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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을까?


BY kinlin 2001-08-12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가을을 느끼는 여러님들의 마음이 전위된걸까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그때 그생각이 나며 웃음이 픽 난다.
십오년쯤 인 것 같다.


나이어린 나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으면서 꾸준히 월간지를 보고
있었는데 어느달엔가 읽고난 잡지를 낙도나 군인들에게 보내자는
잡지사측의 작은 운동이 있었다. 이왕 읽은잡지 좋은일도 하고
사람도 알게되고 해서 잡지를 필요로 하는 곳 중에서도 제일 오지인
비무장지대 에서 근무하는 군인에게 잡지를 보내게 되었다.
그렇게 그 군인과 나는 매월 잡지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이병 때 부터의 인연을 병장이 되도록 유지 하고 있었다.
그렇게 긴 시간을 공감하면서도 우린 약속이나 한것처럼
서로에 대해선
이름석자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는게 없었다.
그렇지만 그 시간들을 같이 할 수 있었던건 詩가 있었고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것 같다
그런 어느날 제대를 앞둔 마지막 휴가때 그가 날 찾아 오겠다는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그때 많은 열등감에 싸여 있었었다.
오남매의 맏딸이었던 나는 동생들 공부 시킨다고 공부할 시기를 놓치고 있었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집안형편은 나를 지치게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 사람을 만날 자신이 없었다.
그가 온다는 날짜는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었고 나는 하루하루를
그가 못오게 할 핑계꺼리를 짜내고 있었다.
그런 어느날 핑계댈 필요도 없는 아주 괜찮은 일이 생겼다.
그 사람이 온다는 그날, 촌에 있는 외삼촌이 내려 오신다는
것이다.

 

나랑 나이 차이가 세살 밖에 나지 않는 외삼촌은 내려
올적마다 겁많고 소심한 나를 위해, 그당시 우리가 누릴수 있는
문화공간들을 찾아 다니면서 공유할 기회를 주려고 애써고 있었다.
외삼촌은 그날도 친구를 만나고 수영만 요트경기장에서 있을 ㅇㅇ의
공연을 보려 갈것이라고 했다. 그럴것이라고 편지를 쓰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맘 속으로 그렇게 서운해져 이제 그만 인연을
끝내고 싶다는 무책임한 생각도 많이 들고 있었다.

 
그날은 토요일, 외삼촌과 나는 버스를 갈아타려고 서면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 반대편으로 왔다. 그곳은 우리집으로 가는
버스정류소 이기도 하다.
그곳은 향상 사람이 붐비는 곳이고 토요일인 탓으로 더 소란스러웠다
그런곳에서 유독 한사람 내 눈길을 끈다. 카키색 군복을 입은
군인 한사람,,,
키는 적당했고 체구는 왜소하고 얼굴엔 한여름의 땡볕을 고스란히
받은 주근깨가 밉지 않아보였다.
손에 노란 서류봉지를 들고 있었다. 그 모양새가 단정해보였고
얼굴엔 아직 풀리지 않은 어떤 긴장감으로 눈빛은 총명해 보였다.

 
서로 사진한장 주고 받은적 없으니 알리는 없지만 순간적으로 내 눈은
그의 가슴에 있는 명찰로 향했다. ㅊ ㅅ ㅇ 나랑 그렇게 이름하나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던 그이름이다.
마음속으로 나 누군데 혹시 그 누구 아니냐고 간절이 묻고 있었지만
입밖으론 한마디도 나오질 않고 있었다.
그는 우리집가는 버스가 오자 버스에 오르고 있었고 나는
수영만으로 가는 버스정류소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엄마는 오늘 낮에 어떤 군인이 날 찾아왔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주었고 그 얼마후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나 없는 그곳에서 한없이 걷다가 그냥 왔다는 짤막한 내용의 편지를
그렇게 우리의 담담했던 인연은 끝이났다.

 
나는 아직까지 모른다. 그 사람이 그 사람이었는지를
아마 그 사람도 지금쯤은 중년을 향해가는 성실한 가장일테고
좋은 아빠가 되어있겠지...
오늘밤 갑자기 오래된 그일이 생각나는것은 시원해진 바람과
이름모를 풀벌레 소리때문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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