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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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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지키기 위해


BY 이쁜꽃향 2003-02-21

마지막 숨을 거두시는 친정어머니께
눈물로 약속을 드렸다.
당신이 못내 마음에 걸려 하시는 손주를
내가 친 엄마 못지않게 잘 키우겠다고...

평생을 자식을 위한 생으로만 살아오신 어머니께
마지막 가시는 길이나마
걱정없이 편안하게 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장기 중 가장 오래까지 그 기능을 하는 것이
청력이라 한다.
그래서 의식이 없는 환자옆에서
함부로 얘길 하지 말라는 당부를 들은 지라
혹시라도 깨어나실지 몰라
마지막이라는 느낌이 들만한 말들은
삼가해 왔었다.

평생을 망나니 아들 때문에 속 끓이시고
끝내는 손주까지 맡아 기르시느라 병 얻으신 어머니께
그 뒷치다꺼리를 다 해야하는 내 입장에선
자연히 좋은 말들이 나오질 않았다.
이젠 그 때의 내 말들이 후회로 남아 가슴을 후빈다.
당신 죽고 나면 이 어린 걸 어떻하나 늘 걱정이시던 분이
어떻게 눈을 감고 가셨는지...

절대 그 아들 뒷바라지까진 않겠다고 늘 단호하게
잘라 말했던 게 어머니 마음에 얼마나 상처가 되셨을까...
한 달 가까이
이제나 저제나 소생하시지 않을까
병상을 지키다가 결국은 포기해야함을 알게 되던 날,
난 아무런 의식이 없으신 어머님께 눈물로 약속을 드렸다.
아무 염려 마시고 편안히 계시라고...
친엄마처럼 남부럽지않게 잘 돌보겠다고...
엄마 마음 내가 다 아니깐
원하시는 거 다 해 드리겠다고...

이 나이 되어서도 친정어머니 안 계시니
마치 고아인 양 무기력해지기만 한데
세 살부터 할머니 밑에서만 자라 온 저 녀석은
얼마나 기가 죽었을까.
엄마랑 함께 하는 제 친구들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평소에 큰 고모를 제일 무서워하는 조카녀석을
어떻게 대해주어야 그 선입견을 없앨지 걱정이 앞선다.
아무리 망나니라지만
제 아들 초등학교 면접일인 데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홍역예방 접종을 마쳐야만 입학이 가능하다기에
부랴부랴 접종하고 서둘러 초등학교엘 가 1번으로 면접을 마쳤다.

전생에 내가 친정에 무슨 빚을 그리 많이 졌길래
이렇게 끝도 없이 친정 치다꺼리를 하는 건지
한숨을 쉬다가도
한 편으론 내 능력으로 그 정도라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스스로 위로해보기도 한다.

우리 아들녀석들 초등하교 시절이 까마득한데
저녀석을 어떻게 뒷바라지 해야하는지
입학식을 앞 두고 걱정이 앞선다.
망나니 동생놈은
누나가 엄마와의 약속을 꼭 지킬 사람이라 여겨
제 자식 나 몰라라 안중에도 없이
안심하고 멋대로 방탕한 생활을 하게된다면 어찌해야 하나...
하지만 저 어린 게 무슨 죄가 있어
부모 복도 없이 고모 밑에서 살아야하는지 안쓰러워
고인이 되신 어머닐 생각하여
한걸음씩 아이에게 다가가려 노력중이다.
가신 분과의 약속도 약속이지만
아무도 돌봐 줄 이 없는 조카녀석의 앞날을 위해
내 마음 다시 한 번 다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