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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399

간 큰 여자


BY 수련 2003-03-04

한적한 길만 다니는 시골여자가
복잡한 서울도심속으로 차를 몰고 나갔다면
그 여자는 틀림없이 간 큰여자이다.

대구에 계시는 언니가 이사온 우리집에
다녀왔다가 내려가신다길래 기차를 태워주러가기위해
서울역으로 차를 몰고 나갔다.
3월1일이 휴일이라 시내에 차들이
많이 없겠지 라는 시골여자다운 발상으로,
또,평일날 몇번 서울시내를 관통한 이력(?)으로 나서는데
"서울은 달라서 그래도 차가 많을걸.."
남편의 조심스런 만류에
"걱정말아요, 무사히 돌아올테니까.."
큰소리를 치며 딸과 언니를 태우고 용감하게 나섰다.

마포에서 신촌으로,세종문화회관까지 머리속에
입력된 지도로 순탄하게 잘 갔는데
서울역을 불과 500터쯤 남겨뒀을까
재향군인회 사람들인지 머리에 띠를 두르고
모든차들을 올스톱시키며 돌아가라고 했다.

'어~안돼.여기서 헷갈리면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길에서
미아가 되버리는데 어쩌지'

3월1일의 휴일은 평범한 휴일이 아니었다.

삼일절!

반전과 주한미군철수반대를 외치는 시위가 있을줄
시골에서 갓 올라온 여자가 어찌 알수있단말인가!
서울시청앞을 꽉 메운 인파가 그 넓은 도로를
차지하고 있어 꼼짝 못하던 차들은 한대씩 돌아나가는데
떠밀리다시피 우리차도 돌아나갔다.

"저어기서 돌아가면 서울역뒤가 나와요"
얼룩무늬옷의 아저씨의 말이다.무턱대고 다른차를 따라 돌다보니
어디가 어딘지...높은 빌딩숲에서 돌고 또,돌아봐야
가는곳마다 밀려서 차는 움직이지않았다.

그래도 다행인건 서울에 와서 남대문시장에 가보고싶다는
언니말에 일찍 나서서 서울역 주차장에 세워놓고
지하도를 건너 다녀올거라고 3시간정도
빨리 나섰기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길가에 언니를
내려놓을뻔했다.

2시간여를 차안에 갇혀있던 언니는 시계를 보며 한켠에 차를
세워놓고 가자고 야단이다.딸애가 이모를 달랜다.
을지로가 나오고 퇴계로가 나오고,청계천이 보이고,
나중에는 왕십리표지판까지 나왔다.

기차시간은 다가오고.....길가에
유로주차장이 보여 일단은 차를 세워두고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서 언니를 배웅하고
돌아나오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집까지 갈일이 난감했지만 차는 가지고 가야하니
또 한번의 전쟁을 치러야했다.

어찌어찌하여 집까지 오기는 했지만
조바심을 내며 기다리던 남편은 얼굴이 노래져
들어오는 마누라가 안쓰러운지 얼른 누우라고
자리를 펴준다.
"여자가 무슨 간이 그리 커냐? 서울이 어디라고
함부러 차를 몰고 나가기는..." 궁시렁거린다.

-오늘 아침의 또,간 큰 여자-
서울을 자주다니는 친구에게 버스전용차선에 대해서
들었지만 아침시간에는 그 차선으로 들어가고싶은
마음이 꿀떡같이 일어났다.
남편이 교육받는곳에는 차량5부제가 실시가 되어
9,4일에는 차를 가지고 못가니 할수없이 열흘에 두번은
입구까지 태워주고 돌아와야한다.

서울사람들의 인내심은 알아줄만하다.
아침마다 오랜시간 동안 밀리는 차량행렬에도 아랑곳않고
매일 차를 가지고 출퇴근하는일이 가상할정도니까.
파란선안으로 씽씽 달리는 버스를 보면
차라리 차를 두고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남편도 그런생각이 드는지 버스 번호를 알아봐야겠단다.

어떤 승용차들은 무인카메라가 지나면
얼른 파란선안으로 들어가 버스뒤를 바싹 붙어 가다가
카메라가 나타나면 옆차선으로 무대포로 끼어들어오고..
곡예도 잘한다.

오늘 아침에도 엄청 밀렸다. 지각이다 싶은지 초조해하는
남편을 보니 나도 애가 탔다.
조금만 더 가면 우회전할건데...
저만치 뒤에서 버스세대가 연달아 오는게 보였다.
나란히 막아서면 우회전을 어찌할꼬.에이 모르겠다.
우회전 깜빡이를 넣으면서 파란차선안으로 미리 들어갔다.

"이 여자가 간 크게 어딜 들어가냐"
남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앞에서 순경이 손짓을 한다.
아이쿠!
평소에는 없더니 왜 오늘은 서있나.
시침을 떼고 "왜그러세요"
"버스전용차선위반입니다"
"경남에서 올라와서 파란선이 뭔지 모르는데요"
내가 살던 한적한곳에서는 버스전용차선이 있을리가 없다.

"그리고,시골에서 올라와서 길도 모르고 버스들때문에
우회전을 못하면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는데 우짜라고..."
얼른 내 말을 짜르며 옆에서 남편이 거든다.

"버스가 연달아 오니까 복잡해서 할수없이 미리 들어왔어요.
*****로 가니까 우회전을 해야하잖아요.정 안되면 스티커끊어요"
잘났다!
경남번호판을 내려다보다가,목에 힘을 주며 위엄스레 앉아서
위반딱지를 발부하라는 남편과
차창에 붙은 마크를 보니 확실한것 같기도 하고,또
운전대를 잡은 시골아줌마티가
줄줄나는 내모습을 번갈아 보더니 흔쾌이 가라고 손짓한다.

"이사람아!,시골에서 왔다 소리는 왜 자꾸하며,버스전용차선을
모른다소리는 왜 하냐.그냥 당당하게 말하면되지"
태워준 보람도 없이 아침부터 된통 야단만 맞았다.

5부제에 걸려도 다음부터는 절대로 태워주지
않을거다.
걸어가든 뛰어가든 알아서 잘 가보라고.
이제 차를 타고 나서는 일이 두려워진다.

지금 마음은 서울시내에 갈땐 다시는 차를
가지고 나가지 않을거라고 다짐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며칠전의 악몽을
또 잊어버리고 간 큰 여자가 되어
용감하게 차를 가지고 나설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