦게까지 기다려야 했다.

그런 시절 비가 오면 울 할머니는 처마아래에 대야를 갖다놓고 집안구석구석 청소를 하게 하셨다. 그러다보니 비를 맞는 일이 많았다.

결혼을 하고 어머님께서도 그런 어려운 시절을 보내셔서 비가 오는 날 집뒤뜰 정리를 하시는 것을 보니 묻지 않아도 좀 이해가 갔다.

화분30개 모두에게 뿌리까지 물을 빨아들이게 기다리신 다음 화분을 내려보시는데 파란 잎이
'갓 목욕탕에서 나온 아가들' 같이 뽀얏게 이쁘다. 작은 걸레로 화분테두리도 닦으시고 비를 오래도록 맞추면 안되는 것은 실내로 가지고 들어오시고..

비설거지..시골집은 이 단어를 아신다.
이 일이 늘 즐거운 것은 아닌다. 아침 일찍 아니 새벽에 비가 와도 이일을 하시니 짜증이 용을 쓰고 있다. 좀 말리고 싶으신데도 뜰에 나가 어머님 안색을 살피면 그리 기뻐하고 계실 수가 없으시다.

자식과도 같이 정성으로 돌보시는 화분들이 하늘의 기운을 받는 것을 놓치지 않으실려고 보조를 하고 있는 며느리를 똥개처럼 보신다.
어머님은 화분마다 눈을 맞추시고 간밤에 기운을 차린 나무앞에서는 꼭 칭찬을 하고 쓰다듬어주신다.

어머님은 여행도 피곤해하실만큼 몸이 건강하지 않으시다. 일년에 한번 친목회에서 온천을 가셔도 가실때와 정반대로 안색이 질려서 오시는 그런 체질을 약하게 가지고 태어나신 분이시다.
그래도 말씀하시는 것과 집에서 움직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척척해내신다.

젊으셔서 김장을 하실때 여러분들이 모이셔도 손이 재서(빠르다는 뜻) 가장 빨리 하셨다고 들었다. 울 어머님은 버리는 휴지통을 봐도 살림을 어떻게 하는 지 안다고 말씀하셨다. 버리는 것을 적게 해야 그게 안사람이 돈을 버는 거라고 하셨는데.

화초를 사랑하시는 것은 또 이유가 있으셨다. 반지하로 어머님을 모셔온 남편이 항상 미안해 하면서 다른 집으로 이사를 갈려고 해도 마땅히 집을 살 사람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햇수가 가꾸 더해가서 10년을 더 그곳에서 살았다. 어머님은 아침 7시 20분에 윗층 아저씨가 차를 빼달라고 초인종을 누르면 일어나서 차를 빼주고 다시 들어와 남편이 세수하고 출근하는 것을 줄곧 보시게 되었다. 자동차의 매연이 창을 타고 들어오는 도시 생활을 누구보다 안타까워 하셨다. 그걸 지혜로 바꾸어서 집안에 화분을 많이 사셨다.

시누들 용돈은 바로 꽃집주인에게 갔다. 꽃집 주인 아주머니는 불편한 몸을 하신 작은 할머니를 배려해서 집안까지 배달해주셨다.
그렇게 모인 것이 30개가 되었다.

비가 오면 누구보다 일찍 화초를 만나러 뜰로 나기시고 화초에 에너지를 주실려고 하신 어머님..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셔서 안계신다.

항상 부지런 하시고 정갈하고 단정하셨던 어머님 . 약자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셔서 지나치지 못하셨고 그래서 많은 분들을 실제 도와주셨다. 살아서 쌓은 공은 돌아가셔서 어머님을 더욱 빛나게 해주셨다.

못난 며느리는 집에 화분하나 키울 부지런도 없는 게으른 며느리고 무심한 며느리인데 결혼 초창기부터 하나하나 일러주시고 애써서 가르켜주실려고 하셨다.
많이 고마운 아침이다.
어머님은 정말 고마우신 분이십니다.
측량할 수 없는 그 고마움에 뒤늦게 울고 있는 나..

어머님 아픔과 고통이 없는 곳에서 웃고 계실 것 같습니다.
육신의 아픔을 내색도 않으시고 늘 강건하게 사셨어요.
그 아픔의 반에 반에도 짜증이 나는 저인데
이제 헤아려 봅니다.

인하우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