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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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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주부의 알.콩.달.콩/8.건망증 신랑


BY 꼬마주부 2000-07-10

하얗고 단정한 제 신랑은 똘똘해 보이는 겉보기와는 달리 참 기가 막힐 정도의 건망증을 가지고 있어요.
워낙 허튼 모습이 없고 무슨 일이든 꼼꼼하게 처리해서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고 신뢰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전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고 싶답니다.

신랑의 건망증은 전화기를 냉장고에 넣어 두는 등의 아줌마 건망증과는 조금 달라요.
신랑은 말해 준 것 까먹기의 대왕인데 하나의 이야기는 최소한 세 번 이상은 말해줘야 간신히 머리 속에 입력을 시킨답니다.

"함!(신랑을 부르는 소리,함씨거든요^^) 이번 일요일에 친구 00결혼한다고 연락왔다."
"엉? 애인 없다 더니 빠르네?"

며칠뒤,
"함! 이번 일요일에 결혼한다는 00가 마음이 이상한가봐."
"엉? 00씨가 결혼 한다구? 애인 없댔잖아?"

일요일 결혼식장에서,
"(메세지 보냄)함! 다 모르는 사람 뿐야. 심심해."
"(메세지 받음)어딘데?"
"(보냄)결혼식장"
"(받음)누구 결혼해?"

사실, 결혼전엔 신랑의 건망증을 모르고 그저 나에 대한 관심이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몹시 섭섭해 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어요.
그러나 결혼하고 생활해 보니 연일 계속되는 신랑의 특이한 건망증에 서서히 적응이 되더군요.
또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화장대 서랍을 정리하는데 작년 결혼하기 전, 여름에 신랑이 길거리에서 사준 싸구려 플라스틱 팔찌가 나왔어요.
감회가 새롭고 신랑에 대한 마음이 애틋해져서 그 때처럼 팔에 끼고 콧노래 부르며 기분 좋게 하루를 보냈죠.
신랑이 퇴근하고 저는 그 팔찌를 낀 팔뚝을 들이밀려
"이것 봐~"했어요.
신랑은 씩 웃었어요. 옛생각에 감회가 새롭나봐요. 하지만 곧 들려온 신랑의 말.
"샀어?"

.......

좋은 분위기 산통 다 깨는 신랑이 참 기가막히지만 어쩌겠어요.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닌데 그런 줄 알면서도 결혼한 제가 참아야죠.

그러던 몇 주전,
신랑은 그 특이한 건망증으로 절 포복절도 하게 만들었어요.
시어머니께서 폐식용류로 만든 빨래비누 열몇개를 빨간 비닐 봉지에 담아 주시며 "두 세개는 너희 쓰고 나머지는 친정 어머니 드려라."하셨어요.
신랑은 잘 받아 들고 집으로 와 현관문 옆에 세워 놓았고 전 5일 쯤 지나 친정 엄마께 드렸어요.
그리고 비누 받은 지 정확히 일주일 뒤 일요일.
모처럼 신랑이 쉬는 날이라 우린 아침부터 집안을 치우고 시댁에 가기로 했죠. 신랑은 빨래를 널더니 갑자기
"어? 여??던 빨래비누 어딨어?"
"왜?"
"빨리, 어딨어?"
"어제 엄마 드렸는데?"
"장모님? 다 드렸어?"
"응. 왜."
"몇 개만 빼 놓지."
"괜찮아. 우린 하나 가지고 오래 쓰잖아. 욕실에 하나 있어."
"그게 아니구, 엄마 갖다 드리게."
"??? 뭘?"
"빨래 비누."

세상에, 이 남자 자기가 들고 왔던 빨래 비누를 누가 줬는지도 모르는거예요. 전 기가 막히다 못해 너무 웃겨서 막 웃었죠.
"그거 누가 줬는데 누굴 갖다 주겠다는 거야?"

그제서야 신랑은 가만히 생각하더니
"엉? 그거 우리 엄마가 주셨나?" 하는거예요.

그래놓고 하는 말이
"알아, 일부러 너 웃길려고 그런거야. 웃겼어? 이제 그만 웃어."

어찌해야 할까요, 이 특이한 신랑의 건망증을.

오늘도 퇴근하면,
"엉? 너가 왜 우리집에 있어?
그러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