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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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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가끔은 내가 나를 잊는다.


BY 雪里 2003-04-06

신부 대기실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혜진이는
하얀 드레스 곱게 입혀 놓은 인형이 아닐까 하는 착각을
잠깐 일으킬 만큼 깜찍하고 예뻤다.

자그마한 체구에 뽀얀 피부를 가진 그애가
화려하고 진한 신부화장을 피하고 연하게 단장한 모습으로
부케를 들고 앉아 있다가
엄마와, 엄마의 친구인 내게 환히 웃어 주는 웃음은
그야말로 황홀이었다.

딸을 시집 보내며 싱글벙글하는 친구에게
머잖아 할머니가 되는데 뭐가 그리 좋으냐며 한마디 해 보지만
가슴가득 차 있는건 부러움 이었다는걸 친구는 알까!

스물다섯.
정말 고운나이.
우리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그때의 나는,
내가 이만큼의 나이를 먹을 수 있다는걸 상상도 해보지 않았었다.

그때 내가 보았던 쉰살쯤의 아줌마들은 원래 처음부터 그렇게
후줄건한 아줌마나 할머니쯤으로 있었던 것 같았다.
내겐 절대로 그런 시절이 안 오는 건줄 알았던 거다.

혼자인 엄마를 두고 결혼하는게 영 마음에 걸려
눈가에 이슬을 매단 엄마에게 다가가 안심시키는 말을 건네면서도
정말 곱다는 동네 어른들의 말씀이 귀에 들어 왔던걸 보면
그때의 나도 별수없는 철부지 신부 이기도 했던것 같다.

이제는 신랑 신부 옆에 새 한복을 차려입고 서서
기념 촬영을 하고있는 사람들이 바로 우리가 되어 버렸는데도
나는 그 고운 신부를 보면서 묘하게도
여자만의 질투섞인 부러움 같은 마음이되어
이십여년이 훨씬 지난 그때의 그시절을 되살리고 있었다.

오랫만에 자세히 들여다보곤 깜짝놀랬던
거울안의 낯설던 여인에게 이제는 많이 익숙하면서도
아직도 가끔씩은 내가 나를 잊고 낯가림 하고 있다.

"모처럼 하루 휴가 받아 나왔으니 하루를 채우고 들어가야지~"
아픈다리 끌고 다니면서도 오랫만에 만난 친구들이 좋아,
아이쇼핑이라도 즐기며 더 같이 있자고 들른 백화점에서
한 친구가 옷을 고른후 내게 눈짓으로 묻는다.

"너네 시어머님 사드릴려구?"

"아니~ 내꺼~!"

"야~아~! 그거 너무 아줌마꺼 같잖어~!"

"우리, 아줌마 맞잖어~ ? 좀 있으면 할머.....니..인데~!"

옆에서 물건을 골라주며 서 있던
딸만큼 되보이는 예쁜 여직원이 말없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