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애틋한 사랑은 과연 어찌될까요?
아우가 맡기고 간 하레이를 닮은 작은 바이크를 은행나무 아래 세워
두고 하늘을 찌르는 플라타너스 그늘에 limegreen 색 해먹을 묶었습니
다. 매미 소리를 명쾌하게 뚫고 포장이 잘 되어 하얀 종이에 씌여진
주소까지도 선명하게 얼룩지지 않은 깔끔하고 두근거리는 소포처럼
직선으로 귀에 당도한 심청가를 들으며 천천히 12도 가량을 흔들립니
다. 나무벤치 아래엔 선명한 초록색의 청개구리 한마리가 수상쩍은
듯 무표정하고 흔들림 없는 눈으로 목을 조금 부풀리며 아까부터 바
라봅니다. 벤치위엔 담배 한갑, 은색 Zippo 라이터, 렉싱턴의 유령,
빨간색 파리채... 두개피 째의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이젠 재털이로
용도 변경을 마친 바닥에 조금 남은 커피와, 용서 없이 적셔 꺼버린
담배꽁초 하나를 품은 캔커피. 가끔 공간을 일렁이는 바람이 겨드랑
이를 상큼하게 빠져 나갈 때도 있지만, 여름은 아직 장마안에 머물고
세상은 탈수만 마친 수건입니다.
풍랑은 뱃전에 우르르르르....
두 눈을 딱감고 뱃머리로...
두손을 휘저으며....
횡~ 허니 풍덩 하고오....
절박하게 다이빙을 강요당한 심청이는 결국 인당수에 뛰어 들었고,
나는 어깨 근처를 오슬거리는 감동으로 소름이 전력질주 하는것을 느
낍니다. 즐겁게 웃던 아이들도 돌아가고, 자원 봉사자라는 임시 직함
을 가지셨던 분들도 각자의 보람과 의견을 가만히 내려두고, 어디론
가 다시 세상살이가 지정해 준 자신들의 위치로 돌아 가셨습니다. 마
저 남은 두 리어카의 쓰레기를 처리 터미널로 돌려 보내는 작업을 위
하여, 발 아래의 마사토가 숲속에 자박이는 소리를 들으며 잠시 노동
의 발자국을 옮기고, 마침내 적절히 처리하고 난 후, 차가운 물의 커
튼 안에 들어 섭니다. 물을 맞으며 극점의 하늘을 떠도는 오로라를
생각합니다. 웬지는 모르지만 오로라가 내 몸을 이리저리 감싸고 지
나는 것 같은 분위기 입니다. 펭귄이 주변을 잠시 서성이고 나는 극
광의 순간을 손가락으로 만져 봅니다. 어쩐지 두배의 고독이고 헤아
릴 수 없는 적막입니다.
한동안 그렇게 물을 맞는 산란기 연어가 되어, 샤워꼭지로 기어 오르
며 뜨거운 몸과 팍팍해진 마음을 식히고 마른 수건을 찾아 머리를 털
며 서식지 앞의 해먹으로 향합니다. 머리카락은 몇 가닥씩 뭉쳐 검은
색을 더하며 불쑥 불쑥 뻣뻣하니 서고 코 끝엔 물 방울이 달려 있습
니다. 나는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깔끔하고 뽀도독한 느낌으로 28발자
욱을 걷습니다. 그러고 나서 밤을 새워버린 끝날 것 같지 않던 대화
때문에, 도저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숲을 향해 짖는 꿈속의 개를 보는
듯이 어쩐지 현실과의 경계를 잘 구별하지 못한 채, 슬로우 비디오로
움직이던 뻑뻑한 몸이 조금 느슨해진 것도 같습니다.
해먹에 누운 얼굴 위의 하늘을 모두 덮어 버린 플라타너스를 바라봅
니다. 어쩌면 저렇게도 수 많은 색의 집합체 일까? 를 문득 생각합니
다. 같은 나무의 잎사귀 이므로 모두 같은 색일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지나친 단순함이 될 것입니다. 나무 잎사귀가 햇살을 투과 시키
며 lawngreen 색을 띱니다. 그곁의 잎사귀는 또다른 잎사귀의 그림자
로 절반의 밝음입니다. 또 다른 잎사귀는 두 번의 겹칩이 이었으므로
1/4의 밝음입니다. 그렇게 얽히고 설킨 조건으로 단 하나도 동일한 색을
가진 잎사귀는 없습니다. 굳이 수학적인 계산을 하여 본다고 하면 엄
청난 경우의 수를 가지게 되겠지요. 그러고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의 일조량에 따라 또 다른 색상의 집합체가 됩니다. 게다가 흐리거나
비가 오거나 비의 양에 따라 또다른 색상이 되고, 그날의 마음속 강
우확율에 따라, 소주의 일용한 양에 따라 또 다른 색으로 또렷해 집
니다. 그러므로 초 여름 플라타너스의 색 하나만으로로 무한한 절망
입니다. 분류를 따지면 따질수록 끝간데 없는 절망입니다.
