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좀 괜찮으세요?'
수신자부담 전화가 왔습니다.
외할머니 장례식때 휴가 왔던 아들녀석이
걱정이 되었던지 전화를 했나 봅니다.
'넌 ?I찮으냐,이넘아!!'
'안 괜찮으니까 전화 했지...'
내 대신 친정어머니께서 키워주신 그 녀석을
생전에 끔직이도 아끼셨었지요.
휴가때마다 5만원씩 용돈을 주셨다기에
넌 그 돈을 받고싶더냐고 나무랬더니
'할머니께서 이번이 혹시 마지막일지 모르니
꼭 받으라'고 극구 주셔서 할 수 없이 받았노라
쭈볏거리며 답하던 녀석이
외할머니 입관서부터 주욱
슬픔에 겨운 에밀 지켜보았습니다.
난 후일 노인들을 위한 시설을 만들고 싶은 꿈을 가지고
그 분야를 전공했습니다.
하지만 중환자실의 어머니가 점점 기력이 쇄하여지심을 보면서
절망감에 아들녀석에게 편질 보냈지요.
제 부모님도 제대로 못 모신 주제에,
불효한 주제에
감히 어찌 다른 노인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겠느냐고...
아마도 난
만일 요번에 외할머니가 가셔 버린다면
세상의 어떤 노인들께도 잘 해 드리지 못할 거라고...
그건 외할머니에 대한 너무나 슬픈 배신일 거라고...
고작 감기일 뿐인데
가볍게 여기고 동네 병원만 다니시다
차도가 없으셔서 입원시켜 드렸는데
그렇게 훌쩍 어머닌 떠나셨습니다.
명절 전날이라
서울의 오빠들은 한밤중이 되어서야 도착할텐데
어머니의 빈소가 얼마나 쓸쓸할까
생전에도 외로우셨던 분
사람을 유난히도 반기셨던 분이
마지막 가시는 길마저 쓸쓸하시리라 생각되니
가슴이 더 미어졌습니다.
가장 부산한 이는 남편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다지도 침착하게
여기저기 연락할 수 있을까
장모님 돌아가시기 전부터 준비를 하는 그가
솔직히 미웠습니다.
자기 부모 아니라고 슬픔이 없나보지싶어...
무에 잘났다고 여기저기 알리랴 싶어
난 연락할 곳 없다며
멍하니 어머니 영정만 보며 울기만 했는데
빈소가 너무 초라할 거 같아
직원들에게 화환 하나만 보내라 했는데
'00시의회 의장'화환이 맨 먼저 오더니
'00시장',각 단체장들의 화환이 줄을 지어
빈소를 가득 메워주었습니다.
장모님께 별로 귀여움을 못 받은 사위 앞으로 보내진
추모 화환속에 어머닌 고요히
우릴 내려다 보셨습니다.
사람이 어려움에 쳐했을 때
자기에게 소중한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알게 된다던가...
정말 내겐 그걸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생각지도 않았던 이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찾아와주었습니다.
서울에서 어렵사리 비행기표를 구해
오빠들보다 훨씬 더 먼저 도착한 친구,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찾아온 옛 부하 직원,
바쁜 와중에도 찾아와 준 많은 사람들...
사십오륙년 살아 온 지난 날이
결코 헛됨은 아니었음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지요.
그리고 그들에게 그 고마움 잊지않고 보답하리라
마음 깊이 새겼지요.
'보살님 꿈에 뵈시던가요?'
49제를 맡은 스님이 물으셨습니다.
아니요.
'보살님께서 편하신 모양입니다.
꿈에 보이시는 건 안좋으시거든요.'
스님께서 괜히 날 위로하기 위해선지
미소를 보이며 여운을 남기셨지만
꿈에라도 어머닐 만나야 사죄라도 하지요...
오늘밤도 어머닌 안 오시려나 봅니다.
한밤중에 깨어
생전의 어머닐 떠올리려 애 써 보지만
가신 지 얼마나 되었다고
아득한 꿈결만 같을까요...
한 말씀만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생전처럼,
'아이구 내 자식아,
금쪽같은 내 자식아!
내가 왜 니 맘을 모른다니...'라고.
그러면 엎드려 빌고 싶어요.
엄마, 정말 미안해요.
엄마, 무심했던 딸 용서해 주세요.
퉁명스럽게 대했던 절 부디 용서해주세요.
속마음은
엄마가 너무 가여워서
그걸 애 써 숨기느라 짜증이 났었어요...
평생을 불효한 아들놈 감싸고 도시는
그 아들땜에 늘 애통해하시는 게 미워서요...
아무것도 남겨주신 게 없어
이십여년을 어머닐 고생시킨 아버지가
이렇게 미웠던 적은 없습니다.
엄마.
제발 꿈에라도 와주세요...
못다한 말씀들
마저 드리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