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에 맞춰 적절하게 말을 잘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이 그대로 들어 나는 일이라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새벽에 급히 전화를 받고 나가야 할 일이 있어 새벽 여섯시 삼십분을 조금 넘긴 시간에 집 앞에 대놓은 차를 타러 나갔다.
그런데 내차 뒤에 건너 문방구 집 L씨의 차가 겹치기로 대어 있는것이 아닌가.
한적한 시골에선 그 새벽에 택시고 뭐고 잡을 수가 없다.
망설이다 할 수 없이 문방구 집 L씨를 불렀다.
까치집을 지은 머리로 꾀재재하게 눈을 뜨며 "뭐요!"
왜이리 새벽부터 깨우냐는 짜증이 가득 담긴 그말 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대답을 하였다.
"급히 나갈 일이 있어서요. 차가 겹쳐 있을 줄은 몰랐네요"
하니 산적 같은 인상을 있는 데로 쓰며,
"참네, 거 자주 타지도 않는 차는 저 밑에 공터에다 같다 대슈!"
분명 대 놓고 면전에다 짜증을 못이기는 아이 마냥 화를 내고 있는 것이었다.
왜 그랬는지 아무 말도 못하였다.
그가 그렇게 말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인지,
나는 그저 갑자기 닥친 그 상황에 오히려 내가 더 화끈 거리 는 게
무안해서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어정쩡한 몸짓으로 차를 몰아 내 볼일 보러 가면서도
그남자의 짜증이 내 등뒤로 마구 전해 지는것이 내 마음을 무겁게 했다.
문방구집 남자.
학교 앞에서 몇가지 안되는 문구를 갖춰놓고 장사를 한다.
아니 그가 하는 건 아니고 그의 처가 하는 것이 맞는 말이다.
문방구라고는 하지만 산골짝 시골 학교앞 문방구는 그 규모가 초라하기 짝이 없다.
꼬질꼬질 먼지낀 문구는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주인을 기다리며 몇 달이고 그 자리에 진열되 있다.
부지런하고 예쁘기 까지한 그남자의 아내는 아이들에게 떡복이며 오뎅등을 만들어 팔기도 한다.
문구를 팔은 수입보다 오뎅판 수입이 더많을 지경이다.
덩치가 임꺽정같이 큰 그사내는 언제나 문방구 앞을 어정어정 걸어 다닌다.
나는 막연히 그남자가 임꺽정을 닮았다는 생각을 볼 때마다 하곤 한다.
특별히 자기 아내에게 크게 도움을 주는 듯 하지는 않다.
코흘리게 아이들을 상대하는 장사이다 보니 그의 아내가 더 쓰임이 많을 것이다.
가끔씩 마주 칠 때에는 조용히 그저 고개를 까딱 하는 정도의 인사를
하고 지내는 처지 이다.
그러나 조용한 그 인사속에 이웃의 정감이 묻어나는
친절한 미소가 항상 따라가는 나름대론 다정한 인사를 하고 지냈었다.
그랬던 그남자. 문방구집 그남자가
오늘아침 주차문제로 인해 내게 또다른 그의 인격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 차를 타고 먼 시장을 오가곤 했는데
자주 타지 않는 차라니.
그저 늘 하던대로 내집앞에 내차를 댔을 뿐이데.
적어도 '아침일찍 차를 빼게 될 줄은 몰라서 겹쳐서 댔던거라고'정도만 하면 알아 들을 수 있는 일인데
대뜸 화부터내는 그남자를 보니
사람은 한꺼번에 여러가지의 인격을 고루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주치면 늘 웃고 지던 이웃.
내가 본 사람이 문방구집 L씨가 맞나?
약장수 처럼 술술 말을 잘하는 것 만이 말잘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때에 맞춰 적절히 표현 할수 있는 말도 잘하는 말이라 할수 있다.
때와 장소에 맞춰 구사 하는 말에 따라 그사람의 인격을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이웃집 남자의 또 다른 인격을 확인한것 같아
조금 쓸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