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시어머니가 18개월 아이에게 생굴을 먹여 장염에 걸리게 한 이번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12

유일한 내 삶을 위하여..


BY 꿈꾸는 자 2003-02-12

난 서랍속에 오랜 시간 묵혀 두었던 벼루와 먹과 붓등을 끄집어 낸다.
그리고 조용히 바닥에 펴치고, 약간의 물을 벼루에 담고, 먹을 쥔 손을 움직여 까만 물감을 만들어 낸다.
정말 얼마만인가, 아주 먼 과거의 일인 것처럼 잠시 회상에 잠긴다.
아이들이 생기면서 아니 결혼이후부터 거의 손을 대지 못한 채, 이사때 거추장 스러워 버렸음하는 아내를 말리면서 언제가는 다시 시작해야지. 다짐했었는데.

사실 별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책임질 일이 있어, 짬을 내야 하지도, 누가 나에게 만남을 원해 시간이 없는 것도 아닌데, 내 삶은 항상 바빴고, 맘은 항상 울렁거리면서 휘저어 놓은 컵속의 진흙마냥 안정감을 잃었다. 그게 요즘 세상을 살아가는 진리인 줄 알았다.

"아빠. 이게 뭐야." 궁금증으로 다가선 딸애에게 찬찬히 설명하며,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 올린다. 사실 원하지 않았지만 서예를 강요하시고, 직접 가르침을 주신 분을 바로 아버지다. 등교하기전 1시간을 꼬박 한자외기와 붓글씨에 매달리게 하셨는데, 그 땐 쪼그리고 앉아 보낸 시간들이 얼마나 답답하고, 지겹게 생각되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나도 필요하다 싶으면 아이들에게 강요하니까.

문득 바쁘게 사는 것이 나의 모습일 필요는 없지 않나 싶다. 그런 생각과 다른이들의 의견을 최근 많이 접해 왔지만 피부로 느끼고 실천해야 겠다고 다짐한건 없었다. 컴퓨터,인터넷,디지털,로또,코스닥등으로 표현되는 초스피드시대에 우린 살고 있지만 그래서 출세도 성공도 빨리 이루어야 정말 성공한것이고, 폼나게 살 수 있다라는 공식을 우린 이미 외워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난 너무 초조하다. 한 달뒤의 성취도 난 기다릴 수 없다.
자고 일어나면 그 성공의 보장이 더 이상 없어 보인다.

먹을 갈고 있는 내 주변으로 아이들이 점점 모여 든다. "저리 멀리 떨어져." 행여나 새 옷에 먹물이 튈까 난 아이들에게 호령한다.
먹물이 벼루에 어느정도 모이자, 깨끗히 씻어 놓았던 붓을 손가락사이에 끼우고, 신문지위로 몸을 옮긴다. 먹향기가 코을 찌르고, 난 십년을 훌쩍 뛰어 넘어 먼 여행을 떠난다.
"우리집, 가,나,다,라,..." 내가 종이위에 쓸때마다 아이가 읽어 본다.
내가 봐도 실력이 그리 준것 같지는 않다. 얼마간 연습에 투자하면 본래 모습을 찾지 않을까 싶다. "아빠 잘 쓰네." 아이의 칭찬에 난 머쓱해한다. 아빠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언젠가는 아이들도 나의 이런 모습을 생각하면서 붓을 들지도 모르겠다. 내가 강요하기전에..

세상 사람들이 옳다는 것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 말이 오늘처럼 절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난 손을 라디오에 가져 간다. 스위치를 켜고, 음악에 귀기운다. 라디오 듣는 일이 시대에 뒤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신세대에게는 어쩐지 비인기 취향아닌가 싶다. 어머닌 지금 이 시간에 아마 자리에 누워 가만히 극동방송에 귀기울이시고 계실 것이다.

아내가 어느새 내 뒤에 와서 가만히 글 쓰는 모습을 내려다 본다. 아무말 없다. 물리치는 내 목소리에도 아이들은 자꾸 다가온다. "가까이 오지마." 또 물리친다.

서예는 이 시대에 별로 인기없는 취미일게다. 그저 나이 많은 양반들의 소일거리나 아님 옛날 사람들의 호구책정도 일까. 오랜 시간을 정성들여야 열매를 거둘수 있는 인내가 필요한 작업인지라, 요즘 젊은이들에게 어필할 수가 없으리라. 자칫 한 눈팔면 시대나 동료에게 뒤쳐지고 마는 경재시대에 사는 누구라도 선뜻 투자하기 거려하는, 분명한 결과나 이해가 쉽게 드러나지 않는 작업이라 더 더욱 그러 할 터이다.
하지만 난 다시 이 작업을 시작하련다. 왠지 분명히는 모르겠다. 처음 배울때 고생했던 시간들이 아깝고 잠시 그만 두려할 때 다짐했던 약속때문인지도 모르겠고, 특별한 취미나 특기가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쩐면 스피드시대에 난 도저히 적응할 자신이 없어 차라리 느림의 미학을 배우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느리게 사는 것. 빠르게 사는 것이 성공의 유일함이 아니듯이 느림의 삶도 실패의 유일함이 아닐 성싶다. 즉 느리게 아니 빠르지 않게 살면서 잘 살아 보련다. 내 유일한 삶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