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님의 배려로 마련된 대학스쿨버스는
약속한 시간을 조금도 어기지 않고 도착하여
봄나들에 들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차창으로 밀려 들어 오는 봄햇살의 따가움을
준비해온 아들의 모자를 푹 눌러 쓰고 피해 보려 하지만
봄을 익히고 있는 따가운 빛은
나의 양미간에 만들어진 두줄의 주름살에
인정사정 없이 깊이를 보태려 한다.
전북 고창의 "선운사"
절 뒷편을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동백나무숲은
내가 그동안 보아왔고 알고 있는 그런 동백나무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4월 중순쯤이면
땅이건 나무위건 온통 빨갛다는 그 광경보다
듬성듬성 피어 있으면서 발그족족하게 통그라진 동백의 망울이랑,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잎들이랑,
몇세기를 족히 지켜보고 살아 왔을성 싶은 고목이된 둥치는
서있는데 약한 나를 한참동안이나 더 서 있게 만들었다.
"많은 시간을 살아온 연륜이
저렇게도 아름다움으로 내게 보여지는데
나는 이만큼 살아 오면서 남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고 있을까?"
잠깐동안 나를 돌아 보니 영 자신이 없어
촛점없이 허공을 헤매고 있는 내 시야로
마당 한가운데 죽은듯 서있는 백일홍나무 몇 그루가
잎을 틔울것 같지 않은 모습을 하고 서 있다.
머지않아 화려하게 꽃을 피워내고 일백여일동안 그자리에 서서
절을 찾는 무수한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겠지.
사찰 마당 구석구석에 모든 꽃들을 피게 하고
한번 휘 둘러 보고 나오는 길옆에서
칡즙을 한컵 먹고 가라며 거친손을 까부는 아주머니.
까맣게 그을린 얼굴안에 고운 젊은 얼굴이 웃고 있다.
풍천장어구이로 점심을 먹었더니
각자의 돈으로 먹은 점심인데도 내가 대접한 것처럼
고맙다는 인사를 잔뜩 해 댄다.
상냥한 식당 주인여자는
몇십만원을 세어주는 내게 고맙다며
손수담은 복분자술 두병을 건네 주지만
항아리채 다 준대도 내겐 하나도 안 반가운 선물이니,
같은 물건이라도 사람에 따라 가치가 이렇게 다른가~!
포근한 봄바람으로 가득차 있는 내 가슴은
누가 눈짓만 살짝해도 따라 나서 버릴 것 같은데
어제 온종일 가게 지킨 남편은 감기에 걸렸다고
점심이 다 되도록 가게엘 나오지 않는다.
그래~!
어제는 종일 놀았으니
오늘은 온종일 지키고 앉아 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