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곳엘 다녀왔다.
그 곳엘 다녀왔다.
눈맞은 언니가 살고 心좋은 그분이 살고, 등등 입소문 분주하고 늘 합석해보고 싶었던 그 자리.
그 곳엘 다녀왔다.
오라고 오라고, 가마고 가마고, 늘 말로만 별르던 그곳이었지만, 행여 갈 수 있는 날 올까 늘 생각뿐였던 그 곳엘 예고도 계획도 없이 불쑥 찾아나서게 되었다.
그들이 모이면 무얼먹고, 그들이 모이면 무엇을 하고, 그들이 모이면 무슨 애기를 주고 받으며, 그들이 모이면 그 분위기는 어떠할까?
그들의 얼굴에 어리는 웃음은 어떤색일까?
궁금하던 참 분위기를 한걸음에 다 묻혀오지 못함이 못내 아쉬웠지만,삐걱 유리문 밀고 드니 기다린듯 반겨주시는 분들의 환대가 고마웠고, 뒤늦게 우연 합석하게 된 그가 발라얹어준 송어의 한점 살은 꿀맛, 얇게 눌러앉힌 수제비의 쫀득함은 무엇에 비할까?
그곳엘 다녀왔다.
글로, 말로, 느낌으로, 상상으로 가슴에 섬처럼 동동 실고다니던 그곳엘 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차속, 어둠속에서 나는 문득 글구절 하나를 떠올렸다.
'간현에 다녀왔다. 그리고 꿈하나를 잃어버렸다'
소설가 문현근님의 짧은 글구의 서두이다.
얼마전 월간 단행본에 실린 이 글을 무척 인상깊게 읽었고, 또한 공감하는 바였다.
작자는 '간현'이라는 지명만으로 언제부터인가 아무런 맥락없이 그 곳을 동경하였다 한다. 참 아름다운 곳이리라, 보기만해도 내 생을 통틀어 받아줄 운명의 그녀가 살리라...등등
가슴속에 무릉도원처럼 늘 그곳을 그렸고, 벼르고 벼르다 찾은 그곳에서 영원히 마음속의 그곳, 간현을 잃어버렸다 한다.
나 또한 그러하며, 어느 누구나 그러할 것이다.
가슴속에 닿고싶고 보고싶은 '그 곳' 한군데쯤은 간직하고 살아가지 않을까?
어쩌면 있을수도 없을수도, 생각만큼 아름다운 곳일수도 그렇지 않을수도 있는 마음속의 그 곳..
'정동진'
모래시계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진 그곳엘 내가 첨가던 날을 생각해보았다.
6시간쯤을 차를 달려 정동진엘 갔었고, 그 속에서 '정동진'을 한참이나 찾았다.
정동진안에서 정동진을 찾은 것이다.
내가 찾고 동경하고 보고싶었던 그런 모습의 정동진은 어디에서도 찾지못한 채 나는 정동진을 허망하게 떠나와야만 했다.
소설가가 간현에서 느꼈을 그것마냥 어디서나 턱도없이 내야하는 입장료에 짜증이 났고, 간현처럼 넘쳐나는 쓰레기는 없었지만 너무 잘 다듬어 놓아 숨이 막힐거 같은 조각공원, 천지간에 흩어진 카페에서 품어내는 휘황한 조명에 눌려 제 색을 놓아버린 달빛의 은은함과 바다의 푸르름,
호객행위로 가는곳마다 멈칫거리게 하는 훤한 상술 또한 견디기 힘들었다.
나도 소설가처럼, 정동진을 다녀와서 늘 가슴에 '정동진에 가고싶다'란 소망 하나 사그리 지워버린 꼴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엘 다녀왔다.
그리고 아무것도 잃어버린 것이 없다.
보고싶던 이 맘껏 보고, 맛보고싶었던 송어회, 양껏 먹었으며, 그들의 정감어린 대화와 웃음을 가슴에 잔뜩 담아왔을뿐..
오래전에 처음보고 두번째인 언니.
막 떠나가는 길에 잠시 스친 그 얼굴, 그 음성이 늘 그리웠었는데..
긴 그리움 끝에 짧은 만남이라 아쉬워했던 그 기억을 만회하듯, 못하는 술잔 앞에 놓고 젓가락 부딪히며 오래이 언니얼굴 뜯어볼 수 있음..그것만으로도 나는 많은 것을 얻어온 셈이다.
그리던 분들의 얼굴은 마냥 따뜻했고, 그들의 미소는 생각보다 훨씬 넉넉했으며 유명하던 그분의 손맛도 소문만큼 혀끝에 오래도록 여운을 남긴다.
난 참 힘들게 그곳을 다녀왔고, 인제 어쩌면 다시 그 곳엘 갈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가슴속에 막연히 그리던 무릉도원 하나를 잃어버린게 아니라 가끔 꺼내어 들여다보고 희미하게 미소짓거나 히죽대며 웃을 추억 한장을 얻어온게다.
소설가가 찾아간 간현에는 그의 영혼과 모든것을 사랑해 줄 운명의 그녀가 없었고, 내가 가족과 함께 찾았던 정동진에는 다시 찾게끔 이끌어줄만한 진정한 주인이 없었드되, 어찌 흐르고 구르는 연으로 찾아간 그곳에는 이미 친구된 이들의 살아가는 참 모습이 있으므로 나는 다시 그곳엘 가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