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의 꽃샘추위가 물러간 휴일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아파트 화단의 개나리들은
금세라도 터질 기세로 한껏 물올라있다.
모처럼 아이들 손을 잡고 재래시장을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코에 익숙한 냄새가 풍겨왔다.
작은 아이가 '엄마, 저거 뭐야?'하고 묻는데
큰 아이가 얼른 나선다.
'저건 뻔데기야, 징그럽지?'
아직 징그러운것이 뭔지 모르는 작은애는
신기한 듯 들여다보더니 이내 관심을 잃는다.
번데기.......
내가 우리 큰애 나이였을때 쯤,
하두 이사를 여러번 다녀서 학년을 가늠하기조차 힘들지만
암튼 그나이 무렵에 아주 길다란 골목안에서 살았다.
우리 집은 그 당시에는 좀 산다하는 사람들이나 살았던
2층 양옥이었다.
1층에는 우리가족과 윤희네가 함께 살았고
2층은 방 세개가 비어있었다.
자그만 마당 가에 등나무 한그루가 심어져 있었는데
여름에는 무성한 잎에 하얀 등꽃이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피어 달렸었다.
거기에 벌과 나비도 모여들고
바람결에 은은한 등꽃향도 묻어나곤했는데....
문제는....
그 아름다운 자태는 뒤로하고
송충이같은 애벌레가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온통
점령한 채 기어다니는 시기가 있다는것이었다.
보기만해도 온몸이 스멀스멀해지는 ....
그 뿐인가.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벌레들이 겨울나기를 위해
나무 줄기마다 기다란 줄에 나뭇잎으로 집을지어
대롱대롱 매달려있다가
지날때마다 이마며 머리에 부딪히는 그 느낌은
또 얼마나 소름이 끼치는데.
그 동네에는 연애라는 아이가 살고있었다.
이름때문에 늘 놀림거리가 되기도 했던
연애네 집 마당 멍석에는
언제나 번데기가 가득히 널려있었다.
연애 아버지는 리어카에서 번데기를 팔았다.
아이들은 연애네 집에가서 번데기를 얻어먹는 재미를 즐기곤했지만
나는 한번도 먹어보질 못했다.
언젠가...
우리집 등나무에 겨울내 줄을달고 붙어있는
벌레집을 떼어 껍질을 부수고 열어보니
연애네 집에있는 번데기랑 똑같은 것이
윤기도 반지르하게 살아서 들어있었다.
장난끼가 발동한 나는
옆방에 살던 윤희와 벌레집 몇개를 따서
번데기를 꺼내어
연애네 집 마당에 널려있는 번데기 무리에
그것들을 던져놓고 도망나왔다.
그때는 그 번데기가 우리집 번데기랑 같은 걸로 알았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알면서 장난을 한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전과가 있었기에
동네 아이들이 그리도 고소하다며 먹는 번데기를
나는 아직까지 한번도 먹어보질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한 장난인데...
그때 연애네 집 번데기를 사먹고
누군가 배탈이라도 났더라면
나는 평생을 속죄하며 살아야 할 일이다.
딸 아이가 엄마는 왜 번데기를 안먹느냐고 묻길래
차마 그 이야기는 못하고
엄마는 번데기 알러지가 있단다라고 말해줬다.
어느 넝쿨나무가 있는 집 아이가
나같은 장난을 또 하지말아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