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로 흐르는 시간
갑자기 어두운 구름을 몰고와 한차례 소낙비를 마구 쏟아붓습니다.
이렇게 비만 오면 그의 생각이 나곤 합니다.
지금은 또 어디쯤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늘 업무상 여기 저기 운전하고 다녀야 하고, 야외에서 일을 하는 시간
이 많은 그는 다름아닌 우리 아이들의 아빠입니다.
햇빛이 내리쬐는 뜨거운 날에도 그는 어김없이 내 안에 와 있습니다.
가뜩이나 까만 얼굴을 또 얼마나 태우고 있을까를 생각하면....
일을 하다가 문득 가만이 일손을 놓고 있게 만듭니다.
서로 다르게 자란 이들이 만나서 한 가정을 꾸린다는 것
맞지 않는 부분이 하나 둘씩 생기기도 하면서 참 많이도 티격 태격했었는데.....
이젠 다소간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그러려니 하며 어찌보면 좀 무뎌진 듯하게 살고 있습니다.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지만 수입도 일정치가 않고, 시간도
들쭉 날쭉해서 가족여행도 늘 미루어둔 채 살지만....
그래도 건강한 몸으로 해야할 일이 거기 그렇게 있다는 것으로도
행복해하며 살려 합니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날짜 맞춰 월급받는 내가 그의 생활을 모두
다 이해할 수 없다 해도 그가 힘들여서 번 돈을 써야 할때 나는 아주 많은 생각에 잠깁니다.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는 그는 지금 또 얼마나 더위와 싸우고 있을까
를 생각하니 마음이 편칠 않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편안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허나 마음대로 되는 게 세상살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그 순간부
터 우린 누구나 자신의 어깨위에 올려져 있는 짐을 발견하곤 합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만 하는 필연으로 그 자리에 스스로를 붙잡아 맬 수
밖에 없는 것이 삶이기도 하므로....
지금 이 시간에도 어디선가 소낙비를 맞아 가며
땀을 쏟고 있을지도 모를 그가 많이 생각나는 오후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잘 못해 주지만
그의 땀과 노력이 헛되지 않게 내가 그에게 힘이 되어 줘야 되지
싶습니다.
그가 뿌린 꿈들이 뿌리를 내리고 부단히도 자랄 수 있도록 비옥한
토양이 되어 줘야 되지 싶습니다.
무뚝뚝한 마누라의 잔소리가 곁에 없으면 허전해질 그이지만
때론 따뜻한 차 한잔 나누며 사는 이야기 풀고 싶어지는
그런 여자 되어야지 싶습니다.
때로 그가 좋아하는 트롯트도 말없이 함께 들어줄줄 아는
조금쯤은 너그러운 모습의 내가 되어야지 싶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조차
어쩐지 너무 쉽게 사랑을 생각하는 것 같아 조심스러운 나는
사랑한다는 말 만큼은 아주 가끔씩만 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자꾸 그에게로 향하는 나의 마음조차 사랑이지 싶어지는
그런 오후입니다.
그는 어느새 내 안에 와 있습니다.
아주 넉넉하고 푸근한 모습의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