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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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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여자 이야기


BY 도요새 2001-07-28

내 친구와 나의 이야깁니다.
여고 2학년 때부터 그애의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요.
아주 재미있는 아이라는 것을요.
3학년되어 한 반이 됐을 때 참 반가왔습니다.
그런데 전혀 재밌게 생기질 않아서 좀 놀랐었습니다.

저는 키가 큽니다.
그 애는 키가 작습니다.
저는 피부가 까무잡잡 합니다.
그 애는 피부가 하얗습니다.
저는 눈,코,입이 다 큽니다.
그 애는 눈,코,입이 크지 않습니다.특히 눈은요.
저는 공불 잘했습니다.
그 애는 그저 그랬습니다.
저는 건강했습니다.
그 애는 허약했습니다.
저는 유머를 잘 몰랐습니다.
그 애는 위트가 있고 유머가 풍부했습니다.
저는 소수의 친구와 친했습니다.
그 애는 수도 없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깡패같은 애들까지두 친구였다니까요.
이렇게 다른데 우리는 그 때부터 단짝이 되었습니다.

여고를 졸업하고 저는 대학엘 들어갔습니다.
그 애는 몸도 약하고 하여 집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서울에 있는 오빠네 집에서 학교엘 다니던 저는
토요일만 되면,아니 어느땐 금요일 밤에 집으로 내려가
그애와 할 일없이 쏘다니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봄이가고 여름이 오자 우리는 여름휴가 계획을
짜기 시작했지요.
여고를 졸업하고 첫번째 맞는 여름방학이 아닙니까.
너,나 없이 모두들 들떠 가지고 난리가 났었지요.
친한 친구 다섯이 모여앉아 여기가 좋네,거긴 어떠네,
중구난방 당최 의견이 모아지질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 애가 그랬습니다.
자기네 교회에서 청년부 여름수련회를 가는데
거길 함께가면 어떻겠느냐고.
전도도 할겸 그랬던 거지요.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하기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떠나는 날....
아 참,제가 말씀드리지 않았군요.
그 수련회는 그 애네 교회 뿐만 아니라
그 지역에 있는 교회의 모든 청년부가 함께하는 수련회라
커다란 해군군함을 타고 어느 섬으로 간다고 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와-하며 좋아했었지요.
암튼,떠나는 날 부둣가에서
저는 그 애가 어떤 남자애랑 얘기하는 걸 보았습니다.
키가 크고 좀 마른듯한 체격에 우수에 차있는 얼굴이었습니다.
남자애랑 헤어져 제곁에 온 친구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누구야?"
"응,우리 교회 애."
"쟤두 가?"
"아니,애들 배웅나왔대"
섭섭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때 제 마음이 어땠는 줄 아십니까?
이 건 여지껏 아무에게도말 한 적이 없는데요.
"넌 내일 올 거야.날 봤으니까"그랬습니다.
좀 건방졌지요?
그렇지만 제 친구와 얘기하며 절 흘낏 쳐다보는 눈길에서
전 그 걸 느꼈다니까요.
죄없는 자 돌로 치십시요.

군함을 타고 물살을 가르며 섬으로 갔습니다.
해군복을 입은 멋진 남자들의 시선이 느껴져
살 맛이 났었습니다.
차~암,진짭니다.
지금이야 키가 엄청 큰 여자애들이 많지만
그 때만 해도 165센티미터의 키에
몸무게 48킬로그램인 저는
군계일학,아주 돋보이는 존재였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

다른사람들은 모두 숙소가 교회인데
우리 다섯명은 소속된 교회도 없고
그러구 싶지도 않아서
민박을 얻었습니다.

다음 날,
낮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늦은 아침을 먹고
가위,바위,보를 해서
보자기 내고 진 제가
개울가에서 설겆이를 끝내고 들어 와
막 얼굴에 화장이란 걸 하려던 참 이었으니까요.
그 방엔 창문이 제 가슴 높이께에 있었습니다.
다른 애들은 모두 방바닥에 앉아서
얼굴에 이미 이것 저것 바르며 깔깔거리고 있었고
저는 그 때 막 들어와 창문옆에 자리 잡느라 서 있었습니다.
앉으려 하다가 무언가 움직여 고개를 들어보니
어제 본 그 남자애가
울타리를 지나 사립문으로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진짜루 온 겁니다.
둘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애도 저도 말이 없었습니다.
그 애도 저도 눈길을 비키지 않았습니다.
그 앤 말없이 햇빛 쨍쨍한,
하얗게 빗질된 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었습니다.
한귀퉁이 꽃밭엔 접시꽃이 만발했었지요,아마?

시간도 하얗게 흘러갔습니다.
얼마나 흘러갔는지 지금까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게 실은 아주 짧은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지금은 그렇게도 생각합니다.

어쨌든,조금 도도한 제가
전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눈을 돌려
제 친구를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니 친구 왔다."
제친구가 일어나 내어다 보더니
부리나케 나가
그 남자애와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느 시집에서 이런 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것이 사랑,사랑이던 줄이
아니도 잊힙니다."

내 스무살의 연가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