결국 우리에게 익숙한 어떤 것 하나라도 가지고, 찬찬히 따져보며 분
류 하여도 답은 곧장 알 수 없는 미로에 빠져들고 결국은 블확정에
입각한 chaos입니다. 두 개의 거울을 바라보아도 그렇고 조그만 구슬
을 손에 들고 들여다 보아도 그렇습니다. 분자도 원자도 미립자도 그
렇습니다. 늘 시선의 끝에, 기억의 제일 앞에 남아 공간의 얼룩이 되
어버린 당신은 더욱 말할 것도 없겠지요. 불과 몇 백년 전의 사람들
이 사각형의 땅끝에 가면 끝이 없는 지옥에 떨어 진다고 믿었으며 아
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와 남극, 북극은 아직 세상에 존재 하지 않
는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지구는 둥글고 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와 남극, 북극은 발견 되었고 탐험 되었고 개발 되었
습니다. 수 많은 은하와 혜성과 이젠 이름을 가지거나 기묘한 기호로
표시되거나 하는 수 많은 별 들을 인류는 발견 하였습니다. 그래서?
라고 질문을 하여 보았습니다.
늘 받는 익숙한 질문은 우리는 이러이러하게 만났습니다. 우리는 사
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애틋한 사랑은 과연 어찌될까요?
사랑에 왕도가 있겠습니까? 그저 덜 아픈 사랑이 다가오도록 많은 욕
심을 부리지 않는 것이 그렇게 겸손하고 다소곳한 것이 그런대로의
방법이겟지요. 사람의 마음을 나 스스로와 같이 존중하고 부드러운
거절과 속 깊은 고백이 최고 이겠지요... 당신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분명히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고 찬찬히 말하는 진실된 심장을 알아
보면 되겠지요. 걸어다니는 뚜벅이라고, 멋을 모르는 소탈한 사람이
라고 그저 먹고 살만한 정도의 집안이라고, 그런 중요하게 보이는 사
소한 이유로, 너무 먼 미래의 예측으로 서로의 가슴을 태우지 않으시
면 되겠지요... 결국 꿈을 꾸는 방법을 알고 싶은것이나 다를게 있을
까요? 님의 다가올 사랑에 절대 행복이 있기를...
또 다른 서신은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하지 않았고, 알고보니 사랑
할 수 없는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더라.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 삶이
그렇게나 아스라히 꼬여 버렸더라…통계라는 말이 이런때 쓰인다는
것은 상당히 절망스러운 일입니다. 35%의 부부가 이혼을 하고 20%정
도는 그야말로 아우성을 치며 살고 있답니다. 또 20% 정도는 서로를
포기하면서 인생을 매일 같이 지워갑니다. 또 20%는 애들 때문에 라
든가 생활능력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결국 10% 정도도 진짜
행복하니? 라는 질문에는 명확하지 못한 답을 합니다. 그러므로 90%
가 실패에 가까운 결혼생활이라는 것은 너무나 무의미! 하다고 생각
합니다. 적어도 60%의 부부는 행복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런저런
주변의 충고를 대부분 잘못 된 것이 맞습니다. 그 결과를 보면 간단
한 일이지요. 그런대로 아직 이 나라에서는 조건과 둥지의 안락함에
다 결혼을 올려 놓으려 합니다.
그건 정말 정신나간 짓이 아닐까요? 진짜루요…
이젠 누군가가 어디에선가는 진짜 사랑을 위하여 결혼을 시작해야 겠
지요. 언젠가 안락함을 선택한 유복한 부인이 제게 메일로 그러시더
군요... 다시 태어난다면 매일 라면만 먹어도 그사람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후회는 아무리 빨라도 늦는 것이 겠지요. 그리고
라면도 못 먹는다면? 이라는 조건을 슬몃 머리속에서 떠올려 봅니다.
