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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초원의 빛이여


BY 바늘 2003-04-19

여느 날들과 같이 쉴사이 없이 일을 하는데

진동으로 놓아둔 폰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잠시 확인해 보니 모르는 번호가 떠있었습니다.

해드셋을 잠시 내려놓고 누구세요?

의외의 발신자는 아이 아빠였습니다.

잠시 내려올래?

회사 앞에 있다

집열쇠좀 가지러 왔어~

그간에 얼키고 설킨 상황에서 핸드폰도 해지한 상태라 근처에 와서 공중전화 부스를 찾아 연락을 취했나 봅니다.

바쁜 근무중이라 빠르게 비상계단을 통하여 후다닥 걸음을 하였습니다.

남편이 있었습니다.

커다란 키에 반듯하게 차려입은 정장이 그렇게도 잘어울려 근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색고운 와이셔츠에 양복 색깔 게다가 넥타이 까지 그사람에게 그림이 되게 차려주고 이른 아침 출근하는 멋진 남편을 보고 흐믓해 하던 시절이 분명 제게도 있었습니다.

나이가 사십 고개를 넘어가도 오히려 젊은 시절보다 더 말끔하게 멋져가던 그사람이었습니다.

헌데~~

회사앞 보라매 공원에 푸른 잎들이 희망을 노래하는 아름다운 계절에 불쑥 찾아와 서있는 남편은 예전에 그런 모습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승승장구 잘나가던 시절에 윤기 나던 그사람

억대의 연봉을 받았던 시절에 활기 차던 그사람

영화배우 한모씨와 안경쓴 모습이나 훤한 이마나 차려입은 정장 양복이 핸섬하게 잘어울려 너무나 멋지다는 평을 참으로 많이도 듣던 그이였습니다.

반팔 하늘색 셔츠에 철지난 반코트를 손에 걸치고 그사람이 서있었습니다.

예전에 모습이 아닌 모습으로 말입니다.

무슨일 있어요?

그사람이 대답했습니다

아니~ 그냥 잘있어라~~

열쇠를 건네주는데 손에 들은 뭔가를 건네 주는 것이었습니다.

바쁘게 가는 사람을 보내고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는데 안을 들여다 보니 김밥을 골고루 포장해온것입니다.

충무김밥,그냥 길다란 김밥,게다가 삼각김밥까지 말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바바나 우유도 잊지 않았는지 한구석에 담겨져 있었습니다.

지난 시절에 뭔가를 퇴근길에 봉지 봉지 사들고 와서는 가족들이 맛있다며 그것을 먹으면 맛나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좋아라 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떡뽁이,순대,오뎅,닭꼬치,피자,치킨,여름이면 팥빙수까지 포장해오고 아이들 시험이면 DHA가 풍부해져야 한다며 생선회까지 커다란 스치로플에 얼음채워 사들고 오고,매콤한 쫄면에 만두,따끈한 군고구마 군밤,때로는 쇠고기 튀김에 생선 초밥은 모듬으로 한상자 안겨주고...

휴~~~

사무실에 앉아 다시 일을 하려고 자리했지만 그만 눈물이 흘러 멈칫 거렸습니다.

어찌 이런 시절을 맞이 할수 있을까요?

정말 착하게 살아왔던 사람이었습니다

뭔가에 이끌려 지금에 상황으로 어그러 지게 된것일까요?

집안을 혼수상태로 빠지게 하고 말입니다.

그날 동료들이 웃으며 맛나다고 먹던 김밥은 저에게는 설움과 회한이 담겨있는 김밥이었습니다.

맛있니?

우리 애인이 나 먹으면서 일하라고 사주고 간 김밥이란다

겉으로 자랑 자랑 했지만 속으로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아~~ 사는게 뭔지...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아~ 초원의 빛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