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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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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영혼은 있는 걸까...


BY 이쁜꽃향 2003-03-11

예전의 난 거의 무신론자였다.
그래서 친구들은 아예 자신들의 종교에
날 억지로 끼워 넣으려 하질 않았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바를
나는 늘 비판하고 증명해 보라는 판검사 식의
태도를 취했기 때문일거다.
하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엔 막연하나마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었다.
나약한 인간이기에...
그러나 영혼이라던지 사후 세계라던지에는
전혀 동감하질 않았단 게 솔직한 고백이다.

그런데 친정어머니가 가시고 난 이후부턴
정말 사후 세계가 있다는 걸 믿고 싶다.
그래야만 내 어머닐 만나
그간의 불효를 사죄드리고
다시 한 번 한 가족으로써 살 수 있을 거란 생각 때문이다.
아니 그동안 입은 은혜가 너무 커
그걸 조금이나마 갚기 위해
어머니의 몸종으로라도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어서
사후 세계나 영혼은 꼭 있는 거라고 믿는다.
그래선지 요즘은 막연히
마음의 고통이 있으면 나도 모르는 순간에
'엄마...좀 도와주세요...'라는
마음의 기도를 하게 된다.

평생 당신 마음의 커다란 짐이었던 막내 아들넘과 손자.
어머니의 임종 앞에서 나는
그 둘을 정말 잘 보살피겠노라고 거듭 약속을 드렸다.
내가 친엄마처럼 잘 키우겠다고,
일어설 수 있도록 모두 도와주겠다고,
그러니 부디 툭툭 털고 일어나 내 마음 아프지않게 해 주시라고...
간절한 내 염원에도 어머닌 깨어나지 않으셨다.
아마도 너무나 병마에 시달려
그 고통에서 벗어나시고 싶어
미련없이 생을 버리셨을 것이다.
남아있는 딸에게 더 짐이 되시기 싫으셔서라도...
이렇게 내 마음 아릴 거란 건 아마도 생각 못하셨겠지...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어머닐 살리고 싶었다.
한달여를 시간만 되면 어머니 병상을 지키며
제발 회생하시기를 빌고 또 빌었다.
어쩌면 그간의 불효가 한꺼번에 밀려 와
만일 이대로 가셔버린다면
난 어떻게 해야하나 하는 마음에
애가 탔기 때문에 더 간절했는 지도 모른다.

걱정스런 마음에 잠이 안 오던 어느 새벽,
TV홈쇼핑을 보던 중
마침 홍삼 제품을 특별 판매 하는 광고가 있었다.
일전에 동료로부터 그 제품이 좋더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 뒤로 홈쇼핑에서 통 만날 수가 없어 구매를 못하던 터라
재빨리 주문을 했다.
그리고 며칠 후, 병실을 지키고 있는데
아래 직원의 전화가 왔다.
"선생님.
홈쇼핑에서 물건 사셨어요?
경품 당첨 됐다고 연락 좀 해 주라던데요."
경품이라니??
이거이 무슨 뚱딴지???
참고로 난 지금까지 단 돈 천원짜리 한 번
공짜로 먹어 본 적이 없다.
제비뽑기 계에서도 늘 꼴찌이기 때문에
아예 난 맨 나중 남은 걸 택할 정도였으니.
그래서 애시당초 복권이니 증권이니 하는 것은
눈도 돌리지 않는 터였다.
아마도 잘못 걸린 전화려니 그냥 지나버렸다.

몇 주 지나 잠시 사무실엘 들러 책상에 막 앉았는데
홈쇼핑이라며 전화가 왔다.
김치냉장고가 당첨됐다는 것이다.
뭐??? 진짜로???
아니 우째 내게도 이런 기막힌 일이?!!
전혀 믿기지가 않았다.
어머니때문에 우리집에 내려와 있는 여동생 말이
네살박이 조카가 마트에 갈 적마다
'엄마, 내가 김치냉장고 사줄께'했단 말을 듣고
'올 6월쯤 보너스 타면 내가 하나 사줄께'라고 약속을 했었는데...
어쩌면 그 약속을 5개월이나 앞당길 수 있게 되다니...
그것도 아무런 힘도 안 들이고.
막연히 어머니가 내 힘을 덜어 주시려고
염력을 주신 건 아닌가 몰라...하는 느낌이 왔다.

엄마 가시고 조카녀석 초등학교 면접 때
또 다시 아무런 연락조차 없는 동생넘 땜에
고모 엄마로 조카와 동행해야 하던 날,
저녁에 엄마 사진을 붙잡고 울며 중얼거렸었다.
엄마, 나 고만 힘 들게 좀 해 줘...
제발 아들넘 정신 좀 차리게 해 줘...응?
그리고 다가 올 입학식엔 어떻하나 얼마나 심란했는지 모른다.
하루하루 시간은 가고
조카만 딸랑 우리집에 놓고 간 남동생은
한달이 다 되도록 여전히 연락조차 없다.

드디어 입학식 전날,
무거운 발걸음으로 중얼중얼 엄마를 향해 이야길 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엄마, 나 어떻하라구...
내일 입학식 때 모두 엄마들이 올텐데
우리 민이는 얼마나 기가 죽을까...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안쓰러운 조카를 생각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왠 낯선 구두가 눈에 띈다.
저건 분명 남동생 구두다!!
그간의 미움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신발도 벗는 둥 마는 둥 뛰어들어갔다.

나는 한 번도 꿈에 뵈시지않는 어머니가
동생넘 꿈엔 자주 보이더라는 것이다.
생전처럼 병상에 호흡기 꽂으신 채로
무슨 말씀인가를 자꾸만 하시고 싶어하며...
그래서 빨리 나오려고 했는데 일이 늦어졌댄다.
그럼 전화는 왜 안했느냐 나무랬다.
중국에서 아무리 전화를 해도 나와 연결이 안되더라나...
그거야 분명 핑계에 불과하겠지만
어찌됐든 제 아들넘 입학식에 동행할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난 얼마나 위안이 되었던지...

지금도 난 그 모든 게
어머니의 영혼이 보살피신 거라고 굳게 믿고 싶다.
내게 더 이상의 고통을 주시지 않으려고,
짐을 덜어 주시려고 배려하신 거라고...
그간 어머니께 불효했던 걸
조카를 잘 보살피는 것으로 속죄하려한다.
그러면 어머니의 영혼이 편안해지시리라 믿고 싶기에...
아마도 내 곁 어디에선가 어머니의 영혼이 지켜보고 계시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