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피곤해서만이었을까.
아픈 환자에게 왜 그토록 화를 내야했는지.
정말 후회스럽다.
하지만 그 사람이 너무 야속하다.
365일 술에 절어서 지냈던 날들.
그렇게나 말렸건만...
이제와서 내게 남은 건 그 뒷치닥거리
뿐이다.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한 적이 있었던가.
아무리 사랑하려고 노력을 해봐도
그의 모난 성격때문에 마음은 점점 멀어져갔다.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
자라온 성장과정때문인가.
아니면 장애때문인가.
형제들과 아버지 산소에 가기로 했는데
또 갈 수가 없다.
언제쯤이나 이런 구속에서 해방이 될런지.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나는 날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며칠전엔 친구들이 하루정도 놀러가자고
했다는 말을 전하니 당신 친구들은
미쳤단다.
환자 놔두고 어떻게 놀러갈 수 있겠냐면서...
물론 난 처음부터 갈 생각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말해야 하는가.
미우나 고우나 남편이 있어서 곁을 든든히
지켜주는게 낫다고 다들 말들 한다.
그러면서 있을 때 잘해주란다.
그들도 나와 같은 처지에 빠진다면 그럴 수 있을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도 이제는 미워진다.
돈쓰는 것도 하나하나 신경이 쓰이고
시간적인 여유도 없다.
그저 하루종일 환자하고 있어야한다.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매일 아프단다.
어느땐 측은한 마음도 들지만
나도 이제 지쳐가고 있다.
하루라도 쉬고 싶다.
몸과 마음을...
그 사람 자기 아픈 걸 무기로 내세운다.
걸핏하면 당신이 내게 어떻게 이럴수 있냐고?
그럼 난 감정도 없는 사람이 되란 말인가.
오늘만 해도 그렇다.
막내동서하고 전화한 내용가지고
트집을 잡고.
안그래도 병원일이며 신경써주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오지 못하게 거짓말을 한건데
그걸 가지고 야단이다.
답답하다. 정말.
밤마다 가슴이 터질것처럼 답답해서
잠을 설친다.
가슴 한 가운데 무언가 꽉 막혀서
치밀어 올라오는 것같다.
자고나도 개운치 못한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간다.
과일을 깍아서 주고
아침을 준비한다.
국을 끓이고 두부를 데치고 나물을 무치고.
그리고 청소. 빨래.
또 점심. 시장보기.
저녁준비.
가끔 외출을 할 때면 눈치를 봐가며 허락을
받아야한다.
억지춘향이로 허락을 받아도 나갔다 들어오면
또 눈치를 보고 허겁지겁 저녁을 지어야하고.
오늘만해도 그렇다.
다른 형제들은 모두 아무 걱정없이 남아있는데
혼자서 쓸쓸하게 먼저 빠져나왔다.
환자가 있다며 등을 떠미는 어머니.
안쓰럽게 바라보는 형제들.
정말 소리내어 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닌척하고 명랑한 음성으로 작별을 햇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비참한 심정.
물론 환자도 힘들겠지.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예민해 질 것이다.
그러기에 서운함도 많을 것이고.
하지만 조금만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
그게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바람직 하다는 것을
왜 모르는지.
내일 어떤 결과가 나올지...
걱정스럽다.
그 사람 정말 오래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더욱 잘해주고 싶었는데 마음처럼
되질 않으니 어쩌면 좋을지.
지극정성!
그 사람이 자주 쓰는 용어다.
아내에게서 늘 부족함을 느끼는 그 심정
나도 잘 알고 있지만 나 자신도 건강하지
못하니 늘 피곤하고 힘이 든다.
앞으로 어떤 시간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까.
긴 투병.
아버지가 갔던 길만큼 일까?
과연 내가 그 힘든여정을 감당할 수 있을런지
자신이 없다.
또한 그 사람이 가고 없는 세상에서
난 또 어찌 살아가야하는지.
아..
정말 답답하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평생을 살아야했고
사랑하지 않는 그 사람을 보내야한다.
거울에 비친 지치고 늙어가는 나의 모습.
남들에게는 약한 모습 보이기 싫어서
당당하고 의연하게 대처를 하지만
나의 속마음은 얼마나 여리고 약한가.
아침에 일어나서 아프다며 방문을 열고
나오는 그의 모습.
섬?하다.
훌쭉한 볼. 검은 얼굴. 야윈 손가락.
죽음의 그림자를 본다.
잘해 줘야지...
그런데 그게 마음먹은데로 잘 안되니.
난 악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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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지하철 참사자를 애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