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여자가...직장을 갖는 다는 것..
가방끈이 짧고..딱히 특별한 기술도 없는 여자가
한 가정을 이끌고 ,자식을 책임져야 할 직장을 갖는다는 것..
그것은 나로하여금 道를 닦게 만드는 일이다...
일주일에 이틀 우리집에 와서 지내는 아이가
엄마의 휴일을 맞아 집으로 가고
아이를 바래다 주러 나갔던 길에서 생활정보 신문 두 묶음을
들고 들어왔다.
아기엄마가 주고간 돈은 ...다음주까지 집세 낼 돈에 보탠다..
신문을 볼때 늘 사회면 부터 훑어보는 습관은
전면내용이 늘 나와 동떨어진 기사였기 때문일꺼다.
맨 뒷장엔 그나마도...나와 그닥 멀지않은 이들의 이야기가
별 거리감없이 채우고 있었으니까...
앞뒤내용 별 차이없는 생활정보신문 역시
습관대로 맨 뒤부터 펼쳐본다.
문화센터..영업사원모집을 시작으로 앞으로 넘기면서
때밀이..배달..서빙...아르바이트..현장직..파출부..유흥업소
순으로 넘어간다.
난 몸이 약해서 내 몸 하나 씻기도 버거우니 때밀이는 못해.
난 힘이 없어서 음식 배달은 못해..쟁반 떨어트릴 꺼야.
갈비 나르다 기름기묻은 바닥에 고기 떨어트리며 넘어질꺼야.
현장직은 뭐지..? 건설현장에서 모래 나르는건가..
내 살림 실력으로 파출부를 해? 일당도 못 받고 쫓겨날꺼야.
어..?
까페 주방...
까페 주방이면.. 음식점이 아니니 대단한 요리솜씨 없이
간단한 과일이나 그런거...준비해서 내 놓는건가..?
가만있자..30~40 대....나이도 맞네..
'삐리리...'
'네..광고보고 전화 드렸는데요..주방...'
'아..목소리로봐선 젊은데 홀 나가지 왜 주방을 ..?'
'아...아니 전...주방..'
'주방 구했어요...'
딸깍..
다시 시작..
백화점 판매사원...
아이가 학교 갔다 돌아와서 저녁까지 혼자 있어야 해..
늘 악몽에 시달리는 여린 아이...아 그럴순 없지..
우유배달..
괜찮은데..너무 보수가 적잖아..
그리고 보증금인가 권리금도 있다는데..?
지금 낮에 하는 일을 병행하면서...밤시간에 잠깐 일을 한다면
훨씬 나을텐데..
아..있다..
카운터..
그래..카운터 보는데 뭐 어때..?
전화..띠리링..
무진장 친절하다...
'저기..카운터.. 광고 보고 전화드렸는데요..'
'아 네...그래요...자기 몇살이야..?'
'네..저 서른 다...섯...'
'응..목소리 이쁘네...지금 나올수 있어?'
'아..저 제가 지금 일하는 중인데..이따 저녁에...'
'응 그래..애는 누가봐..? 자기 신랑 없어..?'
'네..신랑 없어요..애는..옆집 할머니가...'
'그래 이따 꼭 와...기다릴께..* * 역 10 번 출구오면 전화해...'
'네..'
낮시간 일을 마치고..아이를 저녁먹이고...
재운다..
'엄마...오늘부터 일 자리 알아본다더니..
나 혼자 두고 나가면 안돼....'
'응 옆집 할머니 한테 맡길께...'
'응..나 안심시킬려고 일부러 그러는거 아니지?
일 하는건 좋은데...
나 피아노 학원 보내려고 일하는건 좋은데
나 혼자 두고 가지마..재작년 처럼...그러지 마
나 운단 말이야...'
'응...그럴께 걱정마..'
동대문 시장..
옷가게 할때 물건하러 가면서 잠든 아이 혼자 두고 갔다가
새벽에 혼자 깨어 울다 울다 잠들었다는 한번의 기억을
3년째 끌어안고 있는 아이...
여린..내 딸이다..
잠이 든 딸을 보면서 슬그머니 일어나서 집을 나선다.
옆집 할머니 댁의 불은 꺼져있고
그리고..아이를 맡길곳은 어디에도 없다..
'우리 강아지..
엄마 얼른 일 다녀올께
자다 깨서 놀라지 말고..어린이 성경 보고 있어..
전화코드 뽑았으니...전화 하려면 코드 꼽고 해.
하지만 알지..? 엄만 꼭 돌아온다는거...
십자가 보고 기도하면서 다시 잠들길 바래..
사랑하는 엄마..'
편지는 아이 머리맡에 성경과 함께 가지런히 놓이고
이불을 한번 더 덮고...
눈물을 훔친다.
'여보세요..아까 전화 했던 사람인데요...'
'아 그래..택시 타고 와..내가 택시비줄께
택시 타면 기사바꿔 길 자세히 알려줄께..'
아..참 친절한 사장님이구나..
택시기사는 전화를 끊고 ..신호에 걸려 나를 돌아본다.
'지금 가시는 곳은 손님같은 분이 가실만한 곳이 아닌데
거기 아는 분 있으세요?'
'제가 갈만한 곳이 아니라니요..?
