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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것!


BY allbaro 2001-08-12

이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것!

공허한 하루였습니다. 어떤일도 하지 않은 절대 게으름의 하
루였습니다. 텅비어 버린채 지나간 하루였고, 누웠고, 쉬었
고, 몇 쪽의 카프카를 보았고, 두 번의 샤워를 한 하루입니
다. 사람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텅 빈 들판을 바라본 비어
버린 눈동자의 하루였습니다. 코란에 따르면 아무것도 먹지
말아야할 그런 일하지 않는 하루였습니다. 소주잔을 집어 들
며 나자신이 회교도가 아닌것에 조금 다행임을 생각하였습니
다. 이렇게 온전히 하루를 비워 시간이 정지되고 숲의 향기
만으로 하루를 살아내었던 기억이 이전에 있었나를 애써 돌
아 보았네요. 중학생이 되던 그해 이후로는 그런 일이 단
한번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었습니다. 놓아버린 삶이라
는 순간을 다시 돌아보고 있습니다. 지나치게 바쁘고 지나치
게 소모 하였으므로, 내겐 휴식이라는 것이 없었던 십여년의
시간들이 엇! 하는 사이에, 저녁놀에 비추어져 전봇대 보다
도 더 키 크게 늘어진 검은 문앞에 서있는 나의 발밑에서 길
어져만 가고 있었습니다. 담장안의 일원으로써 괌이나 파타
야의 bright skyblue의 해변에서, 몇 일 온몸을 Baker's
Chocolate로 알맞게 그을리던 시기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늘 일의 한 귀퉁이에서 숨을 쉬었고, 진정한 자유라는 단어
는 지나치게 습관적이었던 기억입니다. 한가로운 소모였고,
진정한 휴식이었습니다. 나는 가슴의 밑바닥을 보았고 자유
로운 공기를 호흡하고 있었습니다.

숲 아래에서 시간이 정지 하였으므로 나는 밀도가 조금 다르
게 조정된 공간에서 텅비어 버린 눈동자로 들녘을 보았습니
다. 한가로운 구름이 하늘을 이리저리 떠 돌고 있었고, 일찍
부터 예상한대로 전혀 드라마틱한 일은 생겨나지 않았군요.
이 행성의 몇 곳쯤은 이런식으로 방치되고 낡아 가고 자유로
울 것이지만, 이곳은 연결되어 있지 않으므로 소모되지 않는
것입니다. 매미소리만 이건 너무한걸? 할 정도로 귀를 비집
고 들어오고 새조차 날지 않은 진공의 오후 였습니다.

