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에 입은 화상이 몇주를 가다가 이제 그만한가 싶더니 퇴근후 집에와 화끈거려 가만보니 다시 염증이 생길 조짐이 보인다.
아침 출근길 부터 서울에 싸락눈이 꽤나 내리고 있었고 근무중 창밖을 간간 바라보니 계속 오락 가락 ~
차라리 펑펑 솜같은 함박눈이라도 오면 보기라도 좋았을것을 퇴근길 온종일 내린눈이 찬바람에 얼어붙어 여기 저기서 꽈당 꽈당하며 미끄러지는 광경을 보게되었다.
우습기도 하고 스스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내딛게도 되어 살곰 거리며 긴장을 더하여 한걸음 한걸음 발걸음을 찬찬하게 하였다.
회사앞에 있는 마트에 가서 저녁 찬거리를 몇가지 챙기고 사무실에 장갑까지 두고왔기에 시린손을 바꿔가며 그렇게 쇼핑 봉투를 이쪽저쪽으로 번갈아 가며 버스 정류장으로~~
언제 부터인가 퇴근후 집으로 가는 버스에 승차하여 어둠속의 가리워진 창밖을 바라보면 가슴 밑바닥 어느곳이라 딱히 콕 찍어 말할수는 없지만 싸~한 쓰림이 전해져 오며 무언가 치밀어 오르는 그 화를 어이할지 몰라 서글픔과 함께 어느사이 눈가가 촉촉 젖어든다.
매일 매일 이것 저것 사다 날라도 장정인 대학생 아들 녀석과 고3 딸아이는 새처럼 잘도 먹어 치운다.
둥지안에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어미새가 된듯한 느낌
그런 재미집에 쏠쏠함이 어느날은 기쁨이고
어떤날은 혼자의 무게가 너무 버거워 슬픔이었다.
몇날 몇일을 목터져라 일해야 내손에 들어오는 액수의 금액을 아침나절 손내미는 딸아이를 보면서 나몰라라 하는 남편이 너무 원망스러워 아랫입술을 터져라 꼬옥 깨물어 보았다.
어머니는 언제까지 어디까지 강해야 하는가?
참는것의 한계 그곳이 어디일까?
얼마전 나의 귀빠진 날이었다.
딸아이 하는 말이 엄마 생일이라고 아빠가 오신다고 좋아라 하는데 나는 그저 무덤덤이었다.
밤 12시가 다되어 남편은 생일 케?揚?들고 찾아와서는 잠시 투닥거리다 그밤길로 다시 돌아가 버렸다.
예전에 20년간 단 한번도 나의 생일을 그냥 지나쳐본 적이 없던 자상한 남편 마음에 와닿는 선물도 가즈런히 골라 그렇게 품안에 가득안겨주던 다정한 사람이었다.
케?恙?촛불을 밝히고 그렇게 네식구 오랫만에 자리한것은 좋았는데 아직도 현실감이 없는 남편 말한마디에 그만 참았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몇일후 외식을 하자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말에 왜 그리 화가 치밀었을까?
당장에 생활비 한푼 안주는지 못주는지 하는 상황에서 외식이라니...
가슴이 답답하다
회색빛 우울이 언제쯤 내곁을 떠날것인가?
어머니는 어디까지 강해야 하는가?
여자로써 나를 버리고 어머니로 살아감이 버거운 요즈음이다
아~~~~~~ 삶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