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꽃이 어스름 길을 밝혀주는 신새벽을 알아?
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아침이 일어나는 소리를 들어 본 적이있어?
자작나무 언덕위 초등학교의 생생한 생명을 보았니?
그제 내린 비로 뒤집어진 냇가에 피어 오르는 물안개의 애절한 현상을 아니?
마음껏 놀기 위해 떠나는 어제 새벽휴가의 흐름은 이랬었어.
친정엄마와 큰남동생과 막내남동생 식구와 우리를 포함한 식구 열명은
들끓기 시작하는 관광지를 무시하고 고향으로 고향으로 떠났어.
엄마가 살았고 나와 동생들이 태어나 살았던 두메산골.
원주를 거치고 횡성을 들리고 우리가 다녔던 초등학교를 빠르게 스칠때마다
과거로 달려가는 미니버스를 탄듯했어.
거칠어진 산골의 때를 밀어버리고 반질반질 윤기까지 나는 마을의 신작로 길.
칙칙한 초가집도 비가 떨어지면 구멍이 뚫릴 것 같이 빗소리가 요란했던 스래트집도
오래된 동화처럼 기억되고,
평탄하지 못 할 어머니의 삶이 암시되었던 외갓집도 여유로운 빈터로 남아 있었지.
아이들은 냇가에 도착하자 마자 입던 옷 차림으로 물을 만지고,
남자들은 낚시대를 잡아당겨 길게 흘러가고자 하는 쎈물결위에 길다랗게 낚시줄을 던져 놓았구.
여자들은 집에 있을때나 밖에 나와서도 지겹다고 하는 부엌살림을 한귀퉁이에 차려 놓기에 바빴어.
특히 엄마는 왼종일 먹을 걸 아이들에게로 남자들에게로 배달을 하셨지만
그것이 엄마의 즐거움이고 행복인 것은 세월이 자꾸 없어지고 다시 새 날이 와도
모방이 아닌 의식세계의 본성인 것을 나는 알고 있었어.
나와 엄마는 반대쪽으로 누워서 천막 사이로 감도는 하늘을...산을...보았어.
"산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다"
"하늘도 그래. 옛날에 보았던 그 하늘이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애"
그랬어.
젊었던 엄마는 한갑을 지내셨고 초등학생이였던 나는 중년이 되었거든...
산모양새는 둥그스름한 그대로 였고
하늘도 구름도 색이 바래지 않았다고 느껴졌지.
아닐텐데 말이야.
옛날엔 땅꼬마였던 나무가 키다리아저씨가 되었을테고,
그 어떤 식물이 없어지고 다시 태어나고 했을텐데...
나비 한 마리가 박쥐날개 같은 날개를 푸덕푸덕거리며 엄마와 나의 몸위로 지나가서는 다시 왔어.
저 나비이름은 분명 박쥐나비였을거야. 아마도...아마도 그랬을거야.
뚝방가에 한여름의 열기를 견딘 패랭이꽃이 피어 있었지.
그래서 얼굴이 짙은 꽃분홍색으로 피어 났나했어.
강인하게 큰 풀섶사이로 쥐손이풀이 수줍게 피어 있었지.
그래서 얼굴이 작고 연분홍색으로 피어 났나보다했어.
무사태평한 베짱이 닮은 큰동생은 "수박냄새나라! 수박냄새나라!"하면서 풀잎을 여러번 손등에 때렸어.
어릴때도 저렇게 하고선 허락도 없이 내 코밑에 들이대면 정말로 수박냄새가 났었지.
어릴적에 천덕꾸러기로 자란 막내동생은 느티나무 아래서 여름을 말리고 계신 동네 어르신께 인사를 하고
"혹시, 텃밭이 달린 빈집터 파는 거 없으십니까?" 하면서 어르신을 모시고 땅을 둘러 보고 오기도 했지.
아이들은 물 속에서 나올 생각을 안하드라구.
모래를 다리위에 올려 놓기도 하고,
돌팔매질을 한참씩 하다가도 흘러가는 물을 막아 물고기를 가두기도 하고,
튜브를 끼고 거친 물살을 타고"와~~ 으악~~~~~~"소리를 지르며
해가 질 때까지 물과 친구가 되어 뒹굴고 끌어 안고 비비며 놀았어.
이 냇가에서 친정엄마가 자랐고,
동생들과 내가 자랐고,
이젠 그 다음세대의 아이들이 같은 물가에서 하루만큼 자랐지.
흘러갈 수 밖에 없는 습성인 물과,
떠돌다 산을 넘어가는 본성인 구름과,
피어난 들꽃이 옛날의 그 들꽃무더기가 아니지만,
자라지 않는 산등성이와 꺼지지 않는 땅덩어리와 메마르지 않는 물줄기가
욕망에 끌려다니는 우리의 정신을 순수한 삶의 이미지에 접근하게 만들었어.
두고 왔지만
다시 찾을 수 있는 고향산천이였고,
보냈지만
다시 만날 수 있는 유년의 연장이였어.
올 여름의 휴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