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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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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우리가 얼만큼 더 만날 수 있을 거라구?.


BY mspark0513 2003-03-24

친정은 그저 \"쉼터\"이고 싶었습니다.

보고 싶어지면 그냥갔고, 사 주시는 것, 싸 주시는 것, 챙겨오기가 일쑤였습니다.

 

쇼핑백하나 가져가서 서너 개 들고 나오는 보통 \"딸 도둑\" 이라는 말에 걸 맞는 그런 딸 말입니다.

 

\"엄마가 해주는 고기재운 것 흉내도 못 내겠던데...\" 그러면 엄마는 집에 가져올 만큼 준비해 놓고 기다리셔서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더니... 서른 살 중반쯤되자 할머니를 닮아있는 내 엄마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내 엄마에게서 힘없는 노인을 발견 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님께 마음만 있으면된다? 아니라는 것을 그때야 알았습니다.

마음도 물질도 함께 여야 함을 느끼면서 내가 해드려야 하고 채워 드려야할 부분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친정으로의 나들이는 뜸해졌습니다.

그리고 한번 다녀오게 되면 이것저것을 챙겨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니 친정의 외출은 \"계획\"된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아니다 싶어 진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넉넉한 형편이 된 뒤에 엄마는 늘 그 자리에 계실 것 같지 않는 조급함이 생겨 버린 것입니다.

한 달에 한번정도 불쑥 찾아뵙고, 맛 나는 점심도 함께하고, 싱싱한 과일 한 봉지 정도 사드리면 되겠다 싶었습니다.

 

오늘 저는 아주 많이 행복했습니다. 엄마솜씨 그대로 전수 받아(?)고기 재우고 약간의 밑반찬을 만들어 친정엘 다녀왔으니 말입니다. 아버지랑 마주 앉아 빈대떡도 부쳐먹고 삼겹살도 구워 점심도 먹고 친정 엄마 옆에서 손잡고 낮잠도 즐겼습니다. 그리고 수없이 재잘거렸습니다. 엄마에게서는 저는 마흔 살 을 넘긴 딸이 아니라 유년시절 당신 품안의 자녀가 되어서 말입니다.

 

\"이렇게 오면 얼마나 좋으니?.. 멀리 살지도 않으면서.... 사실 조금 서운했었다..

의정부에 살면서 때 맞추어만 오고....앞으로 우리가 얼 만큼 더 만날 수 있을 거라구..? \"

 

“앞으로..우리가..얼만큼...더..만날 수... 있을 거라구?”

 

그러고 보니 엄마는 혈당치수 400을 오르내리는 당뇨를 앓으신지 17년이 되었고

저보다 24세가 많은신 엄마가 나이보다 훨씬 늙어 계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참 고우셨는데....

 

사랑 할수 있을 때, 섬길 수 있을 때, 그때를 잘 안다는 것...

그런 지혜와 사랑이 제게 얼마나 부족했던지 돌아오는 차안에서 스스로에게 탄식했습니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주 잘했다 싶었습니다.

“다음에 올 때는...황태 재워올께요...”하고 돌아서 나왔으니 말입니다.

 

“.앞으로..우리가...얼 만큼...더..만날 수... 있을 거라구?”

 

그 말씀에 목 메이지 않도록 그것이 자녀의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검버섯이 생긴 엄마의 손과 유난히 돋 수 높아보였던 안경 넘어 아버지의 눈빛이 유난히

각인되는 그런 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