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담배에 대한 규정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또한 우리나라도 생겨야 할까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93

고사리 장마


BY 남풍 2003-04-07

고사리 장마가 시작 되나보다.
빗소리가 제법 세차다.
이미 만개한 벚꽃들은 빗줄기에 지고, 꽃 자리 옆으로 푸른 잎들이 돋아 나겠지.
깊은 숲 그늘진 음지에만 고개 내밀었던 고사리들도,
곳곳에서 빼꼼빼꼼 돋아 날 것이다.
이 비가 그치면 축축한 습기 남은 숲을 부지런한 이들이 밤새 자란
솜털 뽀송한 고사리를 꺾기 위해 새벽 길을 나설 것이다.

그런 새벽에 어머니는 열살 꼬마의 졸리운 눈을 깨웠다.
어스름 속에 앞서가는 어머니의 뒷모습을 ?기 위해,
이슬진 풀 숲에서 작은 발이 부지런을 떨어도 도무지 거리는
좁혀지지 않고.... 멀리 흔들거리던 어머니 등 뒤로 어느 순간
환한 햇살이 비추면,
연초록의 풀잎에 동그란 이슬들은 눈부신 보석이 되었다.

갑자기 깨어나 빛나는 숲길을 끝도 없이 걸어 올라가
산이 깊어지고, 숲도 깊어지다가
돌연 드넓은 초원의 고사리밭이 나왔다.

남보다 먼저 닿은 조용한 숲 속 작은 내에서,
겨우내 수북이 쌓인 낙엽들 사이에 바닥에 조금 남은,
낙엽냄새 배인 물을 작은 손바닥으로 떠내면,
까만 생명체들이 꼬물거리며 손바닥 안을 헤엄쳐다녔다.
끔찍함과 징그러움보다 어린 목마름은 더 간절해,
숨을 참고,
꿀~꺽
마셔 버렸다.

풀 숲 사이에서 다른 사람의 머리가 보였다 안보였다하기 시작하면,
작은 몸을 구부리며 나보다 더 낮게 엎드린 어린 고사리 싹을
부지런히 꺾어냈다.

하나 둘 모아놓은 고사리로 무거워지는
시커먼 보자기를 앞치마처럼 동여맨 배에선,
물 속에 있던 생명체들이 헤엄을 쳐댔는지,
꼬물 꼬물~ 꼬르륵~거리고...

잠결에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 아빠 뭐하는거야?"
"응, 반~죽~"
"반으로 나눠서 끓일거야?"
여섯살짜리 아이의 물음에 웃어 대는 남편의 소리와 빗소리가
섞이다...

"아빠 이거 칼모양 됐어?" 아이의 뜬금없는 소리에
"칼 모양?"하고 묻는 아빠의 어리석은 물음에
"칼국수니까" 당연하다는 대답소리와

뭔가 잘 끓여지고 있는 푸근한 냄새와
부엌을 통해 나오는 열기가....
고사리 장마 빗소리에 섞여... 잠과 섞여 나를 싸고 돈다.

"엄마, 아빠랑 우리가 칼국수 만들었어."하며 나의 낮잠을 깨우는
아이 소리,
고사리 꺾으러 산을 헤집고 다녔더니....
온 몸이 뻐근하다.

돋아난 싹을 자라게 하는 봄날의 빗줄기같은 칼국수 가락이
뽀얀 국물 속에서 뜨거운 김을 내뿜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