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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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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안 아이들--2


BY 마음그리기 2003-03-10

티브이 보급률이 아마 50%를 넘지 않았을 때였다.
요즘 아이들이야 방과후에도 학원을 두세곳은 다니느라
놀 시간도 없고 컴퓨터에 친구를 빼앗길 정도니....

그 때의 골목안 아이들은
기다란 골목에 뉘집 대문앞 계단쯤이
안성마춤인 놀이터고 아지트였다.
티브이가 없는 애들은
똘망똘망한 눈으로
계단을 연단 삼아 간밤의 흥미로운 프로를 재생해내는
티브이가 있는 집 아이를 쳐다보느라
목아픈줄도 몰랐을것이다.

골목의 가장 높은 곳에는 담장밖으로 무화과 나무가 뻗쳐나오던
경아네 집이있었다.
경아는 서울에서 갓 전학온
말수가 적은 조용하고 새침한 아이였다.
나또한 그동네로 이사한지가 오래지않아서
조용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어느날 연애를 따라서 놀러간 경아네집에는
검은색 윤기가 반들거리는 피아노가
떡...하니 방안에 놓여있었다.
풍금도 아닌 피아노가.....
말이없던 경아는 우리 앞에서만은 또래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이야기도 곧잘하고
엘리제를 위하여같은 명곡들을
작은 손으로 능숙하게 연주해보이곤했다.
그 때부터 나는 피아노가 치고싶어 열병을 앓았던 것같다.
골목을 지나노라면 들려오던 피아노소리가
바로 경아가 치던 소리였음을 그때야 알았다.

경아네 부엌에는
..당시 대부분 연탄을 사용하던 시절이엇는데..
요즘의 인덕션처럼 생긴
작고 동그란 화덕(?)같은것이있었다.
전기 코드만 꼽으면 스프링처럼 휘감긴 코일이 금세 빨갛게 달구어지고 주전자는 금방 바글바글 끓기 시작했다.
그때 경아 엄마가 끓여주시던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코코아가
어찌도 달콤하고 맛나던지......
그런데...
경아는 어디가 많이 아픈 아이였다.
병명을 자세히 알지는 못햇지만
규칙적으로 병원을 다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어떠한 사연인지는 모르나
항상 엄마와 외할머니만 같이 사는것같앗다.
그러던 어느날인가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경아는 이사를 가고 없었다..................

어스름 저녁이되면
아이들은 골목에서 샛길로 조금 벗어난 공터에 모여서
전쟁놀이를 했다.
남자애들은 편을 갈라서 전사가 되고
여자들은 여군이거나 간호장교였다.
그당시 나는 늘 간호장교를 햇었고
전쟁놀이가 있던 날은
집에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나갓었다.

빨간약..약솜..반창고.....언니가 교련시간에 쓰던 붕대까지.

별 쓸일도 없건만 제법 구색을 갖추고 놀다보면
정말 간호사라도 된것처럼 신이났었다.
남자애들은 용맹스럽다가도
내가 약상자를 들고 나타나면
서로 부상병이 되겠다고 떼를 쓰기도 했었다.

기억에 남는 남자애 둘이있다.
경익이와 병학이는 둘 다 부유한 가정의 아이들이었다.
둘중 하나는 검사 아들이었다.
경익이는 남자 쌍둥이 동생이있었는데
둘다 곱슬머리에 개구쟁이처럼 생겻었다.
언제나 자상하고 친절했던 경익이였다.
두 쌍둥이는 나만보면
그 나이에 뭘 안다고...형수님,형수님,하며 따랐었다.

반면,
외동아들이었던 병학이는
쌩콩한 성격에 어딘지 잘난척이랄까,,,그런분위기였다.
그래선지 그애랑은 별로 이야기를 나눠본 기억이 없다.
전쟁놀이를 하다보면
경익이와 병학이는 항상 적군이 되어 있었다.
나는 경익이와 편먹고
병학이는 연애랑 편먹고
늘 연애에게 부상당한 상처를 치료(!)받곤했다.

육영수여사가 저격당하던 해던가...
우리는 골목안 동네를 떠나야했다.
어릴적엔 이사를 해도
어디로 간다던가...어떻게 연락을 하자던가...
그런 기약도 없이
그저 부모님들이 짐싸서 차에 실으면 그만이었다.

세월이 흘러 내가 여고생이 되었을때였다.
옆반 여학생이 어느날 나를 불러냈다.
복도에서 그애는 꽃봉투에 담긴 편지를 전해주었다.
의아해하며 뜯어본 봉투안에는
경익이라는 이름이 작게 쓰여있었다.

가슴이 뛰었다.
2:8 가르마를 단정하게 타서
고개를 움직일 때마다 흘러 내리던 경익이의 머리가 떠올랐다.

편지는 길지않았다.
토요일에 ㅇㅇ빵집에서 만나자는.....

며칠을 두근거리며 보냈다.
나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걱정도 되고...
아직도 단정한 멋쟁이 남학생일까.
키는 얼마나 자랐을까.
쌍둥이들은 잘 지내고있을까.
여전히 골목안에서 살고있을까.

드디어 토요일이 되고
방과후에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아서
몇번을 망설이다가 빵집으로 향했다.
주저함보다는 추억이 훨씬 더 크게 나를 이끌었기에.

빵집안은 학생들로 가득했다.
여기저기 시커먼 교복들속에
과연 누가 내 추억속의 친구인지를 알아내기란 힘들었다.
그때,
저만치서 한 남학생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웃는 미소가..입언저리가 분명 경익이었다.
내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경익이의손은
그 옛날 희고 작은 손이아닌
그야말로 떡두꺼비같은..........

자세히 본 그애의 차림은
그 당시 좀 노는 남학생들 차림, 바로 그 표본이엇다.
삐딱히 눌러쓴 모자에
팔랑거리는 나팔바지, 옆구리에 낀 홀죽한 책가방,

오우! 맙소사.
신이시여...이게 꿈이라우 생시라우...?
그토록 아름다운 기억속의 친구가
이런 모습으로 나타나다니....

난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서둘러 빵집을 나왔고
그 시절 자주 듣던 노랫말을 읊조리며
가슴을 ?다.

차라리 만나지나 말것을..................

하지만 지금은 그 모습또한
색다른 추억으로 간직하게 되었다.
이제는 정말 배가 불룩한 아저씨가 되어있을
그 시절의 친구들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