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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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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정말 좁더라..


BY 이쁜맘 2001-08-17

집에서 할머니와 있을 우리 아가를 보기 위해 잰걸음으로 퇴근하던 중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1분이라도 빨리 갈까 발걸음을 보채고..
행여 차가 올까 주변을 둘러보며 길을 건너는데 누군가 내 뒤를 휑하니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순간 너무나 낯이 익은 어느 한 남자의 눈매가 떠올랐다. 얇은 눈두덩이에 살짝 진 속쌍거풀..적당히 크고 적당히 둥근 그의 눈매..
뒤를 돌아다 보았다. 그 사람이 길을 건너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지 못했다. 순간 작은 떨림이 있었지만 나는 마치 죄인마냥 서둘러 등을 돌렸다. 세상에.. 여기서 마주치다니..
그가 어떻게 우리집 근처에 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마 결혼후 내가 살고 있는 곳을 알리는 없을 터였다. 그런데 그런 낯선곳에서 그와 마주치다니... 차키를 손에 들고 어딘가를 열심히 가고 있던 그도 아마 지금쯤은 한아이의 아빠가 되어 있으리라..
사귀던 사람을 군대에 보내고 우연히 만났던 그는 나에게 많은 혼란을 줬던 사람이었다. 난 군대에 간 애인을 여전히 사랑했지만 허전함을 달래진 못했다. 그런 나의 빈자리를 그는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내가 나의 애인과 그 사이에서 작은 방황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즐기기라도 하듯..
안만나겠다고... 안만나겠다고...1주일에 한번 보던것을 1달에 한번.. 3달에 한번..6개월,1년... 그렇게 만나기를 3년여...
난 나의 애인이 제대를 하면서 그에게 완전한 결별을 요구했지만 이미 서로에게 많은 상처와 애증을 안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결말을 뻔히 알고 시작했던 일이였고 그는 나에게 다른 것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은 체 그저 만나달라고만 했다.
그리고...
내가 결혼하노라고 얘기했을 때 비로소 눈물을 보였다.
"결혼..결국 그사람과 한다고... 난 니가 그사람과 결혼만 하지 않길 바랬지. 모든 게임은 끝이 나야 아는거니까"
그는 오랜 시간 지나면 내가 자기에게 동화되리라 믿었나 보다.
자게에게 올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믿음으로 몇년을 지탱했었나 보다.
하지만 난, 10년가까이 만나온 내 사랑을 져버릴 수 없었다.
불확실한 감정때문에 내 확실한 사랑의 감정을 포기할 순 없었다.
하지만..
결혼하기 두달전 그와 다시 만났을 때 난 마음이 아팠다. 그는 어느새 나보다도 먼저 결혼날짜를 앞두고 있었다. 공무원이라고 했다. 착한여자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우린 술을 마셨고 그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집에 가겠다는 나를 한사코..애절하게..붙잡았다. 조금만 더 같이 있자고 조금만 더..
난 단호히 돌아섰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 했다. 더이상 확인할 감정도 남아 있지 않노라고...우리 서로 결혼해서 잘 살면 그만이라고..
내가 결혼후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 마자 그에게 또 전화가 왔다.
물론 그도 이미 결혼한 후 였다. 이제는 서로 편안하게 만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나에게 물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그래서는 안될거 같았다. 나의 남편에게 더이상 죄를 짓고 싶지 않았다. 결혼전과 후는 확실히 뭔가 달랐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책임감이 나의 어깨를 짓눌렀다.
그날의 전화가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1년 6개월이 흐른 지금..
난 6개월난 딸아이의 엄마고, 한 집안의 며느리고, 한남자의 아내 아니던가.
내가 그를 보고 도망치듯 등돌려 올수 밖에 없었던 것은 순간 내 머리를 스치고 지가나는 내딸, 남편, 시부모님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의 존재를 사랑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이제는 숨기거나 부끄러워 하지 않으련다.
한때 그의 존재는 나에게 지워내고 싶은 하나의 낙서와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의 기억 한켠에 고이 담아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두고 싶다. 그것이 나로인해 상처입은 한 남자에 대한 예의가 아닐런지.. 그리고 3년여의 시간동안 그래도 가끔은 날 즐겁게 하고 웃게 만들어 주었던 그 사람에 대한 작은 고마움의 뜻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