한계라는 것 이겠지요…
사람의 만남에 대하여 생각합니다. 어떤이는 만나면 곧 오랜 친구를
만난 듯 편안하고 이야기가 솟아 납니다. 어떤이는 만나자 마자 끝을
알 수 없는 기억속의 우물에 고여 있던 근심이 darkolivegreen 으로 어
두컴컴 고여 오릅니다. 이전에 맛보았던 우울이고 몇 번 맛보았던 참
담한 실패의 눅눅한 내음이 납니다. 그러니까 사람의 만남은 조심스
러운 것이고, 사람이 사람을 실망시키고 사람이 사람을 소모 시킵니
다. 가끔씩은 만나자 마자, 정신없이 의미를 가지는 단어와 부드러운
미소에 빠져 듭니다. 그런 일로하여 사람은 사람을 만날 용기를 가지
게 되는 것입니다. 쥐꼬리의 1/10만한 확율이라도 희망을 가지게 되
는 것이 겠지요. 비록 9/10를 실망하게 되더라도 우리는 꽃을 발견한
꿀벌이나 아메리카를 발견한 아메리고에 다름 아닙니다. 일부 희망이
고 일부 발견이고 대부분 절망입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는 아닙니다. 그저 조건 반사인 것 뿐이겠지
요. 두 사람의 원활한 특성에 의거하여 A와 만나면 상처뿐인 투쟁의
시간을 시끄러운 원성으로 살아낼 것이고, B를 만나면 온 세상에 장
마가 진 듯 습하고 어둑한 기억이 늘 물안개 어린 석양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C를 만나면 그저 서로 자기 일을 열심히 하겠지요. 멀지
도 가깝지도 않고, 어쩌다 마주치고 메마른 인사를 하게 될 것입니
다. 지난 가뭄으로 기억된 흙먼지 날리는 그런 인사가 되겠지요. 어
쩌다 과거로 흘러 가봅니다. D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명문대생이었
고 늘 광채가 나는 여인입니다. 그리고 정말 가끔 어떤 때, 천박함
이 엿보였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나는 그녀와 함께 하였고, 그녀는
50% 이상의 시간을 천박함으로 메웠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나머지를
이기심으로 채웠지요.
당연하지 못한 상대성 원리에 따라, 나 역시 이기적이 되었고 나는
알고 있었고, 소모 되었습니다. 이만저만 우울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잘못은 내쪽에 있었습니다. 짐작하였지만 인정하지 않은 것이지요.
알고 있었으면서도 기대를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D와 나였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D와 E라면 또는 D와 F였다면 또 다른 결과가
있을 수도 있겠지요. D의 미래에 그다지 많지 않은 굴곡이 있기를
바라고, 그것은 아마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을 미리 알았으므로 나는
적극적으로, 소극적이 되었습니다. 잡지 않고, 전화하지 않고, 기억
하지 않았습니다. 기억은 물처럼 지나가기를 바랬고, 추억은 얼룩을
남기더라도 계절이 채 지나기 전에 마르기를 바랬습니다. 잊어 버린
척한다든가 진짜 잊는다는 것은 별 차이가 나지 않는 일입니다. 필
요는 발명의 어머니일 뿐만아니라 기억의 환경미화원입니다. 나 역
시 포장이 멋지고 그럴싸한 그릇된 만남 때문에 괴로움의 바다에 다
시 빠져 들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어쩌면 운 따위에 관련된 일이
라 더욱 두렵고, 당신을 돌아보면 역시 절망입니다.
무남독녀 외딸 하나 물에 빠져 죽은 지가 우금 3년인데
나더러 아버지라니 도대체 누구요.
오오오 아버지 여태 눈을 못뜨셨소...
아버지 눈을 떠서 어서어서 나를 보오 어서어어...
부활한 심청이는 그렇게 절규하고, 나는 한가로이 해먹에 누워 흔들
리는 순간, 세상은 slategray 색 안개로 젖어들고, 문득 아침 산책길
에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옥수수가 건넨 인사를 생각합니다. 오늘도
산책해요? 왜 걷고 있나요? 우리는 벌써 수염이 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므로 나는 당신보다 지혜로울 수도 있네요. 그렇지? 그래 그래
…옥수수들는 조잘 거렸고 나는 걸었습니다. 벌써 바람을 탈줄 알고
천천히 공허한 움직임을 더하는 옥수수대를 닮아 내기만 한다면, 분
명히 기다림이라는 어감을 이해하게 될것입니다. 비록 가을이면 자
루에 담아지겠지만 종자는 남고, 옥수수는 다시 자랍니다. 그리고
지혜로운 유전자가 되어 또 여름바람에 끈기있게 인내하고 우아한
춤을 추어 내겠지요. 자꾸만 회색의 산과 회색의 나무와 회색의 행
성이 눈동자를 열고 들어 옵니다. 나는 눈을 감고 이내 한쪽으로 늘
어 집니다. 그렇게 한참을 기절한 듯이 움직임을 제거해 버리고 잠
에 빠져 있다가 깨어보니 어쩐지 잠든지가 5분도 되지 않을 것 같기
도 하고 지금이 아침인지 저녁인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보면 나 역시 dimgray 의 보호색으로 절대로 발견 되
지 않을 것 같습니다.
세 그루 소나무 아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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