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마주치며 눈인사를 나누던 나와 비슷한 연배의 "아줌마"가 있었다.
항상 우아한 미소와 깔끔한 모양새가 호감을 갖게 했다.
오늘 우리는 길에서 우연히 또 만났다.
"어머, 어디 갔다 오세요?" 어깨를 나란히 걸으며 그녀가 물었다.
나 또한 동행이 생겨 반가웠다.
"큰딸이 몇 살 이예요?" 그녀가 내게 물었다.
"네...? 아~ 예에... 스물 여섯 이예요." 느닷없는 질문이었지만 난 별 생각 없이 대답했다.
그녀; "그럼 애인 있겠네요?"
나 ; "글쎄요, 아직은 공부를 더 하고 싶답니다."
내 대답이 끝나자마자 그녀가 목청을 높였다.
"어머머~~~ 어쩜 좋아, 너무 속상하시겠다!"
"예...?" 난 그녀의 말귀를 얼른 알아듣지 못하고 되물었다, "왜요?"
그녀는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얼른 치우셔야죠."
"뭐라구요?" 난 슬며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걸 꾹꾹 눌러 참고 있었다.
그녀는 아랑곳 않고 계속했다,
"얼른 치워야 맘이 편하시지, 나이 차서 시집 안가면 얼마나 걱정거린데....."
난 더 이상 그녀와 대화하고 싶지 않았지만 같이 걸어야 할 길이 좀 더 남아 있었다.
"왜 그래야 하는데요?"
시큰둥한 나의 반응에 그녀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머머, 결혼시키는 게 부모의 도리죠, 그럼 평생 데리고 사실래요?"
"데리고 살다뇨?" 난 어이없어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가슴이 답답해왔다.
"이제는 성인인데 어떻게 살 것인가는 본인이 선택하겠죠, "데리고 산다"는 것도 "치운다"는 것도 월권 아닌가요?" 난 냉담하게 내 뱉었다.
"어머머, 많이 웨스터나이즈(westernise) 하셨군요!" 그녀는 의외라는 듯 날 바라본다.
"웨스터나이즈라뇨? 당연한 것 아닌가요? 이제 그 나이면 성인이니 독립된 인격체로 대우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난 화가 나서 자꾸만 말이 빨라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 애들은 평생 우리의 자식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고 우리들 소유 또한 아니니까요."
너무 다른 가치관을 갖은 두 "아줌마"는 서로 화났다.
간단한 목례로 헤어지면서 빠른 걸음으로 뒤도 안보고 들어왔다.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 부모 된 도리는 어떤 것일까?
정녕 결혼만이 우리가 딸들을 기르는 궁극적인 목적일까?
흔히들 결혼을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그들에게 충분히 선택할 기회를 주고 있는 것일까?
또 한 사회적인 안목은 결혼 안 한 우리의 딸들을 충분히 성인으로 대우하고 있는가?
아직도 "치워야할" 숙제로 "데리고" 살아야할 무능한 보호의 대상으로 그들을 치부하는 것은 아닐까?
그들의 능력이나 가능성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부모의 도리" 라는 미명으로 포장된 아집의 그늘아래 그들을 나약하게 길들이고 있지는 않은가?
물론 나이 차서 결혼하고 아이 낳고 일가를 이루는 수순을 무리 없이 선택한다면 그 또한 아름답지 아니하겠는가?
그렇다면 자기가 원하는 분야의 공부를 더하고 싶다는 사람은 무엇이 잘못되었단 말인가?
그들에게도 선택의 기회를 주자!
어느것도 절대적으로 옳거나 틀린것은 없다, 다만 다를뿐이다!
소위 "道理"라 칭하는 부모들의 소유욕이 그들에게서 미래를 스스로 설계할 기회를 빼앗는 것은 아닌가?
다른 한 편에서는 부모가 만든 유리성에서 자란 우리의 아이들이 권리만 있고 책임은 배우지 않아서 모른다.
부모의 끝없는 보호와 지배의식 속에서 그들 자신의 자아 소속감을 잃은것은 아닌가?
부모의 도리에만 몰두하느라 "자식된 도리"를 가르칠 기회를 놓친 것은 아닌가?
우리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수 있는 이런 현상 역시 부모라 칭하는 우리의 실책 아니겠는가?
언제까지나 부모에게 당연한 것처럼 "要求" 만 하는 몰염치를 묵인할 것인가?
부모가 모든 숙제의 해답이 아님을 깨우쳐 주자.
부모란 힘들때 위안 받을수있고 기대어 쉴수있는 뿌리깊은 나무로 자리매김하자.
그들이 숙제를 하는동안 밤을 밝혀주는 등불이 되어주는 건 어떨까?
그들을 착각에서 깨워 스스로를 가늠할 기회를 주자!
부모가 언제까지 그들을 대신 할 수 없다면 그들이 홀로 서게 한발 물러서 주자!
그들 스스로 삶을 계획하고 관리 할 수 있도록 지켜봐 주자!
자식에 대한 병적인 관심과 집착이 오히려 그들에게 장애가 되지 않는지도 살펴보자.
나도 자식들에게 기대도 크고 바램도 있는 사람이다.
허지만 내 욕심으로 접을 뿐 최선을 다 해 자제한다, 그들의 인생이지 아니한가?
나는 될 수 있으면 자식을 독립된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려 노력한다.
나 또한 자식들에게 그렇게 대우받기를 기대한다.
그들이 내 자식이고 여자이기 이전에 절대적 가치를 갖은 "인간"으로 대접받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진정 부모 된 길은-----
자식을 내가 원하는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되고 싶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닐까? 감히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