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언제나 엄마 맘만 있어요.
내 맘은 하나도 없고.
난 언제 내 맘대로 해요?
우리 삼돌이가 가끔씩 눈가가 빨개지면서
결코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하지만 몹시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하는 말이다.
그래서 오늘 삼돌이와 말씨름을 하던
내 입에서 결국 이런 말이 나오고야 말았다.
그래, 그럼 오늘부터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그 대신 엄마도 엄마 맘대로 하고 살 테니까.
알았지?
삼돌이, 뭔가 미심쩍은 듯한 기분이 들긴 드는 모양이었지만 다시금 하나하나 꼬치꼬치 묻는다.
그럼 이제부터 텔레비전 내 맘대로 봐도 돼요?
그래.
인터넷게임도요?
그래.
내가 어질러놓은 것도 안 치워도 돼요?
그래.
수학 공부도 안 해도 되고요?
그래.
책 안 읽어도 된단 말이지요?
그렇다니까..
모두 지 맘대로 하든 말든 결정할 수 있다는 걸
거듭거듭 확인하더니....
아주 횡재를 한 얼굴로 대만족이다.
그러더니 당장 텔레비전 앞으로 달려가
내 표정을 한 번 살피고....
진짜로 텔레비전 봐도 되지요?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그래.
엄마의 확답을 들은 뒤, 텔레비전 스위치를 켜고
아주 편안한 자세로 만화를 본다.
거실과 자기 방을 레고블럭과 과자봉지로 어질러놓고,
저녁밥도 식탁에서가 아니라 텔레비전 앞에 앉아 먹더니
자기가 보고 싶은 프로그램을 다 보고 나서
슬그머니 컴퓨터 앞으로 다가간다.
하지만 차마 자기도 양심이 있는지
컴퓨터를 켜진 못 하고,
인터넷을 할까, 말까? 하지 말까?
만화영화 많이 봤으니까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그냥 인터넷 하지 말까?
내일 수학 공부 해놓고 해야지...
자기 혼자 중얼중얼거린다.
그러든 말든 엄마는 못 들은 척, 못 본 척..
전혀 관심을 안 보이는 기색이자
삼돌이 드디어... 좀 불안해하는 눈치다.
엄마, 나 고만 잘까? 이 닦고?
너 맘대로 해. 왜 엄마한테 물어봐?
모든 게 다 니 맘인데. 이를 닦든, 말든.
그럼 나 이 안 닥고 이 썩어도 돼? 엄마는?
그거야, 이제 엄마랑 아무 상관 없지.
니 이 썩든 말든.... 이젠 엄마 노릇도 안 하는데,
엄마도 아니지 뭐. 그러니 엄마한테 물어볼 필요도 없이
니 맘대로 하라니깐.
그러자 삼돌이 비로서,
아무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눈치더니
괜스레 내 옆을 불안스럽게 왔다갔다한다.
하지만 엄마는 모르는 척,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몇 시간 동안의 자유, 아니 방종 뒤에 찾아오고야 마는
그 씁쓸함. 그 불안함. 그 죄책감...
이 엄마도 예전에 다 경험한 바이다.
그렇게 불안한 몇 분이 흐르자,
삼돌이 얼굴이 완전히 울쌍이다.
엄마가 전혀 아는 척을 안 해주자
엄마 방으로 들어가 엄마 이불을 껴안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더니,
한참 뒤에 다시 나와서 묻는다.
그럼 이제 엄마한테 뭐라고 불러요?
뭐라고 부르긴. 엄마도 아니니까, 아줌마라고 부르면 되겠다.
아줌마?
그래, 아줌마.
삼돌이 아줌마라는 말에 결국 눈시울이 붉어져서 머뭇머뭇...
아줌마.... 하고 엄마를 부른다.
엄마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고, 냉정한 목소리로
왜? 하고 대답해 주었다.
아줌마, 그럼 이제 나 엄마는 누가 해요?
나 엄마도 없어요?
삼돌이 드디어 눈물을 뚝뚝....
하지만 그러는 삼돌이가 오히려 예뻐서 더 짓궂어지는 엄마.
그럼, 엄마 없으니 좋지 뭐.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구.
니 맘대로 살아도 되고. 이 아줌마는 내일부터 아들이나 하나 구해야겠다. 저기 엄마 없이 사는 불쌍한 애들이 많다는데, 가서 한 명 데리고 와야지.
엉엉, 나 아줌마 싫어. 엄마가 좋아. 내가 엄마라고 할 거야.....
삼돌이와 엄마의 힘겨루기는
당연히 엄마의 승리로 끝났다.
하지만 엄마와 동생의 이 말도 안 되는 유치찬란한 싸움을
몇 시간 동안 지켜본 삼순이한테 나타나는
참내.... 쯧쯧... 하는 얼굴을 본 순간,
엄마는 조금 부끄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