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언니가 한분 계시다.
당대 절세미인인 김지미보다 이쁘다고 소문난 언니는
23살의 나이에 청상이 되었다.
언니에 대한 일화가 있다.
세월을 한참 거슬러올라 60여년전의 일일게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임지를 따라 오류동 오류국민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얼굴은 박꽃같이 희고 세일러복에 구두를 신은 계집애인 언니가 하도 신기해서
반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는 사람인가 인형인가하고
꼬집어 봤다는 거짓말같은 이야기(믿거나 말거나)가 남아 있다.
난 언니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수 없었지만 사실로 인정할 기회가 있었다.
나의 초등학교 친구의 아버님신 분이
언니의 사범학교 일이년 선배셨단다.
훗날 내가 제법 컸을 때 하신 말씀이...
"니네 언니 학교 다닐 때 참 예뻤지~~~~~" ㅡㅡ;;
언니와 나는 21년의 나이 차이가 난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언니는 결혼을 했다.
내가 기억이 더듬을 수 있을 나이에 언니는 친정인 우리집에서 함께 살고 있었다.
사범학교를 다니던 언니는 6.25 난리 때문에 학업을 중단하고
1.4 후퇴 때 부산으로 가족들과 함께 피난을 떠났었다.
부산에서 2년여 가량 살았는데 전시에는 여자가 가장 위험하다고
할머니의 중매로 할머니 고향출신의 남자와(뼈대있는 가문의 사람이라고 적극 권유)
이렇다 할 거부도 못한 채 결혼을 했다 한다.
환도후에는 서울 중심가에서 시계방을 해 돈도 적잖이 벌었고
조카를 낳고 그 아이가 세살 무렵
그러니까 내가 태여나던 해 형부는 급작스런 죽음을 맞이 했다.
날씨도 스산한 초겨울의 어느날 갑자기 복통을 호소하던 형부를
급하게 서둘러서 순천향 병원에 입원 시켰다 한다.
그 당시의 병명은 복막염...
이른바 맹장이 터진 것이었다.
부랴부랴 수술을 마치고나니 피가 모자란다고 서울대학병원에가서
혈액을 사오라고 해서 언니가 급하게 뛰어가 혈액을 사다 제공했고
곧 형부는 수혈을 받게 되었다.
언니가 가져올 때 얼음이 버석한 상태의 혈액이였는데
녹인다고 녹여도 차가운 상태의 혈액을 맞았다는 언니의 말이다.
몇시간에 맞춰 수혈을하고 나니 형부가 오들오들 떨면서 춥다고
근처 여관이라도 데려다 달라고 애원을 하다시피 하는 걸
언니 맘대로 할수가 없어 그냥 놔두었는데
그날 새벽에 돌아 가셨다고...
복막염 수술 예후가 안좋아서 였는지 모르지만 언니가 생각하기론
재데로 녹지도 않은 차가운 피를 맞아서
아마 체온이 떨어져서 돌아 가신 것 같다고 넋두리처럼 말했다.
형부 별세후에 언니는 가산을 정리해서 친정살이를 했다.
그때 나이라야 겨우 스무살 초반...
졸지에 과부가 된 딸을 바라보는 부모의 심정이 오죽했으랴...
몇년을 함께 살다가 언니는 초등학교 다니는 조카를 친정에 두고 재혼을 했다.
서울로 올리간 언니가 살던 곳이 서울 정동이었는데
게딱지같은 무허가 판자집이 다닥다닥한 도시빈민촌이었다.
전후 복구가 안된 시절이라 서울 중심가엔 판자촌이 많았다.
방학이면 언니 집에 가는게 연례행사였다.
서울역에 내려 순화동으로 나와 배재학교와 법원
그리고 이화고녀와 경기고녀를 지나 정동교회를 돌아가면 정동 판잣촌이 나왔다.
그곳을 가는 길은 언제나 달라보이고 길도 여러 갈래었다.
요리조리 미로에서 헤매이듯 언니집을 찾아가는 길은 언제나 가벼운 흥분이 일렁였다.
방학에 언니집에 가면 언니는 극장엘 자주 데리고 갔다.
화신극장과 파고다극장 두곳을 잘 갔는데
외화와 방화를 2本 동시상영 해주던 곳이었다.
그때는 전쟁영화, 계몽영화, 사극영화가 많았는데
국산영화로는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가 처음 나오던 시기였다.
그때 본 외화는"지상에서 영원으로..." 였다.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는데 비행기가 나오는 전쟁영화였다.
방학이 되면 그리도 언니에게 가고 싶었던 건 여성스러움과 세세히 챙겨주는 포근함이 있어
아마 언니에게서 엄마의 사랑 같을 것을 바랬던 것이지 싶다.
리본과 프릴이 달린 예쁜 원피스를 사입혀 공주처럼 꾸며주고
머리장식도 신식으로 틀어 올려 한결 멋스럽게 만들어 주었다.
겨울이면 짬짬이 뜨게질로 예쁜스웨타도 짜서 보내주고
엄마가 안계신 몫을 음으로 양으로 많이 메꿔 준 나의 언니다.
결혼생활에 많은 무리가 따르긴했지만
그래도 잘 버티시고 살아주신 나의 언니...
남자 형제와 달리 자매의 정이 나이들어 더 돈독해 진다.
언니가 없는 세상은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내년에 칠순이신 우리 언니..
언니 오래 사세요.
다리 힘 빠지면 부축해 드리고 다닐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