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다. '날이 어두울지라도 닭(鷄)은 반드시 울고야 말 것이요, 구름이 가린다 할 지라도 용(龍)은 하늘로 올라 갈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자신을 다 내 보이는 겨울 산이 좋다는 생각을 갖고 부터 종종 겨울 산을 찾아다닌다 사람은 나이를 먹으면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자꾸만 가리려 하고 숨기려고 만 하는데 다 벗은 겨울산은 나의 이기심을 감싸주는 것 같아 위안을 받는다 차디찬 겨울복판의 동학계곡도 매서운 눈바람을 비켜 세상시름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볼을 스치고 지나는 공기가 더욱 상큼함을 느끼는 건 겨울의 찬 기운만은 아닐 터 자비가 감돌고 공덕을 쌓으려는 기원이 서려 나그네 마음을 보듬어 주어서 인가보다 동학사를 뒤로하고 계룡산의 품속으로 발걸음을 내 디딜 즈음 귓전을 울리는 산사의 목탁소리는 속세의 욕망과 아집을 발 밑에 내려놓길 바라는 구원의 소리처럼 아득해 진다 산을 오른지 한시간 쯤에 은선 폭포를 만났다 겨울이라 폭포는 두줄기 흔적만을 남긴 체 메마른 산행인의 목마름처럼 물줄기가 그리워진다 곳곳에 얼어붙은 눈 자국으로 오르는 길은 미끄럽지만 마음은 썰매를 탄 듯 걸음이 가볍다 돌계단과 철 계단을 번갈아 가며 두시간만에 관음봉에 올라 고즈넉한 동학사의 가람을 내려다보니 따스한 햇살에 학이 앉아 있는 듯 여유가 있다 ( 계룡산 관음봉) 관음봉에서 굽어보는 계룡산의 뾰족한 봉오리와 능선은 눈을 시리게 한다 가파름과 힘겨움에 지쳐할때 산은 또 다른 나를 느끼게 한다 땀의 가치와 인내의 소중함과 아래를 내려다 볼줄 아는 겸손함으로 나에게 맑음과 고상함과 아름다움을 덤으로 얻게한다 저 멀리 대전시가가 굳건히 서 있고 여기저기 정 깊은 들판이며 고을들이 사이좋은 인심으로 내 눈을 즐겁게 한다 멀리 삼불 봉에 이르는 자연성릉은 흡사 닭의 벼슬처럼 쭈뼛대며 서있어 계룡산의 이름 값을 하는 것 같다 아찔한 철계단을 타고 오르내리며 뽀족바위를 안기도 하고 다정히 혹은 나직이 너를 좋아한다고 그래서 너를 보려 왔다고 사랑한다고 속삭이자 내 볼이 나도 모르게 달아오른다 (삼불봉) 몇몇 고개를 지나고 능선을 너머 삼불 봉에 앉았다 자연이 만들어 낸 이미지와 곳곳의 형상들은 어쩌면 인간들의 세상사와 구원에 언제나 함께 하고 늘 가까이 했음을 실감하며 삼불봉 또한 언제나 사람과 함께 하기를 원했기에 산봉우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구원과 기원이 얼마나 간절했기에 삼불이라 했을까? 참 신비롭다 따스한 차 한잔에 아픈 다리를 쉬게 하고 쉼 호흡을 하니 온 산이 내게로 들어온다 이름 모를 작은 새가 외로웠던지 낯선 사람을 겁내지 않고 주위를 맴돈다 비스킷 조각을 던져주니 맛있게도 쪼아먹는다 이제 너도 인간들의 고소한 맛에 여길 떠나지 못하겠구나 여겨지니 비스킷을 괜히 줬나 싶다 잠시 굳은 다리를 펴고 다시 철계단을 수없이 오르내려 남매 탑에 4시간만에 도착했다 (남매탑) 백제왕족의 후손인 승려와 호랑이에게 엎혀온 여인사이에서 남녀간의 성의 욕망을 이겨내고 구도에 몰두하여 깨달음의 도행을 성취한 두 사람을 기리기위해 세워진 탑이라니 예사롭게 보이지가 않았다 남매탑의 뜻깊은 전설을 대하고서 속세의 범인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일이지만 신앙과 욕망의 갈등에서 자유로워 질수 있는 숫한 성직자들이 세삼 위대해 보이고 존경스럽다. 4시간 반에 걸친 계룡산 산행을 마치며 산에 대한 고마움을 새삼 느껴본다 사람들은 누구나 산을 오르며 갖가지 생각을 안고 올라가리라 난 산을 보고 내려가며 그 산을 가슴에 채워 넣고 간다 내 가슴속에 그 산이 채워져 있을때 그 산은 나의 의지도 될것이고 내가 외롭고 힘겨워 할때 내 가슴속에서 무언의 진중함으로 나를 위로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동학사-은선폭포-관음봉-삼불봉-남매탑-동학사(4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