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익 끼끼
갈매기들이 부두 곳곳에 떨어진 멸치들을 주워 먹느라 바쁜 아침을 맞는다.
먼저 배가 불러진 갈매기들은 동료를 위해 자리를 피해주고,
방파제 아래 파래 위에 앉아 있다.
입춘이 지나자, 바다에도 봄은 돋아나고 있다.
트럭 기사들이 멸치를 담은 통을 지게차가 들어 올리는 걸 보며,
기다리고 있을 뿐, 밤새 분주하던 것에 비하면 부두는 오히려
조용하다.
멸치배 선원들도, 젓갈 담는 아줌마도 다 곤히 잠들어 있을 것이다.
지난 밤, 이십여척의 멸치배들은 평균 300만원어치 정도의 멸치를
잡아 왔다.
한사람의 선원의 몫은 15만원정도, 한 배의 선원이 열명 안팎이니
200여명의 사람이 15만원씩 벌어들였고, 20여명의 배 선주들은 기름값등을 뺀 100만원씩 벌었다.
그리고 지금 시간 어딘가에서 트럭에 앉아 마이크로 싱싱한 멸치를 사라고 외치며 다니고 있을 상인들과 젓갈 담는 사람,
트럭기사, 주변의 야식집과 담배집과 항공사들까지 많은 사람들은
자기 몫의 돈을 멸치를 통해 벌어 들인다.
또한, 선원들이 벌어 들인 돈은 다시, 술집에도 나눠지고,
다방으로도 나눠지고, 시장이나 할인매점, 식당, 학교, 학원,
홈쇼핑, 은행, 보험회사에도 나눠질 것이다.
멸치들은 곳곳으로 실려가 수많은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하고,
한마리의 멸치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 침체된 경제를 다시 살아나게 한다.
멸치를 좋아하는 사람이든 싫어하는 사람이든, 바다와 관계가
있거나 없거나 많은 사람들은 멸치 한마리의 영향을 받는다.
온 나라 안이 200억, 300억의 복권 당첨의 꿈을 꾸고 있다.
마치 모든 사람이 복권만을 쥐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기 자리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세상은 200억 복권이 아니라, 한 마리 멸치 혹은 한 알의 딸기가
지배한다.
죽도록 아끼고 모아도 억은 고사하고, 몇 백만원든 통장하나 마련해 두고 살지 못해도, 많은 사람들이 삶을 운에만 맡기지 않고,
자신의 힘을 믿고 살아가기에 세상은 변함 없이 굴러간다.
꿋꿋이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복권의 꿈이 있다면,
어부들에겐 그물 안 가득 팔딱이는 멸치 떼가 복권이고,
농부에겐 파릇이 돋아나는 감자순이 복권이다.
밤새 잠 못자 졸리운 내 눈엔 천원짜리 두장 들고, 들어 오는 멸치 비늘 묻은 뱃사람들이 당첨률 100%의 복권으로 보인다.
매일 매일 당첨되는 복권,
진정 복된 권리는
숫자조합이 아니라, 내가 가진 모든 것과 바로 나 자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