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화가 났다.
교회 다녀와서 갑자기 시작한 김치 담는 일을 돕느라고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하긴 내가 생각해도 이번에는 양이 좀 많지 싶다.
동치미 한 단지, 배추 스물 여섯 포기니 교회 다녀와서 오후에 시작한 일이 밤 열 두 시가 거의 다 되어서야 끝이 났다.
난 김치 담아서 이 사람 저 사람 나누어 주는 것이 취미다.
바쁜 미국 생활에 김치는 대부분 사 먹는 사람들이라 직접 담아서 주는 김치를 받은 사람들은 감격하기 마련이다.
그것도 내가 자기에게 김치를 줄 것이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뜻밖의 김치 선물에 좋아 어쩔 줄 모른다.
난 정말 아무에게나 김치를 준다.
인사를 나눈 적이 없던 옆집도 김치를 들고 찾아가고, 우리집에 흰개미 퇴치를 위해 온 처음 본 한국 아저씨에게도 주고, 남편 친구집도 주고, 심방 온 전도사님도 목사님도 교우도 준다.
예전에 같은 골목에 살던 이도 주고, 딸 친구 엄마도 주고, 딸 친구 엄마의 친구도 준다.
남편은 돈도 계산한다.
이번에는 팔십 불이 들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적은 돈도 아니다.
내가 일주일에 버는 돈의 반이다.
남편이 날 더러 푼수라고 해서 생각해 보니 정말 내가 푼수라는 생각이 든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나는 왜 푼수 짓을 할까?
아들이 초등학교에 갓 입학 했을 때 생각이 난다.
아들은 필요치도 않은 책을 책가방 가득 담아서 낑낑 메고 다니며 자랑했다.
“엄마, 나 힘 세지?”
그 때의 아들처럼 어쩌면 나도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어때요? 내 김치 담는 솜씨가 좋지요?”하고…
그런데 그것이 이유라고 하긴 내가 너무 유치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내게 유치한 구석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좀더 그럴 듯한 다른 이유를 대고 싶다.
그래서 생각해 보니 이런 것도 같다.
요즈음 해가 갈수록 체력이 떨어짐을 느낀다.
흰 머리카락도 늘고, 시력도 약해지고, 두뇌회전도 느려짐을 느낀다.
슬며시 머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도 든다.
내가 약해진다고 느낄 때 가족이 더욱 보고 싶기도 하다.
자동차로 삼일을 달려가야 하는 곳에 사는 아들도 딸도 보고 싶고, 한국에 있는 시부모에게 미안한 생각도 든다.
가족에게서 느끼는 따뜻함이 그리워, 같은 피를 나눈 한국 사람에게 김치를 주면서 내 마음을 전하는 지도 모른다.
“우리 가족처럼 지냅시다.”하고…
나이가 들어감을 몸으로 느끼면서 좀 더 열심히 살고 싶은 생각도 든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 때에 부지런히 하고 싶다.
그러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난 할 수 있을 때에 열심히 했다는 자부심이 들 테니까…
김치를 담아 이 사람 저 사람 퍼 주면서 울 엄마 생각도 난다.
내가 김치를 담아 나누어 주길 좋아하는 것은 유전이나 환경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에게 퍼 주길 좋아하던 울 엄마를 닮아서든지, 그걸 보고 배운 것이 이유일 수도 있으니까…
아무튼 나는 김치를 담아서 남에게 퍼 주는 것이 좋다.
옆에서 도와주느라고 힘이 들어 날 푼수라고 공격하는 남편에게 미안하긴 하지만
김치를 담그면서 남편의 사랑을 느끼는 것도 좋다.
투덜거리면서도 아내가 좋아하는 일이라고 말리지도 않고 옆에서 도와주는 남편을 아무나 가진 것도 아님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좀 더 자주 푼수 아줌마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