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전부터 계획했던 휴가계획이 내 업무와 관련하여
어그러지고...나만 빠지게 되었을 때...친정엄마는 내게
"지지리도 복도 없는 년"이라고 하셨다.
사실 몇 년 동안 이른바 '휴가'라는 걸 즐겨보지 못했다.
보통 산으로 들로 뛰쳐 나가는 개념의
사람들이 보통 생각하는 의미의 휴가 말이다.
그럼 정서적으로는 휴가를 즐겨왔는가?
이런 젠장...
하루 호흡하기도 바빴던 몇 년 이였기에
정서적 휴가는 왠 정서적 휴가...
내일 일까지 미리 걱정하며 살기에는...
하루동안 버텨내야하는 삶의 무게조차 힘겨울 판이구만...
물론 누구나 자신이 진 삶의 무게가 제일 무겁다고
서로 아우성이지만서도.......
어린 두 아들과...사주에 따라 다니는 폭주하는 일들...
어쩌면...내 삶이란 것은 편안하고 안락한 삶과는
애시당초 거리가 멀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스개 겸 진심으로 종종 손에서 물 톡톡 털어내며
여유부리며 우아하게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소리를
뱉어내곤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 분수에 어긋나는
허황된 삶을 꿈꾸어 본 적은 없다.
난 다만 성실하게 살아왔으며..
하루하루...내가 짊어져야 할 삶의 과제에 충실하게
응답하며 살아왔을 뿐이다.
사행운과는 거리가 멀어서...
남들은 잘도 뽑히는 보물찾기에조차 제대로 상품을 건져본
적 없이 그저 우직하게...뿌린 대로 거두고...일한 대로 수확하는
삶을 살아온지라...지금도 허황된 것에는 눈을 잘 돌리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가끔은 마술에 걸린 듯...
삶의 현장과는 무관하게...신데렐라로 변하여 잠시의 일탈
을 누릴 수 있어도 좋으리라.
무도회가 끝나고...화려한 조명이 빛을 거둔 뒤라도...
내게 남겨진 유리구두 한 짝을 소중히 간직할 수 있다면
밤 늦게 일을 마치고 귀가하여
이미 잠든지 오래인 아이들을 데려다 누이고...책상에 앉았을 때.........
혹은... 아무 말도, 아무 생각도 하기 싫을 때..........
내지는....문득 이 세상에 살아서 호흡한다는 일이...버거울 때
그렇게...가슴이 우는 날.....
가만히 남겨진 유리 구두 한 짝을 꺼내
들여다보며 가만히 가슴에 안아보면...
이내 가슴이 녹아 내리고
슬픔이 조용한 평안으로 강물처럼 내 안에서
흘러가는 것을 바라볼 수 있다면.................
정녕 그렇다면.........왕자님은 다시 만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인생은 충분히 살아볼 만한 장이 되어주지 않을까...
사람의 존재가 나를 채울 수는 없는 일...
이 세상에서 그 누구를 믿을 것인가?
삶의 홀로서기에 익숙해져갈 때...
어느덧 나는 작은 휴식이 되어 있으리라.....
그리하여........네게 넉넉한 그늘을 드리워주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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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장 정 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이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한 됫박 녹말이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깨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켠에서 되게 낮잠 자버린 사람들이 나지막히 노래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
바빌론 강가에 앉아
사철나무 그늘을 생각하며 우리는
눈물 흘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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