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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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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에 은행잎은..


BY 억새수풀 2000-09-18


가을이 오고 있다.

뜨거움에 잠을 뒤척이던 시간들이 얼마전인듯 한데..어느새 바람끝이 차갑기만하다.

저 나무에 푸릇하게 달려있는 은행잎도 누렇게 변해가고 좀더 시간이 흐르고 나면

힘겹게 그 이파리를 떨구고 말테지...

내 스무한살 시절에 그 겨울 초입이 생각난다.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와 왜 그렇게도 많이 다투었는지.

다투고 난 후에 나는 조용한 찻집에서 커피를 마셨었다.

음악이 어떤 것이 흘렀는지 내가 무슨 책을 펴 놓고 앉아 있었는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참으로 우울한 겨울 초입이었던 거 같다.


다정한 커플들을 보면서 혼자서 칸막이 뒤에 숨어서 울기도 했었다.

서로가 떨어져 있으면 연락조차 막막한 그 시절..그 찻집 문에 시선을 두고,,

혹여 그가 나를 찾아 올까 마음 졸이기도 하고 기도도 했었는데..

그는 한 번도 나를 찾아 나선 적이 없었다.

차잔이 비고 책을 집어 들고 나오는 내 마음엔 그 은행잎보다 더 진한 눈물이

흘렀으리라..

세상과의 소통조차 이어폰으로 가린체..

나는 노래와 바람에 취해 무작정 몇 정거장이고를 걸었던 것도 같다.

그가 짜장면 시켜 먹으며 당구를 치거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할때 나는 혼자서

그 은행잎이 지천인 거리를 걸었다.

그 쓸쓸함이라니...

지금도 은행나무가 가로수인 거리를 지나면 가슴이 아린다.

비밀을 들킬까봐 가슴을 두근거리며 그 은행잎들이 차 바퀴를 휘감고 떨어져 나가는

것을 누구보다 마음 아리게 지켜본다.

남편은 모를것이다.

은행잎에 내가 눈물 짓는 이유를.

부부로 살면서도..서로 공유하지 못하는 비밀스런 추억이 있다는 것이..

때론 다행이고..때론 원망이 된다.

올 겨울 초입에도 은행잎은 그 거리를 메우며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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