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 후반의 아줌마인 나는
십년이상을 단발머리만 하고 살았다.
그때 그 시절에는 그 머리가 그렇게 지적이고, 단정해 보였으므로....
그러던 어느날 스스로 느낀 인상이 약간 딱딱하게 느껴지던 날이
있었다.
그래서 우연히 굵은 웨이브 퍼머를 해 보고, 갈색으로 염색을 해보았다.
아주 이상할 것 같았던 내 모습에서 예전에 알지 못하던 색다름을
맛 볼 수 있고 분위기 있어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면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모습을 하고
사는 이들도 있다.
어떨 때는 남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 바로 그러하지 않나 싶어
거울속을 한참이나 멀끄러미 들여다 보는 내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나라는 사람은 한마디로 잘라 말하자면 아주 멋쟁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주 촌스런 아지매도 아닌 뭐랄까? 다분히 중성적이고
어중간함속의 약간 보수적인 면이 있는 아줌마?
그래서 늘 정해 놓은 틀을 잘 깨지 못하는 아줌마인 것 같다.
하옇튼 한 마디로 무언가를 단정짓는 일이란 사람이나 물건이나
어려운 일인 듯 하다.
해마다 여름이면 난 내 나름대로의 미인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바라다 보는 즐거움을 갖는다.
노출의 계절인만큼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곤 한다.
우선, 아름다운 모발을 하고 있는 여성, 예쁜 발을 갖고 있어
어떤 샌들이라도 소화할 수 있는 여성, 미소지을 때 언뜻 언뜻
보이는 고른 치아를 가진 여성, 약간 가무잡잡하지만 매끄러워 보이는
피부를 가진 여성, 눈동자가 맑고 깊은 여성, 표정이 예쁜 여성.....
내가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으로 알고 있는 그런 범주에 포함되는 요소
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인지 늘 그런 것들이 좋아 보였다.
십년 이상을 스트레이트 단발머리만 고집하던 나는 어느날 맛본
웨이브 퍼머의 부드러운 맛에 취해 언제부턴가 약간 긴 머리도 해
보려고 했다.
무더운 여름이 되니 머리가 어깨에 닿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흐른다.
집에 돌아가기 바쁘게 머리를 묶으면서도 한번도 밖에 나갈때는
머리를 묶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어느날 용기를 내어 아줌마가 얼굴이 좀 크면 어때....
나만 시원하면 되지.... 약간의 뻔뻔함으로 채 마르지도 않은 머리를
쫑쫑 빗어 묶으니 아! 세상에 이렇게 시원할 수가....
이맛에 사람들은 머리를 단정히 묶고 다니는 구나...
그네들의 사는 맛을 나도 한번 느껴볼 수가 있었다.
진작에 맛 볼껄.... 하며 뒤늦은 후회를 남긴다.
아주 사소한 일 조차 너무나 많은 자신만의 틀을 만들어 놓고
살진 않았는지....
누구나 틀에서 조금만 벗어나 본다면 훨씬 다른 모습으로 살 수
있는거란 생각이 들었다.
난 평소에 악세서리에도 별 다른 관심이 없었는데
머리 묶고 보니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아 다음엔 예쁜 귀걸이도
해 봐야지.... 생각한다.
아직 귀도 뚫지 못한 바보지만....
요즘 사람 같지 않게 어쩌면 난 너무 멋 없이 산 것도 같다.
그날이 그날같은 일상속에서 조금쯤만 벗어난다면
아주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겠지 싶다.
궤도를 이탈해 버리는 일탈이란 때때로 아주 많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다른 이에게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면 우린 더 많은 일탈을
아주 많이 꿈꿔보는 자유쯤은 누려도 되는 것이겠지...
늘 옷을 차려입고 출근하는 나에겐 여름은 부담스런 계절이다.
노출이 있는 옷도 안되고, 그렇다고 튀는 색깔도 안되는.....
나조차 어쩔 수 없는 분위기 탓에 약간의 스트레스가 따라다니곤 한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휴가를 간다.
보드라운 면티 한장에, 경쾌한 반바지 한장 걸치고, 샌들 꿰어 신고,
날아갈 듯 가벼운 마음을 담고....
일상속의 나를 털어 버리고 싶다.
그저 발길 닿는 대로 자유롭게 다닐 참이다.
될수있으면 사람들이 적은 곳으로만 골라서....
일상속에서 벗어나는 즐거움을 최대한으로 누리고 오리라...
그런 생각을 하는 시간엔 더위조차 저만치로 물러 가 버린다.
돌아오는 길에 서 있는 나에게는
나의 자리가 소중하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돌아갈 때를 스스로 알아차리고 나도 모르게
어느새 그 자리로 돌아오고 만 내가 되었으면.....
떠날때 조차 돌아올 생각으로 머리속 한켠을 채워 놓는
나는 참 많은 틀을 만들고 산다.
하지만 그 틀은 나의 의지에 따라 세모, 네모, 동그라미 등등으로
자주 변할수 있음을 잊진 말아야지....
삶의 잔재미들을 자꾸 주워 담으려고 마음속에 빈 주머니를 만들어둬야지...
늘 깨어 있는 눈으로 세상을 바라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