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산불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코알라 살처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258

아름답게 늙어가는 방법 (95)


BY 녹차향기 2001-07-24

더운 여름을 조금 시원하게 지낼 수 있을까 하여 오후엔 미용실에 갔답니다.
곱슬머리에다 숱도 엄청 많아 걸레질만 해도 땀이 머릿속에 줄줄 흘러 여간 더운게 아니었거든요.
상큼하게 숏커트를 치고나니 조금은 젊어보이는 듯도 하였지만,
또 어쩐지 그렇게 짧은 머리와 얼굴은 잘 조화를 이루고 있지 않은 듯한 느낌.
나이가 들면 거기에 따라 조금씩 외모에 변화를 주는 것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것 보다는요.

사실 그 곱슬머리에 얼마나 많은 불만을 품고 살았는지 몰라요.
남들처럼 찰랑거리는 머릿결을 주지 않은 엄마를 원망하고, 꼭 돼지털처럼 뻣뻣하고 두꺼운 머리카락,
한번두 머리카락 싸움에서 져 본 일이 없답니다.
숱도 너무 많고, 머리카락 색깔도 시커멓고.
가늘고 찰랑거리는 긴 머리를 볼 때마다 얼마나 부러웠는데요.
샴푸광고에 나오는 그런 머리 있잖아요.

근데, 요즘 와서는 이런 곱슬머리, 엄청나게 많은 머리숱,
까만 머리색....
남들이 얼마나 부러워 하는지 몰라요.
남의 떡이 커보인다고 제 머리카락을 부러워 하는 사람들은 자기 머리카락은 너무 가늘다, 너무 숱이 적어 속알맹이 없는 사람이다,
색깔이 희미하다...
하며 제 머리카락이 좋다고 한마디씩 하지요.
제가 그 사람들 머리카락을 부러워하듯이 말이죠.

그래요.
사람들은 모두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 보다는 남들이 가지고 있는 것에 더 애착과 미련을 가지고 살기 마련인가 봐요.
전 눈도 작아요.
전형적인 한국사람의 눈이죠.
인형처럼 굵게 쌍꺼풀진 눈 제 이상형이죠.
하지만, 그런 미련 모두다 버리고, 작은 눈이지만 나름대로 매력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죠.
그러고 나니깐 맘이 편하더군요.

그런 일은 비단 얼굴에만은 아니겠죠.
남편이나 자식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겠죠?
옆집 남편에 비해 내 남편은 어리숙하고, 답답하고, 속 터지는 일만 골라하고, 앞뒤 분간도 못한다고 늘상 불만만 터뜨리고 살면 결국 자신의 남편은 그런 사람인 채 평생 함께 삶을 엮어갈 뿐이잖아요.
으음....
그건 어쩌면 자기최면 같은 거.
그게 설령 사실이 아니라 할 지라도 그렇다고 믿고, 그렇게 행동을 하고, 그렇게 살다보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 된다고 믿어요.

참 사소한데서 우린 행복을 찾지요.
제 남편은 제가 정성껏 차려준 밥상 앞에 앉으면 기분이 참 좋대요.
이 여자가 나를 이만큼 사랑해 주는구나....
하고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밥상 앞이래요.
항상 좋고 맛진 반찬을 해 주는 것은 아닌 거 아시죠?
가끔은 실망스런 표정으로 수저를 들 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고,
새로운 반찬 하나라도 올려놓은 밥상을 마주 할 땐 제 마음도 흐믓하고.
참 사소한 일상에서 참 사소하게 맛보는 느낌.

이른 아침 머리맡에 울려퍼지는 음악소리, 친구가 준비해 준 냉커피 한잔, 엄마 힘들다고 엄마방 침대정리를 해 주는 아이의 고마운 손길, 시장바구니를 자기도 들 수 있다며 애써 엄마 것을 빼앗아 드는 아이의 든든한 뒷모습, 예쁜 장미꽃 한 송이, 현관 가득 차 있는 가족들의 신발..
이런 것에서 느끼는 사소한 행복에 만족할 줄 아는 작은 사람.

못 생겼음 어떻고, 조금 경제적으로 불편하게 살면 어때요?
아이들이 기대치에 못 미치면 어떻고, 사람들로부터 갈등이 생겼음 또 어때요?
다 사는 재미인걸요.
방학이 시작되었는데도 어디 놀러가자는 얘기가 나오지 않아 실망스러워하는 아이들과 암사동 선사유적지도 한 번 가 보고, 서대문에 있는 농촌박물관도 가 보고, 우이동 계곡에도 가 볼까 해요.
먼데로 여행가는 즐거움은 다음으로 미뤄야 할 까봐요.
그래두 되지요?

오전엔 집중호우로 퍼붓는 듯 비가 오더니 오후엔 강렬한 태양에 기절할 듯이 지글지글 뜨거운 지열이 타올랐어요.
모두 건강에 유의하세요.
여름을 유난히 많이 타시는 분들 외출도 삼가하시고요.
식사도 꼬박꼬박 잘 하시고, 중간중간 간식도 조금 하고,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여름 지내세요.
모두 그렇게 아름다운 시간이 되셨음 좋겠네요.

늦은 밤, 이제사 식사를 하는 남편에게 맛있는 후식이라도 줘야겠어요.
참 고마운 남편인걸요.
평안한 밤 되세요.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