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눈이 많이 내릴 것이라고 모두들 수군거렸다.
일기예보에 의하면 많은 눈을 동반한 스톰이 둘이나 연달아 서부에서 이 곳 동부를 향해 오고 있다고 하였다.
올해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눈 치우는 일에 할당된 예산은 이미 바닥이 났다는데, 학교들도 눈이 와서 빠진 수업일수를 채우기 위해 휴일에도 수업을 해야 한다는데, 눈이 또 온다고 하였다.
나이가 들어도 아직도 눈을 보면 즐거운 나는 은근한 설레임으로 눈을 기다렸다.
하긴 지난 번 눈이 왔을 때 혼자서 눈사람을 만드는 일이 예전처럼 즐겁지는 않았다.
아이들이랑 같이 눈사람을 만들어서 눈도 만들고 코도 만들고 목도리도 둘러 주고 모자도 씌워 주고 할 때와는 달랐다.
아이들이 없으니 눈사람에게 둘러 줄 목도리도, 씌워 줄 모자도 없었다.
혼자서 만들다 보니 멋 적기도 하고 재미도 없어서 적당히 만들다 말았다.
그래서 내가 만든 두 개의 눈사람은 눈도 코도 입도 없는 멍청이가 되었다.
모자도 목도리도 없이 서있는 멍청이 눈사람을 보면서, 생각 없이 낄낄거리고 산다고 남편에게 구박 받는 나도, 아이들이 곁에 없으니 쓸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여전히 철이 없는 나는 눈을 설렘으로 기다렸다.
금요일 밤부터 거리에 인적이 뜸했다.
매주 금요일 밤이면 남편이랑 같이 가서 듣는 부동산 교실에 출석한 사람 수가 다른 날에 비해 적은 것을 보니 눈이 시작하기도 전부터 사람들이 나다니는 것을 자제하는 모양이었다.
토요일 하루 종일 눈이 내렸다.
그래도 길이 막힐 정도는 아니었는데 토요일 밤에 있는 모임이 취소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일요일에 교회도 문을 닫기로 했다는 연락이 왔다.
일요일도 하루 종일 눈이 내렸다.
드디어 길에 다니는 차들이 끊겼다.
부지런한 남편이 몇 번 눈삽을 들고 문 밖을 들랑거리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치워봐야 소용이 없단다.
이런 날은 벽난로에 불을 피우면 좋겠다고 하더니 그 것도 안되겠다고 한다.
뒷마당 한 쪽 구석에 쌓아 둔 장작을 가지러 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뒷마당으로 통하는 두 개의 문은 쌓인 눈으로 인해 열리지 않은 지가 오래다.
설령 문이 열린다 해도 무릎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장작을 옮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일요일은 하루 종일 창가를 오가며 드라이브 웨이에 세워진 자동차 바퀴 높이와 쌓이는 눈의 높이를 비교하며 보냈다.
아 참, 이런 날 내가 하는 짓이 또 하나 있다.
달 밝은 밤 늑대 울음 소리와 비슷한 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런 나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며 핀잔을 주기 일쑤이던 남편이 나랑 오래 살긴 산 모양이다.
이제는 자기가 먼저 괴상한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월요일, 원래는 휴일 중의 하나다.
수업일수가 모자라 휴일이지만 눈이 와도 수업을 강행하겠다던 학교들도 별 수 없이 학교를 닫기로 했다는 뉴스가 들린다.
병원들도 문을 닫은 곳이 부지기수임을 뉴스를 통해 듣는다.
오전까지 날리던 눈발이 드디어 그쳤다.
28인치가 왔다고 한다.
부지런한 남편은 내리는 눈에도 불구하고 벌써 새벽부터 나가 눈을 치우는 일에 열심이다.
한 시간 반을 치웠다는데 간신히 현관문에서 자동차가 서 있는 곳까지 길을 뚫어 놓은 정도이다.
부엌 창문을 통해 이 집 저 집 눈 치우는 모습이 보인다.
사거리 건너 두 번 째 집에는 엄마 아빠와 함께 서 너 살 되어 보이는 꼬마도 눈삽을 들고 나섰다.
어른들 옆에서 자기도 부지런을 떠는데 그 삽에 실리는 눈이 몇 알이나 되는 지 멀리서 보는 내 눈에는 헛삽질로 보인다.
거실 창문을 통해 보니 우리 앞집 이웃에는 아버지를 따라 나선 꼬마와 함께 송아지 만한 검정개도 눈 치우는 일에 나선 모양이다.
제법 나이깨나 든 개인지 움직임이 점잖다.
우리 옆에 사는 아저씨는 일요일에 쌓인 눈을 헤치고 용감히 출근을 하더니 결국 돌아오지 못한 모양이다.
자동차가 보이지 않는다.
이제 구경은 그만두고 나도 눈 치우는 즐거움에 동참할 때라고 느낀다.
눈삽을 들고 용감히 나서긴 했는데 금방 허리가 아프고 손도 시리다.
