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님 동안도 잘 지내셨나요.
오늘은 간단하게 끝낸 제 휴가얘기를 하려구요.
집을 나서서 넉넉하게 10분을 걸어 도착하는 버스 정류소에서 서울대 입구까지 가는
버스를 탔어요. 예정에 없는 걸음이였지만 이슬 한병과 밥과 된장을 담고 ...
산 초입에서 수박 한덩어리와 노랗게 이쁜 참외 세 개를 샀어요.
수박을 고르면서 남편은 ... "거시기" 하며 적당한 낱말을 ?아 헤메고 과일장사 아저씨는
"산속에 가믄 물 흘른디 있다요..." 하는 말을 들으며 "물 흘른다거나 거시기나 비슷하네요." 운을 뗐더니 두 사람이 "광주하다가 송정리 하다가 평동이며 옥동"을 말하다가 두 사람이 푸하하 웃고 말데요." 척하면 삼천리며 쿵하면 담넘어 호박떨어진다더니 그짝인가 "하였더니 두 사람 다 "그짝"이라고 하고 말았어요. 세상 참 넓고도 좁아요 글쎄...
참외를 살려고 참외 앞에 서서 "아저씨가 보기에 어떤게 맛있어 보이나요". 했더니 .
"먹어봐야 알지요..."합니다. 우히히... 정답이네요. 딱 맞아요.
그래도 아저씨가 골라주세요. 나는 참외앞에 그냥 서있고 맙니다.
이슬한병은 어제 새끼들을 거느리고 미국으로 떠난 명자나무집 사람과 헤어지기 전에
한잔 기울여야겠다 하고 사다둔 술이였어요. 나머지 한병은 사람들 삶 속으로
날아가버린 우리집의 특별한 휴가를 위해 사다둔 술이였어요.
명자나무집 사람과는 끝내 한잔을 기울이지 못하고 그녀는 떠났어요..
시아버지가 계신다고 어쩔 수 없다고 해서 술안주감 고기만 건네주고 "미국가서 잘살아..."그렇게만 말하고 헤어졌네요.그녀는 우리집 아이들에게 그녀의 아이들이 썼던 책상과 책장을 주었고 책상 서랍속에 물감과 단소. 그리고 붓글씨 도구 일체를 담아
두고 떠났습니다.
지난번 내린 장마로 풍성해진 계곡의 물앞에서 남편의 운동복 바지와 반팔윗옷을 입고
물속에 좌선을 하고 앉아 물소리로만 있어 보았습니다.
참 많은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남편이 처음 받은 휴가비를 그래 그 사나이가 빌려간 뒤
종적을 감추고 말았어요. 후훗... 언젠가 그 사나이가 늦은 저녁 우리집에 놀러왔을 때
잠깐 그런말을 하긴 했어요. 실직이 오래 지속되는 동안 부인과 사이가 안좋아 이년째
한 집에서 각 방을 사용하고 있다고... 땀을 흘리고 산을 타면서 그 사람 종적감추고 이사간게 이혼하고 쪽박찬 건 아닐까 하고.. 삶의 뿌리가 단단하지 않아서 그랬을 거라는 말도 하긴 했지만 그래도 종적감춘김에 바닥이 난 삶의 돛은 여전히 그 사나이가 잡고 있고 .. 나머지 가족들은 배뒤에 걸린 걸레만으로라도 줄래줄래 붙어 내일을 걱정하며 살아가기를 진심으로 바래기도 했어요. 그래 기왕 떼먹은 거 멀리 가서 잘 먹고 잘 살그라.. 그렇게 뱃장 부른 소리도 좀 했어요. 온몸이 땀에 절여 인적이 드문 깊은 산속의 깊은 계곡을 ?아가면서 말이지요.
아이들을 계곡 물속에 담궈두고 오랜만에 모든 걱정을 잊었어요.
사방을 둘러 보아도 바위를 타고 힘차게 내려오는 물소리만 가득하니 다른 생각을 할 수도 없었어요. 다음주에나 다시 보따리를 싸겠지만 시골에 늙은 어머니들 계시니 우리들에게 휴가라면 으레시골로 가는 길이 정해져 있었고 그게 당연한 일이였는데 ...올해는 그마저 차비도 없이 훌러덩 빼앗겨 버린 셈이였어요.
집에서 싸온 밥에 된장을 찍어 먹으며.. 아이들을 물속에 넣어두고 오천원 주고 산 수박을
갈라놓고 수박 먹고 놀아라 소리쳐 부르면서 ..."그래도 우리가 부잔갑다" 하며
이슬을 한병 비웠네요. 꿈을 꾸었다면 올해는 짠물에 가서 몇시간만이래도 새끼들 담궜다가 적당히 간기멕여서 건져오고 싶었어요...첫날
둘쨋날엔 먹거리를 좀 더 넣었어요. 큰맘 먹고 족발을 하나 사고 수박대신 복숭아를 세 개 사고 밥을 조금 더 싸고 멸치새끼 몇 마리를 추가한다음 고추장도 담았거든요.
물옷을 갈아입으라고 돗자리를 들고 천막을 쳐주는 남편에게 산에 오면 나도 자연의 일부인데 굳이 천막치고 옷갈아 입을 이유가 있남? 묻고는 이히히 웃고 말았네요.
이슬 한병은 그렇게 다시 스러졌어요. 마지막 이슬이 스러지면서 남편은 사라진 사나이는 부인과 이혼을 하고 홀홀단신으로 지방으로 떠났다는 소리와 함께 참 안됐단 소리를 하더군요. 내 살림으로 사라진 돈을 생각하면 큰 건데 어머니들 용돈까지 두둑하니 챙길 수 있는 금액이였는데 아고 아까워라... 혼잣말 하였다가.
그 사나이에 비하면 이슬두병으로 마감한 내 휴가는 단란하고 행복했어요.
아이들이나 나나 계곡은 처음이였고 ...계곡의 물은 맑았고,
산을 타는 동안 내 온 몸에서 나온 지린내나는 땀이 나를 깨끗하게 씻어주었거든요.
과학관에 가야 한다고 각서까지 쓴 아들은 여름내내 계곡에서 살면 좋겠다는 소리를 하고 지애비는 얌마 남자가 지조없이 각서까지 써 놓고 그러면 쓰냐... 하는 소리를 들으며 산을
내려왔어요.
올여름 나는 인생의 한 고개를 또 무사히 넘긴 것 같았어요.
인생은 정말 그렇게 빈손인거 맞나봐요.
다음주쯤 일한 품삯이 나오면 겁나게 덥다는 더위와 기습적으로 덥치는 소낙비와
싸우며 고추를 따고 계실 늙으신 어머니들께 다녀오려구요.
명자나무집에서 남겨둔 물건들을 가져오고 산밭을 다녀오고 하는동안
그만 밤이 되어 버렸군요.
그래 오늘 편지는 너무 늦었네요.
이번 일주일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세요.
2001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