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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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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지를 맞으면서...


BY 1song2 2000-12-21


오늘이 동지란다.
항상 12월 22일이 동지였는데,
이상하다? 하면서 달력을 보니, 정말로 오늘이 동지다.

해마다 이날이면 해야 하는 일이 있었다.
곱고 눈처럼 하얀 쌀을 엄마가 방앗간에서 갈아 오시면,
사각밥상, 둥글둥글 밥상을 펴서 깨끗이 닦은 후,
혼자서 하염없이 새알을 동글동글 빚었다.
엄마는 부엌에서 팥물을 내리시고...

첨엔 이뿌게 빚으려고 애쓰다가
나중엔 팔다리, 허리가 뒤틀려 대충대충 빚는다.
한 손바닥에 한 알씩 빚다가,
남들보다 손이 크다는 점을 십분 이용해서
새알을 두 개씩 빚어보았다.
두 개의 새 알이 손바닥에서 서로 붙은 적도 많았지만,
자꾸 빚다보면 한 손에 한 개씩 빚는 거랑 똑같이
크기도 비슷하고 멋진 새알이 된다.
밥상 가득 하얗고 동글동글한 새알이 소복소복 쌓일 때면,
부글부글 끓는 솥에 새알을 후두둑 넣고,
푸덕푸덕 팥죽이 끓으면서, 하얀 새알이 둥실 떠오르면,
김이 풀풀 나는 팥죽을 한 그릇 먹고,
한 그릇 더 먹었던 기억이 난다.

결혼을 하고 나서, 해마다 이 날이 되면
새알을 빚을 겨를도 없이 시댁으로 쪼르르 쫓아가는 일만 한다.
낮에 집지키시는 시엄니는 혼자 새알 다 빚어 팥물을 걸르셔서 팥죽을 다 쑤어놓으시는 거다.
다 쑤어놓은 팥죽을 맨 입으로 가서,
홀라당 먹고 오는 일만 하는 것이다.
시엄니는 해마다 동지 전날 목욕 재계하고 절에 다녀 오신 후 팥죽을 쑤신다. 아님, 쑤어놓고 가시거나...
'미리가서 좀 도와드려야지' 하면서도 마음 뿐,
늘 해놓은 팥죽을 먹고 오는 데 그친다.
싸늘하게 식은 팥죽을 증탕으로 데워서
시원한 동치미 국물과 한그릇 뚝딱 비우고,
몇시간 시어른 위문공연을 끝내곤
무겁게 싸주시는 김장김치를 한보따리 얻어서 귀가를 서두른다.

친정엄니는 친정엄니대로 팥죽을 쑤어선,
이제나 저제나 딸, 사위, 손자, 손녀 오기만을 기다리시다가 전화를 하신다.
아들들은 멀리 있어서...
좋아라 하면서 달려가서는 한 그릇 얻어먹고 오는데,
우리가 못 가면 팥죽을 한 냄비 싸갖고 오신다.
무거우니까 그러시지 말라고 말려도...

겨우살이 김장을 혼자서 하고,
콩을 삶아 메주를 떼워 장을 담고,
항아리 뚜껑 가득 고추장을 담고,
시골에서 사온 참깨로 참기름을 짜서
아들네, 딸네집으로 보따리 보따리 싸서 보내는 시엄니를 보면,
그 전엔 당연한 것 처럼 생각했었는데,
요즘은 안스럽고 가슴 한켠이 싸해오다.
저 어마어마한 일꺼리를 배우려니 까마득하고,
시엄니 돌아가시고 나면 된장, 고추장을 우짜노?
하는 이기심이 슬그머니 생기는 것이다.
결혼 8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무늬만 주부이기에...

오늘도 이집-시댁, 저집-친정집에 전화를 걸어 팥죽 한그릇 얻어먹을 궁리를 한다.
시엄니는 요즘 편찮으셔서 병원에 치료를 다니신단다.
아마 팥죽을 끓이지 않으실 모양이다.
어른들 편찮으시단 이야기 들으면 슬그머니 걱정이 앞선다.
연세가 만만찮으시기 때문이다.
일흔이면 며느리에게 대접받으며 살 나이시건만,
두 집 어른들이 손수 끓여 드신다.
맏 며느리도 따로 살고 있고,
난 둘째 며느리라는 것과 맞벌이라는 알량한 이유로
시어른들께 소홀하지나 않았나 늘 송구스런 마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