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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일터(12)...값으로 매겨지는 사람들


BY 동해바다 2003-01-20


지독한 추위가 온다는 '대한' 
오늘이 24절기 중의 마지막 절기 '대한'이란다. 
동장군의 위세를 톡톡히 치루고 난 지금.... 
웬만한 추위쯤은 얼마든지 상대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젠 봄을 기다리는 성급한 사람들과 함께 
봄채비에 나서야 할 때인 것 같다. 

특히 그녀가 하는 의류업은 계절을 조금 앞서가야 하기에 
두툼한 옷들을 할인함으써 가게안을 가볍게 만들어 가면서 봄을 준비한다. 

중저가의 옷을 팔면서 본사에서도 없는 세일을 하려 하니 
남는 이문도 없고, 손님들의 수선요구와 신용카드 결재로 
그녀의 금고는 점점 얄팍해지고 있는 날들이다. 

그날그날 가뭄에 콩나듯 들어오는 손님들을 기다리면서 
유리벽에 커다랗게 걸어놓은 20% 세일이라는 빨간 천쪼가리가 손님들을 
부르고 있다. 

약 두달동안 단골이었던 손님이 있다. 
두어달을 열심히 드나 들면서 얼마나 옷을 사 입는지 
신상품이 들어 올때마다 조금 특이하다 싶은 바지는 모두 자기바지로 
만들고 마는 손님... 
그 외 소품들과 쟈켓 등도 물론 사 입는 고귀한 손님이었다. 
적어도 그녀의 일터에서는.... 

들어와서 얼마나 친한 척 하는지 약속시간 조금 남았다고 잠시 들러 
시간을 보내면서 옷 구경을 하고 가던 손님... 
귀한 손님이긴 하지만 조금은 역겨웠던 상대였는데 어느 순간부터 
외상을 깔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단골이기에 연락처 남기는 손님에게 기꺼이 그냥 주기도 했고 
며칠후 들러서 갚고 또 옷을 사입는 일을 번복했던 그 손님... 
그녀의 가게에선 유일하게 외상값이 많은 손님인데 서너달 지나면서 
발길이 뚝 끊겼다. 

기분 찝찝한 그녀는 그 손님을 믿었고 곧 가져 오겠지 하며 기다린 것이 
오개월째 접어 든다. 

몇 번 전화를 넣었지만 알았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오질 않으니 
속았다는 느낌이 들 뿐이다. 
결국 넌 얼마짜리 인간밖에 안된다고 판단을 하면서 예전 시어머님과 
같이 길을 걸으면서 말씀하시던 것이 생각난다. 

40 여년 전 이곳에 터를 박으면서 장사를 시작해 자그마한 소도시의 
유지로 있기까지 고생을 무던히 하신 부모님들이었다. 
아파트 붐이 일면서 가구점을 하시던 집에 돈이 넝쿨채 굴러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렇게 잘된 만큼 외상도 많이 깔린 모양이었다. 

그때 깔아 놓았던 외상값들을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갚지 않고 버젓이 
얼굴들고 다니는 사람들...(그땐 큰 돈이었단다) 
옆 집에 수저가 몇개 있을 정도로 훤한 좁은 소도시에 살면서 어떻게 
나다니는지 그녀의 사고방식으론 이해못할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때마다 어머님은...저건 얼마짜리...저놈은 엄청많아...하면서 
외상값이 졸지에 사람값으로 둔갑이 되곤 했었다... 

예전부터 모른척하진 않았겠지... 
재촉하다 하다 지쳐서 보낸 세월 속에 사람값이 쳐졌을 것이다. 
그땐 어머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웃곤 했는데... 

남에게 빚을 지고도 돈을 펑펑 쓰는 사람들... 
요즘같은 세상엔 차라리 '내배째라' 식으로 밀고 나가는 무식한 
빚쟁이들이 많다고 하지만, 소수의 외상값을 둔 그녀의 가게는 
어머님에 비할 바 못되겠지만 서너달 동안 모른척하고 떼어먹는 것 같은 
그 손님으로 인하여 믿었던 발등이 찍히는 사고를 냈으니... 
역시 포기하고 푼돈으로 그 사람값을 매길까 생각중이다. 

끈질기게 전화해서 외상값을 받아 낼 성격이 못되기에 
그냥 '에이! 치사해'하면서 포기해 버리고 마는 그녀... 

어찌 그런 성격으로 그녀의 일터를 사수할 지 걱정이다... 

그 손님은 자신이 푼돈값 밖에 안된다는 사실을 알까...... 
이런 식으로 여기저기 돈이 깔려 있을것이 뻔한데 
그렇게 푼돈값 인생으로 살고 싶을까.... 

유명스타나 스포츠 선수들.... 
이들에겐 수십억 수백억대의 값이 매겨지는 세상이긴 하지만 
본의 아니게 값으로 쳐지는 사람들.. 
자신을 속이면서 또 남을 속이면서 헐값으로 넘어가는 그런 인생으로는 
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한'이라지만 봄처럼 포근한 날... 
보름 남은 입춘이 성큼성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