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이 처음 우리 학교에 오셨을때 남학생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
냈다.하얀 부라우스를 검은 스카트안에 넣어 입은 선생님은 너무
나 날씬 하고 몸맵시가 그야말로 죽여줬는데 얼굴이 동물원에 있
는 지능이 제일 발달한 동물을 닮아서 였다.영어를 담당 하셨는
데 문학에도 소질이 많으셨는지 잡지에 글을 투고 해서 당선 되
셨다며 월간지에 게재된 글을 보여 주시기도 했다.내가 지금까지
만났던 어떤 선생님 보다 그분에게 가장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것
은 내속에 잠재된 작은 끼를 하나 하나 꺼내 주신 분이기 때문이
였다.학교에는 그때까지 방송반이 없었는데 선생님이 어느날 교
내 방송 어나운서를 두명 뽑았다.운좋게 그중의 한명이 나였다
다른 친구는 공지사항 같은것을 방송하고 나는 시낭송을 하게 해
주셨다.지금도 잊을수 없는 구르몽의 낙엽 이라는 시다.마이크를
통해 전교실에 울려 퍼진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밟는소리를 낙엽
빛갈은 정답고 쓸쓸 하다 ...이렇게 시작된 시는 내 목소리를 통
해서 울려 나갔다.나는 어릴때 부터 의미는 잘 모르지만 책읽기
를 좋아해서 초등학교때 부터 왠일인지 소설책을 읽기도 했다.
그리고 중학생이 되어 뜻도 모를 글을 일기에 써 놓기도 했는데
선생님은 늘 감상을 적어 주셨다.어린 학생이 외로움 어쩌구 저
쩌구 써 놓았는데 항상 선생님은 진지한 답을 써 놓으셨다.나는
그런 선생님이 코스모스 닮았다고 생각 하면서 공부는 하기 싫었
지만 일기는 열심히 썼다.어린 눈에도 얼굴 이쁜 선생님 보다 항
상 사색 하는 선생님이 좋았다.선생님은 짜장면을 좋아 하셨는지
여러가지 반찬을 늘어 놓고 먹기보다 짜장면 한 그릇이 영양도
많고 맛이 있다고 말씀 하시기도 했다.미혼이신 선생님은 정말
여러가지로 우리의 힘이 되어 주셨다.영어 시간에 읽기를 좋아
했었는데 인터네이션이 좋다고 칭찬도 받았다.그렇지만 시험 성
적은 마음먹은대로 나오지 않았었다.그렇게 우리와 친해 져서 공
부를 하던 어느날 선생님은 반장 남학생과 나를 부르셨다.삼학
년 졸업식에 송사를 읽으라고 하셨다.둘이 번갈아 가며 읽었는데
구절 구절이 왜 가슴이 그렇게 저려 왔는지 남학생도 나도 울먹
이며 읽고 답사를 하던 졸업생도 울었다.그렇게 배려 해 주시던
선생님은 결혼과 함께 학교를 떠나셨다.당신이 남학생들에게 그
렇게 심한 별명을 들으시고도 너희들 왜 그러느냐고 한번도 얼굴
붉힌일 없이 언제나 못들은척 지나가신 선생님이 셨다.학교 졸업
후 친구들과 한번 ?아간적이 있었다.놀라웠던 것은 선생님 남편
을 보고나서 였다.정말 미남이셨다.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어떻게
? 속으로 놀라면서 금새 이해가 되기도 했다.내가 남학생들과 달
리 코스모스 선생님이라고 하는것 처럼 그분도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씨에 반해서 결혼 했을것이라고 짐작이 되었다.그리고 세월
이 흘러 나는 어나운서 시험을 보았다 . 유리 건너쪽에 몇명인가
사람들이 앉아있고 나는 나누어준 원고를 읽어 내려 갔다.뉴우스
를 말씀 드리겠습니다.로 시작되는 원고는 진짜 방송되는 원고
였었고 시험이 끝난 우리는 대기실에 앉아 이차 시험 을 기다렸
다. 몇번의 시험끝에 지방방송 어나운서를 하게 되었다.첫 방송
은 지방의 소식을 짤막 하게 전하는 것이였는데 원고를 든 손이
부둘 부들 떨렸다.노련한 박 아나운서가 옆에서 차분한 진행을
해 주셨기 때문에 떨리는 내 목소리는 어느정도 안정이 되었었
다.그렇게 즐겁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던 어나운서 생활을 하
던 어느날 친구가 ?아 왔다.나와 함께 송사를 읽던 친구가 서울
대 정치 외교 학과를 졸업 했는데 고시 공부중 행방불명이 되었
다고 했다.그남학생은 전체 수석으로 중학교에 입학을 했었다.
목소리도 좋고 정말 아까운 친구인데 행방불명이라니 마음이 이
상 하게 저려왔다.뭐 좋아한다던가 그런 감정이 아니고 함께 송
사를 읽으며 막연히 느꼈던 그런 감정이 되살아 났다.방송이 끝
나고 커피를 마시며 잊었던 그 시절의 아름다운 기억을 되살려
보았다.만일 그때 코스모스 선생님이 방송반을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라고 생각 했다.아주 작은 가능성을 발견
하고 그 숨겨진 재능을 일깨워 주신 코스모스 선생님께 감사 하
며 마이크를 쥘것을 다짐해 본다.이 가을 들녁에 핀 코스모스는
누구에게나 가녀린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지만 나에게는 코스모스
선생님이 인생의 스승이자 영혼이 아름다운 분으로 남아있을것
이다.지금 교단에 서신 수많은 선생님들이 어린 제자들의 가슴
속에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고 이끌어 내시고 계실것이라고 생각
한다.코스모스 선생님은 들녁에 흐드러지게 핀 꽃송이 보다 더
많이 계신다고 생각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