이런 것은 곤란한 일입니다. 분명하게 아주 곤란한 일입니
다. 지금은 새벽 3시, 살아있는 대부분의 것은 정적속에서
잠들어 있습니다. 창밖으로 보이는 별 빛은 근심어린 눈으로
내려다 보고 있었고, 개울물이 흐르는 소리만이 간간히 귀를
찾아올 뿐입니다. 당신이 생각났고 당신에게 사과할 일이 기
억의 문밖에서 주춤거리고 있었습니다. 물론 웬일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냥 물이 물이고, 소주가 술인 것 같이 그렇
게 다가온 기억입니다. 당신과 헤어지기로 결심한 후, 당신
이 다시 찾아 왔을 때, 나는 나의 가슴이 이미 납덩이로 변
해 버린 것을 당신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생각
하였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어중간한 상태
에서 다시 당신과 함께 한다는 것이, 비록 심한 모험이 될지
도 모르지만 단호하게 당신의 결심을 촉구하는 편이 두 사람
의 미래를 위하여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멀쩡
하고, 단단하고, 당신이라는 여인이 아니더라도 이 세상을
멋지게 항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당신께 확실히!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시작된 이 항해는 벌써 얼마동안이나 뱃사람들의
벗인 별자리도 없이 떠돌고 있는지 모릅니다. 언제까지 일른
지도 모르는 일인채로, 이렇게 신비로우며 달콤하여 가슴을
에이는 정적으로 둘러진 밤을 뜬눈으로 새우고 있는 것입니
다. 12월5일 당신과 헤어지고, 12월 14일 당신이 비상약들과
와인을 사들고 마지막으로 나를 찾은지 4개월쯤 지난 차가운
어느 밤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역시 당신에게 나는 당신
보다도 더 멋진 사람을 만나겠노라는 나의 차가운 선언처럼
그렇게 어떤 사람을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저 암울하였기 때
문입니다. 청담동의 지직스는 우리가 자주 들르곤 하던 곳이
었지요. 세련된 Black 베이직의 공간과, Neon blue의 인테리
어가 어두운 분위기와 함께 얼굴만 공중에 부유하는 듯한 느
낌을 주었고, 그리하여 필요없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잘 가려
주는 그 조명이 Cool하였으므로 나는 그 공간을 많이 사랑하
였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 길다란 삼각형의 깔끔한 크리
스탈 잔에 한잔의 맥주를 마시는 것은, 우리의 일과후에 가
장 즐기는 일중의 하나였던 그 기억도 나는 사랑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방금 만들어낸 미소를 던지며, 나를 바라
보는 당신의 눈동자를 도대체 얼마만큼인지도 모르게 사랑하
였습니다. 습관이 등을 밀었던 까닭에 그곳으로 발길이 향하
게 되었습니다. Light Steel Blue의 계단을 내려가 커다란
투명 유리로 되어있는 현판으로 들여다 보이는 그곳의 홀은
이미 사람들로 가득하였습니다. 아마 금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어? 오셨어요? 음 자리가 없네? 아! 네에, 이쪽에 한자리가
있습니다. 늘 앉던 Bar에는 이미 사람들의 뒷모습만 가득히
병풍처럼 둘러져 있었기에, 이따가 자리가 나면 옮겨줘. 네
그러지요. 라는 답을 듣고 홀의 가운데 자리에 앉았습니다.
의자를 조금 당기고 허리를 펴서 편안하게 앉았을 때, 나는
나와 함께온 여인의 표정이 조금 이상한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반사적으로 오른쪽을 보았을 때 당신의 석화되어 버
린 신생대의 프로필을 40Cm밖에서 발견 하였습니다. 공간이
딱 멎어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밤마다 수 없이 전화기를 들
었다가 다시 놓게 만든 당신을, 사막의 사구가 되어버린 침
대에서 뒤척이다가, 한조각 추억이 눈앞에 영상으로 나타나
면 곧바로 냉장고로 달려가 부글거리는 Light Wood의 모래에
온갖 술을 부어 버리게 만들던 당신을, 의외의 장소 그리고
적당하지 않은 시간에 이렇게 마주치다니... 당신의 앞자리
에 앉아 있던 두명의 여자친구들중 하나인 희은이가 어색한
목례를 건네었고, 나도 어색한 목례를 하였던 기억입니다.
Midnight Blue의 성에가 내렸고 투명한 얼음의 윤곽만 큐브
의 공간을 이루어 내고, 두 테이블은 빙하속의 맘모스가 되
어버렸습니다. 그렇게 양쪽의 테이블은 동시에 모두 차갑게
얼어붙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한 백만년 동안은 얼어 있었습
니다.

다시 현재의 시간이, 얼어붙은 두 개의 테이블 사이로 어슬
렁 거리고 난후, 나는 묘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나의 여인에게
불쑥 피스타치오를 건네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에는 그
것을 반으로 쪼개어,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물려 주었습니
다. 나의 본능은 자! 그렇게도 그리워하던 그녀가 바로 곁에
있다, 잠시 나가서 이야기를 하자고 해라. 그간 당신을 얼마
나 보고 싶어 하였는지 모른다. 나는 당신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지난 몇 개월의 수 초마다 다시 확인하곤 하였다. 그래
가자 도망가자. 당신이 가자는 곳 어디로든 가자... 라고 솔
직한 절규를 하여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저 말없이
당신이 아닌 여인에게 피스타치오를 까서 입술에 넣어 주었
고, 당신이 내게 절대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것처럼 행동
하였습니다. 나의 심장은 호흡곤란의 상황에 파랗게 질려 있
었을 것이고 나는 나의 자존심이 시키는 대로 격랑이 되어버
린 파도에 밀려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존재를 아는
내 앞의 여인은 많이 어색해 하였으나, 나는 묵묵히 맥주잔
을 비우고 더욱 부드러운 눈길로 정면의 그녀를 응시하였습
니다. 나는 당신을 원망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온갖 각서와 온
갖 계약서를 다 끌어 대더라도 명백히 아니었습니다. 나는
당신을 나의 방식대로 내곁에 되돌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나
는 당신과 도망을 가야한다는 것이 자존심 상했고, 당신이
헤어짐을 고려하고 있다는 것이 자존심 상했고, 당신이 아직
도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은 것에 상처입었을 뿐입니다. 나
는 너무나 당신을 원하고 있었지만 그저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하였고, 내 마음속엔 무엇인가가 나를 단단히 결박하고 있
었습니다. 틀림없이 당신은 내 마음을 알지 못했을 것이고,
당신의 마음엔 나의 분노만이 옮겨 졌을 것입니다. 아니 어
쩌면 그런 상황을, 내 마음을 모두 알고 있었기에, 당신은
관계를, 추억을, 미래를 회피한 것일까요? 잠시 화장실로 가
서 차가운 물속에 두 손을 담그고 오른쪽으로 회전하는 어질
한 공간과, 아찔한 마음을 추스리고 돌아왔을 때, 그 짧은
시간에 당신과 일행들이 있던 테이블에는 검은 조명만이 동
그랗게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는 이밤, 지금
이순간 까지도 나의 마음에 각인이 되어 남아 버린것입니다.
텅 비어 버렸다는 말로는 부족한, 방금 만들어낸 페인트의
내음이 짙은 생경한 공간처럼, 당신의 자리엔 조그만 삼각
조명이 당신의 향기만을 정지한채, 펼쳐 내고 있었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얼마나 불편하였는지 나는 이제 알고 있습니
다. 나 역시 편안하고 즐거운 일은 절대로 절대로 아니었습
니다. 당신 역시 절대로 몰랐겠지만, 아니 지금도 전혀 모르
고 있었겠지만, 나는 그날 이 행성이 45도나 기울어 지도록
그렇게 많이 취하고 말았답니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입었던 마음의 상처를 당신에게 되돌려
주는 옹졸한 짓을, 마침내 과감하고 무모하게 저질러 버리고
만 것입니다. 당신의 앞에서 당신과 함께일 때보다 더욱 잘
지내고 있다! 라는 공허한 과장이, 내가 당신께 했던 유일한
짓이었고, 아직도 앙금으로 남아 성급한 귀뚜라미와 함께하
는 이유입니다. 나는 당신께 언젠가는 분명한 사과를 하여야
겠지요.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미안한거야. 그녀도 어찌해야
할 바를 잘 몰랐던 것이고, 아마 내게서 어떤 확고한 결론이
있기를 바랬었나봐, 하지만 나는 상처입은 나의 자존심만을
돌아보고 있었던 바보였어. 그렇게 몇 번이고, 나는 그녀에
게 상처를 주었지. 나는 그녀와 함께 어디로든 떠나야 했고,
그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어.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미처 모르고 있었던 그런 중요한 일이었지. 누추한 서
식지를 찾아왔고, 함께 소주를 마신 동생에게 그렇게 이야기
를 합니다, 동생은 말없이 기타를 들고나가 귀뚜라미의 공간
에 로망스를 흘려 놓습니다. 살아있는 생명은 모두 잠든 이
시간 동생의 손 끝에서 탄생한 수은이 투명하게 도르르르 구
르는 듯한, 아름다운 소리가 부드럽게 공간에 녹아듭니다.
잠시 귀뚜라미도 귀를 기울이고 나는 자리를 돌아 눕습니다.