눈이 이렇게 무거운 것인 줄 몰랐다는 생각도 든다.
눈삽이 바닥에 닫기 위해선 세 번의 삽질이 필요하다.
위에 쌓인 눈을 먼저 한 삽 듬뿍 퍼내고 그 다음 중간에 쌓인 눈을 또 한 번 퍼내고 마지막에는 바닥에 눈삽을 대고 발로 밀어 눈을 퍼내야 한다.
자동차가 발 노릇을 하는 미국에서는 먼저 자동차가 움직일 수 있도록 드리이브 웨이에 싸인 눈을 치워야 한다.
시간이 지나자 몸이 후끈해지면서 땀이 난다.
허리 아픈 것도 있고 남편과 둘이서 열심히 눈을 치우며 보니 앞집 노인 내외도 눈삽을 들도 나섰다.
칠십쯤 되어보이는 할아버지와 육십 몇으로 보이는 할머니의 눈을 치우는 모습이 영 시원찮아 보인다.
우리 눈을 다 치우고 몇 삽 거들어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인다.
할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그 쪽으로 가기 위해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으로 한 발짝 떼 놓는 순간 만용이었음을 깨닫는다.
운동화 속으로 스미는 눈의 감촉이 너무 선뜩해서 소름이 절로 인다.
앞집에 가기 위해 차도를 건너는 동안 내 발은 다 젖을 것이고 젖은 발로 눈을 치울 자신은 없다.
주위를 둘러보니 집집마다 사람들이 나서 눈을 치우긴 하지만 모두들 자기 집 앞의 드라이브 웨이의 눈을 치울 뿐 그 경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갇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동네는 도심에 속하는 곳이지만 눈 치우는 차들은 아직 주택가 골목까지 치울 형편이 아닌지 소식이 없다.
제설차 대신 스키를 타고 나선 부부가 눈 쌓인 길에 나타났다.
멀리 보일 때는 젊은 부부인 줄 알았더니 가까이 온 것을 보니 노인 부부다.
그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고 앞집 노인 부부에게도 손만 흔들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스름이 내리고 한 집 한 집 불이 켜지니 부엌 창문을 통해 보이는 풍경이 영락없이 크리스마스 카드에 그려진 그림이다.
하얀 눈 위에 가지 앙상한 나무들이 배경을 이루고 불이 켜진 창문을 가진 집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모습이 아름답기만 하다.
폭설로 인해 사상자가 수없이 발생했다는데 내게 보이는 풍경은 한 없이 평화롭고 따스하다.
저녁 준비를 하는데 드디어 제설차 두 대가 불을 반짝이며 나타났다.
제설차 두 대가 짝을 지어 지나간 자리에는 차도 양 쪽으로 내 허리 높이쯤 되는 눈으로 된 담이 생긴다.
우리 집 드라이브 웨이도 그 눈 담으로 막혔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다시 드라이브 웨이를 막은 담을 치우기 위해 나섰다.
밤이지만 집집마다 눈을 치우는 사람들이 보인다.
퍼내도 퍼내도 없어지지 않을 것 같던 눈으로 된 담이 사라지고 드디어 눈이 치워진 차도와 드라이브 웨이가 연결되었다.
비로소 갇힌 느낌이 사라지고 세상과의 통로가 연결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앞 집 노인 내외는 제설차가 왔다 간 것을 모르는지 힘이 들어 포기했는지 드라이브 웨이에 눈으로 된 담을 치울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눈을 치우느라 지친 남편에게 미안한 일이긴 하지만 남편을 꼬드겨 앞집 드라이브 웨이에 쌓인 눈담을 치우기로 하였다.
눈이 치워진 차도를 건너 앞집에 가니 지쳤는지 치워야 할 눈담이 산처럼 거대하게 느껴진다.
처음엔 할 수 있는 만큼 만이라도 하자고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낑낑거리며 하다 보니 어느덧 다 치우고 말았다.
남편에게 미안해 허리 아프다는 소리도 못하고 나는 다시 철딱서니 없는 사람이 된다.
“여보, 디게 재밌다. 그지?”
말없이 날 보고 웃어주는 남편이 더 없이 믿음직하고 고맙다.
화요일, 폭설로 인해 내가 일하러 가는 가게도 문을 닫고, 컴퓨터 앞에 앉아 수다 떠는데 하늘이 파랗고 해가 쨍하다.
허리 높이로 쌓인 눈이라도 금방 녹여버릴 것만 같다.
앞집 할아버지가 나와서 할아버지 자동차에 쌓인 눈을 눈삽으로 퍼내고 있다.
길가에 쌓인 눈을 치우러 나왔다가 사라진 눈을 보고 얼마나 신났을까?ㅎㅎ
할머니 차는 방향이 바뀐 것을 보니 벌써 어디 나갔다 온 모양이다.
햇살이 마냥 따스해 보이는데 철없는 아줌마는 눈에 벌떡 누워 눈사진이라도 하나 박아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