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여전하다.
개키지 않고 아랫목에 널부러져 있는 여러채의 이불들,
재떨이위에 수북히 쌓인 담배재와 꽁초들,
김치국물이 말라붙어 있는 탁자위의 얼룩들,
빨래바구니위에 넘칠대로 넘쳐서 떨어져 뒹구는 빨래감들,
개수대안에 나뒹구는, 제발 좀 설겆이 좀 해주십쇼 하는 그릇들.
오일간의 외출동안 남편은 여전히 아무것도 안했었나 보다.
간신히 쌀을 씻어 전기 밥솥에 앉혀두는 일은 했든가 보다.
라면만 삶아 먹은 흔적이 보이지 않으니 말이다.
전에 같았으면 사다놓은 라면 씨가 마르도록
내내 라면만 끓여 먹었을 텐데
그래도 밥이나마 해드셨으니 가상타고나 해둘까...
집에 오자마자 짐정리하고, 설겆이하고,
걸레빨아 온 방을 다 닦고, 냉장고 정리하고,
음식물쓰레기 버리고, 빨래 돌리고 있으려니,
그제서야 사람사는 집 같다며,
어딜 갔다 이제 왔느냐는 얼굴로 남편이 흐뭇하게 쳐다본다.
아이구 ,웬수~.
여튼 집에 오니 좋긴하다.
고래등같은 집은 아니어도
그저 내집이라는 이유하나로 ,행동과 마음이 자유롭고 여유롭다.
누가 눈치주고 불편하게 구는 것도 없건만, 이제 친정밥도 편히 먹히지가 않는다.
미우나 고우나 혼자서 어찌 먹고 입고 할른지 남편도 걱정되고,
자식같은 딸기도 어찌 크고 있는지 걱정스럽고 말이다.
이런 저런 걱정에 몸이 편해도 마음이 늘 뒤숭숭한걸 어쩌누.
그래도 매듭짓지 못한 일에 며칠 더 개기고 있을까 했는데
사위 밥이 여간 걱정이지 않으신 아버지 성화에
부랴부랴 돌아오고 말앗다.
당신의 검사결과나마 기다렸다 듣고 오려했는데
당신은 자식들 밥 챙겨먹는게 더 마음 쓰이시던가 부다.
부모라는게 늘 그렇다.
자식이라는 것도 늘 그렇다.
늘 떠나오면 보인다.
이번에도 여지 없이
남겨두고 온 자리에 대한 미련이 남는다.
부은 아버지 다리도 정성껏
한번이라고 더 주물러 드리고 올것을,
따뜻한 밥 한끼 제대로 못 지어먹이고 보낸다고
서운해하시는 어머니께 괜찮다고, 염려마시라고
환한 웃음 한번 지어드리고 올것을,
왜그리도 못해드리고 온것만 가슴에 남는 건지...
떠나보면 내 집의 소중함도 알겠고,
떠나보면 밉상 남편의 그늘도 그립고,
떠나보면 늙고 병든 부모님 사모곡에 목이 메이고,
떠나보면 모든게 보인다.
그러니 잠시 잠깐 떠나봄도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