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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품위를 사랑하는 아줌마.


BY ns05030414 2001-08-24

나는 품위있다는 말을 남 몰래 사랑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다 눈치 채도록 품위를 사랑하면 오히려 천해 보이고 품위에 손상이 갈가봐 남 몰래 아닌 척 사랑했지요.
집 앞에 있는 노점상에게서 야채를 사기 위해 나갈 때도 슬리퍼를 신고 가는 법이 결코 없었습니다.
물론 옷 차림에도 신경을 쓰지요.
너무 비싼 옷을 입지 않도록, 그리고 가능하면 천연 소재를 이용한 것으로, 민 소매는 되도록 피하지만 피 할 수 없을 때는 겨드랑이가 결코 보이지 않도록, 아랫배가 강조되지 않도록.
혼자서 아파트 숲을 누비고 걸을 지라도 혹여 어디선가 누가 볼쎄라 어깨를 쭉 펴고 아랫배에 힘을 꽉 주고 다리도 쭉쭉 곧게 펴고 걷지요.
혹여 아는 사람을 만나서 인사라도 주고 받을 때는 '안녕 하세요?'라는 말 한마디의 억양까지도 신경을 쓰며 품위를 지키도록 노력합니다.
물론 표정 관리에도 신경을 쓰지요.
고상하게 소리없이 미소만 살짝 지을 것인 지, 활짝 웃으며 상냥하게 인사할 것인 지, 장난스런 표정으로 유머러스하게 할 것인 지도 세심하게 고려해 보고 인사합니다.
물론 이런 고려를 하고 어떤 방법을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는 않습니다.
내머리는 이런 일을 수행하는 것이라면 컴퓨터가 아무리 발전을 거듭해도 따라오지 못 할 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이미 숙련 되어 있답니다.

오늘도 나는 우아하게 아침 일찍 꽃밭으로 나갔습니다.
꽃을 정말 사랑하는 것인 지, 품위있게 살고 싶은 열망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꽃을 가꿉니다.
밤새 새로 핀 나팔 꽃을 사랑스레 바라 보기도 하고, 밤새 시든 금잔화 꽃 송이는 따 버리고, 새롭게 피는 꽃을 더욱 예쁘고 싱싱한 모습으로 즐기기 위해 사루비아의 빨간 꽃대가 아직 볼 만 할지라도 과감하게 따 버림니다. 어제 옮겨 심은 아프리칸 봉선화에 물 뿌리개를 이용해서 물을 주고, 길 가로 뻗어나와 지나는 사람에게 걸리적 거리는덩쿨 장미 줄기는 전지 가위를 이용해 잘라 버리고, 분재로 키워 볼까하고 화분에 기르는 단풍 나무 몇 그루를 어루만져도 봅니다.
내년 봄을 위해 화단 가장자리로 빙 둘러 씨를 뿌려 기르고 있는 제비꽃 사이에 난 잡초를 뽑아 줍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품위를 사랑하는 이 아줌마가 싫어하는 사람이 나타난 것은.
남이 열심히 가꾸고 있는 걸 뻔히 보면서 그 꽃밭에 침을 ?b을 수 있는 사람.
몇 호에 사는 남자인 지 알 수 없지만 벌써 여러번 그러는 것을 보았지요.
품위를 사랑하는 나는 그런 사람은 적당히 무시하고 인사도 안하고 지냅니다.
나는 그런 사람에게 품위란 무엇인가를 보여 주기 위해 한껏 우아한 자세로 그 남자가 뒤로 지나가는 것을 모른 척 하고 풀을 살피며 뽑았습니다.
그 남자가 우리 아파트 건물을 다 지나 갈 때까지 네 번이나 화단에 침을 ?b었다는 것을 머릿 속으로 세면서.
그 남자가 사라져 보이지 않게 되고 꾸부렸던 자세를 펴는 순간 아차 이 품위를 사랑하는 아줌마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습니다.
아랫 배가 강조되지 않도록 즐겨 입는 밑 짧은 바지와 더위를 피해 입은 기장이 짧은 민 소매 티 셔츠가 꾸부리고 않아 풀을 뽑을 때 연출한 작품.
내가 품위 없다고 싫어하는 그 남자가 뒤로 지나가며 그 꼴을 보고 나를 어떤 여자라고 생각했을까요?
이제 아무도 몰래 품위를 생각하며 우아한 척 하는 짓은 그만 두고 푼수 아줌마로 살아야 되는 것은 아닌지 정말 고민되는 하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