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아직 어릴때 힘든일이 많아 친정어머님께
하소연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제게 한말씀 하십니다.
"아가! 옛날에 아주 가난한 선비가 살았단다. 자식들
먹일 양식은 고사하고, 옷한벌로 사철을 살았단다.
선비부부는 고생하는 여식이 불쌍해 시집을 보내면 밥이라도
굶지않고 먹을까 하는 생각에 딸을 시집을 보냈다.
그 딸 시집을 가보니, 친정이나 다를바 없었지, 가난에 찌들고
지쳐서 결심을 했단다. 이참에 팔자나 한번 고쳐보자...
보따리를 싸서 머리에 이고 사립문을 나서는데, 여덟八자가
보따리를 이고 앞서서 가더란다.
그딸 쪽마루에 걸터앉아 생각을 했단다. 어디를 가든 팔자가
앞서 다닌다면...있는곳에서 팔자와 싸워 이겨야겠다. 라고"
어머니 말씀을 듣고, 몇날을 생각했습니다.
그래! 어차피 힘들 것이면 있는 곳에서 나도 싸워이겨야지...
아마도 우리어머니 하늘에서 후회하실 것입니다.
그 이야기 때문에 딸이 주저앉아 고통당하는 것은 아닐까...
한가지 시련이 시작되면 뒤를 이어 줄줄이 시련이 달려옵니다.
처음엔 힘들어 쓰러질것 같아도, 두번,세번...
그러다 보면 익숙해 지고 무감각해지게 되지요.
아마 저도 그랬을 것입니다.
세상엔 나쁜 사람만 있는것은 아닙니다.
남편이 거래처에서 받은 어음을 할인해 주시던 이웃집 아주머니가
계셨습니다. 남편가고 얼마있어 마지막 한장 지급일이 닥아옵니다.
전 걱정이되어 발행회사에 전화를 했습니다.
당연히 지급을 해 주어야 함에도 그쪽에선 지급정지를 걸어놓은
상태였습니다. ?아가 울면서 지급정지를 해제해 달라고 사정을
하였지만 들은척도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은 대금지불이 아니라 빌려준 어음이였다고 발뺌을 합니다.
빌려준 어음이니 알아서 처리해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지급정지를 할 수 밖에 없었다고...
이해 할 수 없는 일들이 연이여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해 할 수는 없지만 모든일에 대하여 인정은 하여야 했지요.
인정을 한다는게 쉽지는 않았지만 이해하는 것보다 인정하는
것이 쉬웠습니다. 바로 체념이자, 포기가 인정이니까요...
아주머니는 제게 말씀하십니다.
"몇년동안 너희집에서 선이자 받고, 할인한 어음이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 봤니? 내가 천만원만 벌었겠니, 너희덕분에 안전하게
돈 많이 벌었다, 이거 않받는다고 나 손해 볼 것 없으니 잊어버리자.
알았지!" 하시면서 제가 보는 앞에서 천만원짜리 어음을 미련없이
찢어버리십니다. 전 고맙다는 인사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꽤 오랜 시간을 아주머니와 함께 울다가 돌아왔습니다.
열사람중 한사람의 따뜻한 마음이 있다면 세상은 살만하다
생각되어 집니다. 우리는 열사람중 아홉사람은 아니였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가...그 한사람의 따뜻한 마음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산다는 것은...
어느곳을 가던지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웃,친구,형제들...모두 각자의 삶을 꾸려가지만, 마음들이
한데 모여 세상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요!
날마다 닦아내어도 그자리에 그대로 앉아있는 일상의 먼지같은
것일겁니다. 우리는 그저 닦아내는 일만 할 뿐 다른 아무런
조치도 취할 수가 없습니다. 쌓이는 먼지를...
살다보면 가슴아픈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받는일만 있는것도 아닙니다. 전 아이들이 어릴적부터 늘 해주던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고싶은 일만 할 수는 있는것이 아니다.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있고,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이 있단다. 내 이익을 위해서 남을 손해보게 하는일은 하지
말아야한다. 내가 조금 손해을 본다고해서 그 일에대하여 화를
내서도 안?쨈? 어릴때 부터 들었던 말이라 아이들은 잘 실천하며
사는것 같았습니다. 어느날 작은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제게
말합니다. 엄마가 좀 손해보고 살라고 한 말이 꼭 옳은말
같지만은 않다고...
어린아이 시각에서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이해되지 않았던 일들이 지금 성인이 되어가는
나이에 이르면서 엄마가 하셨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을 합니다. 전 고마웠습니다. 손에 쥐어주지 않아도
터득하며 산다는 것은... 바로 자람이라는 것을...
날마다 한가지씩 욕심을 버리며 살아야 하는데...
나이의 숫자만큼 욕심이 쌓여감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 때문에 산다는 것이 서글퍼 지는 날이 늘어가는 요즘입니다.
세상에 나와보면 ...그래도 난 행복한데, 그것을 느끼지 못할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손가락 길이가 다르듯 많은 자식도 아니고, 둘인데 서로 참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좀 이기적이고 갈끔한 성격인 큰아이와 무엇이든지 불쌍하다
가슴아프다 하는 마음여린 작은아이를 보면서...
어느 녀석이 더 착할까는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두아이 다 장,단점이 있으니까요.
어느달, 전화요금이 많이 나왔습니다. 시외요금이나 이동전화요금이
아니라, 700사용료 였습니다. 혹시 아이들이 이상한 전화를
사용했나 싶어 야단을 쳤습니다.
작은아이가 말합니다. TV프로중 불쌍한 사람을 소개하는 코너가
있다고, 성금을 전화요금으로 모은다고...일주일에 한번씩 하는데
한통화에 이천원이라고 합니다. 한달이 4주이니 팔천원이 전화요금에
더하여 나온 것이지요. 우는 아이를 달래며 한달에 한통화만 하라고
말을 해주었습니다. 큰아이는 말합니다. 착한사람이 잘사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 살고있는 세상은 그렇지가 못하다고,
착한사람은 바보취급을 받고, 힘들게 산다며 동생에게 조금만
고쳐보라고 말합니다.
언니의 말을 알았다 대답은 하면서도...표정은 아니였습니다.
둘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살 것이라 생각을 하니 마음이
든든해 졌습니다. 그날은 아이들로 인하여 행복한 날이였고...
바로 행복과 연결되는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이란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은 어둡지만, 터널의 끝엔 행복이 숨쉬고 있을테니.
산다는 것은...
바로 행복이 아닐런지요...