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조개잡으러 가자는 언니네와의 약속이
있어서 일요일아침을 일찍 먹고 안산으로 출발했다.
시화공단을 지나 대부도를 지나 선제도라는 곳으로 가는
길 내내 바다를 볼수 있어서 좋았지만 그 길을 가는 내내
정체불명의 썩는 냄새가 계속해서 따라왔다.
시화공단을 지나면서 시작된 그 냄새가 아마도 공단에서
나는 약품냄새 일거니 생각했는데 공단지역을 벗어나서 부터
냄새는 더욱 고약해 졌으므로
그 정체불명의 냄새로 해서 달뜨던 기분이 착 가라앉아 버리는
거였다.
때는 춘삼월, 봄볕은 그날따라 화사하게 쏟아져서
푸르게 펼쳐진 바다를 반짝이게 하고 있었다. 멀리 갯벌이 드러난
바닷가에 조개를 잡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하고는 잠시,정체불명의
냄새를 잊고 우리도 조개를 잡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언니가 챙겨온 못 신게된 양말을 덧 신고, 호미며
갈퀴를 한가지씩 챙겨 갯벌속으로 들어가던 그 간지러운 느낌의
순간은 그간의 '조개잡이'에 대한 기대를 갑자기 부풀리게 했다.
미끄덩거리는 갯벌특유의 느낌이 얼마만인지.. 아이들은 철벅거리며
작은 호미와 갈퀴를 들고 여기저기를 헤집고 다니며 햇살보다 환하게
웃고는 했었다.
'바닷가 개펄엔 수많은 갯가생물이 살고 있단다.
그래서 갯가생물들이 개펄을 파헤치고 먹이를 먹으며
살아가고 그러므로써 바닷물이 정화가 된단다..
갯벌을 들여다 보면 갯가생물들이 만들어 둔 수없이 많은
숨구멍이 있을거야. 그것들이 바로 갯가생물들의 집이란다.
그러니 그곳을 파보면 게며, 지렁이며, 갖가지 조개며를 볼수 있을거야.
라고 갯벌의 생태를 다룬 책에서 읽은바대로
아이들은 조금만 들여다 보면 갯가에서 사는 것들을 잡을수
있을거라고 의기양양하게 갯벌을 쑤시고는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갯벌은 너무 조용했다.
갯벌에 숨쉴틈 없이 새겨져야할 갯가생물들의 집도 눈에 띄질
않았다. 그것들이 없는 갯벌은 그저 조용하게 펼쳐져서
물결 무늬만 그려 놓고 있었다.
그래도.. 하면서 깊숙이 파들어가니, 죽은 조개껍데기 속에
몇개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동조개가 몇개 발견되고는 했다.
그러니, 비닐봉지에 가득 조개를 캘거라고 나섰던 아이들이
갯벌바닥을 헤집어 보아도 나오라는 조개는 없고 맨 갯벌뿐이라
곧 실망하고 마는 눈치다.. 조개잡는건 뒤로 하고 마침
밀려오는 파도와 장난질에 한눈을 팔고 말았다.
밀물이 빠져나가는 수로 한귀퉁이에 작은 고둥이 오글거리고만
있는 쓸쓸한 갯벌이, 그 흔한 바지락 하나 못 품고 있는 갯벌이
참으로 안되었어서 마음이 아파왔다.
환경이 오염되면 가장 먼저 바다가 영향을 받는다더니,
그말이 비로소 실감이 되는 현장이었다.
더구나 그곳은 시화호라는 거대한 인공호수가 만들어져
인간의 잘못된 자연관리가 얼마나 큰 자연생태계 파괴를 가져오는가
를 보여주는 산교육장이 아니던가?
그런데도 바다와 강에 댐을 만들고 갯가를 메워
간척지를 만드는 수많은 자연파괴의 현실은 계속되어지는
현실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소사나무가 군락을 이루어서 바다와 맞닿아 있던
선제도의 산들도 다른산들과 마찬가지로 여기저기가
파헤쳐 지고 있는 현장을 벌써 보고 왔던 터였다.
조개를 잡을 생각으로 들뜬 마음을 접고
선제도에 여장을 풀었다.
보호수로 지정된 소사나무 군락지를 뒤로 하고
파도가 하얗게 부서지는 바다를 마주하고 바닷가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아름다운 한때, 사람들은 요트를 타며 환호성을 질렀고,
일찍 식사를 끝낸 사람들은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찍기에 바빴다.
밥먹는 것보다 노는 것이 더 좋았던 아이들은
밥도 대강 먹고 바닷가로 내달렸다.
파도가 밀려왔다 밀려가는 양이 신기한 아이들이
근처에서 주운 스치로폼을 한껏 멀리 던지면 밀물에 실려온
스치로폼을 되던지면서 아이들은 깔깔대곤 했다.
아이들의 그 웃음소리를
실어간 바람이 아직 잎을 틔우지 못한 소사나무 끝자락을
간지럽히고 있었다.
아마도 다음주 즈음이면 아름드리 군락을 이룬 소사나무에도
연두색 푸르른 싹이 돋을 것이고,
부푼 봄햇살을 따라 더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을 것이다.
그들이 와서 그곳에 즐비한 조개구이집을 들을 때마다
그리고 그 맛난 조개구이를 소주한잔과 어울려 먹을 때마다
한번쯤 갯가생물들의 죽음을 기억했으면 싶었다.
그것들의 숨구멍을 막고 매끈하게 파도무늬만 그리고 있는,
그속을 파보면 시커멓게 썩어가고 있는 서해안갯벌을
한번쯤 가슴아프게 생각해 보았으면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