아는 언니가 식당을 해서요.. 사람 사는데 다 거기서 거기죠 뭐.'
'아 그 얘기가 아니라..거긴..갈곳이 없는데..???'
한귀로 흘려듣고..
택시기사가 내려준 곳에 멍하니 서 있었다.
'자기야...자기가 전화 했어..?'
'아 네..'
(참 후덕하게도 생겼다..
뚱뚱한 아줌마..화장기없이 ..사람 좋은 인상이다..)
'어디로 갈까..? 어디 까페가서 얘기라도 할까..?
아님...바로 가게로 갈까..?'
'아 네..뭐 상관없어요.."
'그래..그럼 가게로 가자..
근데 ...자기...놀라지 마..저쪽..골목 보이지...?
저기야..'
아...
순간..하체에 힘이 빠진다..
그러고보니..저 좁은 골목 끝으로 윈도우안에 마네킹같은 여자들이
하얀 드레스를 입고 진열(?)되어 있는곳이 보인다.
골목골목마다 남자손님을 잡기 위한 삐끼들이 팔짱을 끼고
손바닥만한 의자에 앉아있다..
난 뭔가 거절할수 없는 힘에 이끌려...고개를 푹 숙이고
따라들어간다..
'이런데도 카운터가 필요하구나..
이런덴..술도 팔겠구나..
이런덴..아...지금...돌아가야 하는데...'
'자 다왔어..여기야..들어가..'
앗..
그 윈도우에....공주처럼 앉아있는 여자들이
바로 내 눈앞에 있다..
'마담언니~~~~~~ 얘 소금 세번만 뿌려주세요....'
갑자기 사내처럼 생긴 여장부가 나타나더니
내 몸에 굵은 소금 세번을 뿌려댄다..
'왜? 무섭니..?'
'....네...'
'왜? 티비에 나오는 데 같아서 무섭니..?'
'...네..'
'다른 까페로 데려갈까 하다가..그냥 까놓고 말하는게 좋을거
같아서..일루 왔다..머하는덴지 알지..?'
'.....'
'너 어차피 처녀아니잖아..애도 있대며..?
뭐해서 애 키울래..? 얘 직업에 귀천없다..
너 아르바이트해서 한달에 얼마 버니...?
너 보아하니 술담배도 못하고....끼도 없어뵈는데
너 최소 300은 가져가게 해줄수 있어..
저 맨앞에 앉아있는 애 있지?
쟤도 서른 넘었어..쟤 지난달에 700 가져갔다.
얘..있지...일곱식구 지가 먹여 살린다..
여기 좋아서 있는 애들없어..
근데 어쩌겠니..다..지 팔잔걸....'
'저...그러니까..여기서..저...하얀 드레스 입고 앉아서..
그니까..저..남자랑 자는거지요..?'
(나는 ....그냥...가겠다고 일어서면...때릴것 같아서..
티비에서 처럼..무서운 남자들이 쫓아나와서 날 끌고 갈까봐서
나름대로 이야기는 주고받아야 할것 같아서..
나오지도 않는 말을..주워담고있었다...)
많은 얘기를 나눴던것 같다.
일하는 방법...월급....남자들 꼬셔서 카드 긁게 만드는 노하우.
등등...
나는 거기에 앉아있는것이 내게 병균이 옮을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한사코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아이가 깼을까..
울지는 않을까..
내일 일찍 깨워서..아까못한 숙제...마쳐야 하는데..
다행히..
정말 다행이도 포주는 아주 나쁜 여잔 아닌것 같았다..
내 표정을 보더니..
'넌 이런데서 일할 애는 아니다..
하지만..세상 사는거...애 혼자 키우는거..그리 쉬운일 아니다.
하루 더 생각해보고 전화해라...자 택시비다..'
5만원을 내어준다.
저 돈에 세균은 없을까..생각하다가
안받으면...무슨 봉변을 당하는게 아닌지 두려워져서
어설픈 손짓으로 돈을 받는다..
'너 다시 오라고 주는 돈 아니다..편히 생각해라..'
'네..'
'언니........내일 꼭 오세요오~~~~~~~'
꾀꼬리같이 마네킹 여자들이 합창을 한다..
여장부 마담은 '자기야..내일 오기로 했냐..?'하며
귀엣말은 넣는다..
'네..생각해보구요..'
'그래..꼭 와라.............내가 택시 잡아줄께..'
'아 아니예요..저 혼자 갈수 있어요..안녕히 계세요..'
나는..황급히 골목을 빠져나와..길을 건너 택시를 탔다..
꿈을 꾼것 같이..몽롱한 상태에서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모른다.
다행히 아이는 잠들때 그 모습 그대로 자고있다..
내가 써놓고 간 편지도 그래도...있다.
아이를 안고싶었지만...내 몸에 묻은...불결한 공기들이
내 아이에게 묻을것 같아..
화장실로 가서 ...몇번이고 비누칠을 해서...씻어내었다..
뜨거운...물이 자꾸 눈에서 흐른다..
물을 틀어놓고 소리내어...마음놓고 운다...
그래도..
그렇게 씻어버려도 선뜻 아이를 안지 못한다..
내일은 우유배달과 대리운전을 알아봐야겠다..
카운터(?) 보다는 ....그게 더 나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