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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즐기는 여자


BY water72 2003-03-29

세상 어느 누구가 실패를 좋아하는 이가 있을까.
하물며 실패를 즐기다니, 답답해도 이렇게 답답한 때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즐겁고 행복한 적도 좀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난 우울했다. 외롭고, 쓸쓸했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물론, 원인이 분명 있을거다. 원인을 알려고도 안했을 나이지만.
어쨌든, 이제껏 후회하면서도 잘 살아왔다. 끊임없이 후회하고, 다시 도전하면서 희망을 안고 살고, 다시금 실패하고, 그리고 후회하고....
학창시절, 어느 누구도 내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모든 일은 내 스스로 일궈 나가야 하는 험한 일들이었다. 오히려 나와 교감을 갖을 만한 이가 없어서 힘들기만 했다. 외고집스럽게 그렇게 대학을 보내고, 사회에 나와서 첫 직장을 구했다. 또 나의 실수였다. 장래성이 전혀 없는 회사였다. 첫 단추는 그렇게 잘못 끼웠다. 그래도 다시금 찾아 나서야 했다. 마냥 놀면서 세상을 한탄만 하기엔 내가 너무 성질이 느긋하지가 못했다. 이곳 저곳을 찾아 다니면서 끊임없이 직장을 옮겨다녔다. 2년동안 제대로 돈 몇푼 모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내 직장은 불안정했다. 내 능력 탓도 해보았다. 그것은 그저 나의 생각 뿐이었다. 어느 누구도 알아 주지 않는 나만의 능력인 것이다.
그러던 때에 외롭고, 쓸쓸하며, 미래가 암담했고, 희망이 없어 보일때, 친구의 소개로 한 사람을 사귀었다. 나와 비슷한 종류였다.
나보다 훨씬 낫고, 능력있고, 미래가 밝은 사람이 그리웠다. 그러면서도 이 사람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너무나도 나를 닮은 것이다.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나와 같은 종류의 사람에게 버림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화가 났다.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부모님의 열렬한 반대가 시작되었다. 지아비로 섬길만한 자는 적어도 나 보다는 모든 면에서 나아야 한다는 이유에서 이다.
3년동안의 열성적인 열애와 그에 못지 않은 반대가 드라마 처럼 펼쳐졌다. 결론은 가출이었다. 평소에 친구 한사람 사귀지 않은 문외한인 그 남자 보다는 가출의 대상은 내가 훨씬 유리했다. 왜냐면, 나는 행동주의자니까.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고들 그런다. 그랬다. 내가 이겼다. 임신 4개월에 부모의 강제적인 참여속에서 작은 교회에서 나는 결혼이라는 형식을 치뤘다. 그저 형식이었다. 총 9백만원으로 결혼비용, 신혼여행비용, 기타 전자제품을 구입한 것이 다 였으니까. 정말 형식에 충실한 것이다. 물론, 이쁘지도 않은, 그렇게 속썩이면서 시집간 장녀에게 어느 누구가 이쁘다고 바리바리 싸줬겠는가?
신혼때는 모든것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시어머님의 살림 일부를 물려 받아서 이것 저것 얻은 살림으로 신혼은 시작되었다. 꿈같은 1년이 지나고 아이는 벌써 백일이 넘었을 때였고, 나는 하루 하루 잠이 모자라서 온 몸이 산후 후유증으로 퉁퉁 부어 있었다. 아이가 돌이 지나고서 부터 나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1년 내내 시누이와 같이 살아 오면서 불편했던 것은 일도 아니었다. 남편으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속이 썩어가는 것이다. 특히나, 육아 스트레스가 가장 많았다. 손하나 까딱 하지 않는 스타일의 남편은 내게 오히려 과중한 스트레스 덩어리였다. 평상시에 깔끔하지도 않으면서 오히려 정리를 못하고, 어질르기를 밥먹듯이 하는 사람과 살다 보니까, 나도 이제는 어지르는 것을 생활화 하고 있다. 왜냐, 치워도 보람이 없고, 나만 죽어나는 일이라고 결론 내렸으니까. 그 뿐이랴, 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순간조차도 아이를 봐주지 않는다. 세상을 자기 편하게만 살아온 사람이었다. 남을 배려하거나 신경 써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나를 생각해 준다는 것은 그에게서 사치라는 것을 결론 내렸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자식을 더이상 갖지 않는 것이었다. 이러다가는 내 화에 내가 쓰러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실패를 맛보는 순간이었다. 일생을 걸어볼 만한 결혼이 나의 부족한 견해로 말미암아 고생을 자쳐한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 터놓고 말할 수 있는 처지도 못된다. 그저 하루하루가 나의 선택에 대한 책임감으로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실패가 이제는 제법 즐겁기도 하다. 두렵거나 후회스럽지도 않다. 그저 내 주위에서 늘상 있을 수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앞으로의 나날들 속에서 실패가 다시금 온들 겁나기나 하겠는가.
그런다고 내가 주저앉을 위인도 못되고, 그러니까 앞만 보고 달리는 거다. 뒤를 볼것 같으면,하루도 못산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되고 싶은 것도 있었지만, 다 포기하고 선택한 결혼이 아닌가. 뭔가 내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비록 실패했다손 치더라도 있지 않을까.
그러기 위한 화장을 오늘도 한다. 나의 실패를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