어쩌면 형이 1,000개의 글을 남기는 순간 그녀가 돌아 올지
도 몰라. 형이 사랑하였던 모든 순간을 글로 남겨서 형의 마
음을 있는 그대로 펼쳐 보여 줄 수 있다면 언젠가는 그녀가
브루클린에서 돌아와 형을 찾을 지도 몰라. 나는 가벼운 웃
음을 짓고 말았습니다. 관악산 쪽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 녀
석이지만, 어쩌면 어린애 같은 생각을 다하는군! 하는 웃음
이었지만, 실은 나 자신 그렇게만 된다면... 이라는 더 철없
는 생각을 잠시 떠올린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차
피 소설가도 아니고 문학가도 아니므로 언젠가는 그만 써야
겠다! 라며 무늬없는 향나무 연필을 던져 버리고 말지도 모
릅니다. 이제 마악 배우기 시작한 게으름이 마음에 들었으므
로, 나는 더더욱 게을러 지고 싶을 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그럴까요? 천개의 글을 쓰면 그런일이 일
어날 수 있는 것인가요? 그게 확신이 있는 일이라면, 그녀의
회귀가 가능한 전설이라면 나는 이제부터 한잠도 자지 않고
1,000개의 글을 쓸것입니다. 내 마음속의 장미와 튜울립을
모조리 말라 버리게 한 당신과의 이별을 돌이킬 수 가 있다
면 나는 셀 수 없이 많은 밤을 별자리 아래 머물더라도 그리
할 것 같습니다.

소주잔을 오른손에 들고 Bright Magenta 로 저물어 가는 노
을을 보다가 동생에게 뜬금없이 물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
장 차가운 것이 뭘까? 그리고 혼자 대답 하였습니다. 이별을
선언하는 여인의 입술... 그러면 이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것
은 뭘까? 다시 혼자 대답을 하였습니다. 사랑을 확인하는 여
인의 입술... 그리하여 오늘밤은 행성에서 가장 차가운 밤중
의 하나가 될 것 같습니다. 당신이라는 온기가 빠져나간 메
마르고 얼어붙은 심장을 가진 사내의 차가운 밤. 당신은 모
르고 있겠지만 그런밤도 이 세상에는 때로 존재하는 것입니
다. 아시겠어요?

하아~ stan getz 가 para machucar meu coracao를 뇌에 녹여
넣습니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무엇도, 어찔할바를 모르고
있다는 것에 다시 놀라곤 합니다.


세 그루 소나무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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